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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Aug 28. 2023

EP.6 선생님 여전히 죽고 싶어요?

자살사고와 정신질환의 경험


*공지*

본 시리즈는 초심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것들을 일기로 기록한 것입니다.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이며 자기 맘대로인 글이기 때문에

'상담사로서의 전문성'보다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기록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주 수-금, 3일동안 제주도에 연수를 들으러 다녀왔다.

작년에는 혼자 갔었는데 이번에는 함께 일하고 계신 상사.....라고 해야하나? 선임....? 

여튼 한참 선배이신 선생님과 함께였다.


9시부터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전-부 강의를 듣는 시간이라 끝나고 나면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아팠다.

(이건 내 자세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같이 좀 걸을까?" 라는 선생님의 제안에 

오랜만에 제주 바람도 느껴볼 겸, 함께 산책로로 나섰다. 


"예전에 우리 집단상담 워크숍 했던 거 기억나요?"

"그럼요, 기억 나죠!"

"그때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말, 나는 되게 마음에 남아서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고 싶었어요."

"아....그 자살 이야기 하시는 거 맞죠?"

"응, 요즘은 그 마음이 좀 어떨까 궁금하고 남자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서..."


선생님과 함께 집단상담 워크숍을 했던 게 벌써 3년 전이다.

당시 나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아 약을 먹고 있었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석사 3학기차가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동기 선생님에게도 그만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이야기하며 쉽게 죽음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죽음과 자살이 어느 때보다 가까웠던 시기였다.


"그때 샘이 죽음하면 그냥 자살이 떠오른다고 했었잖아요, 

유서 쓸 때도 자살하기 전에 쓰는 것처럼 썼었고..."

"맞아요. 저는 기억나는 한, 평생 그랬었어요.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았고 내가 죽는다면 무조건 자살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요즘은...어때요?"


아주 조심스럽게 묻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껏 묻어있었다.

사실 여기서 조금 놀랐다. 

그 이유는 연수 가기 전 상담 회기에서 

동료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다뤘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루지 않았었다면,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회피했을 것 같다.

상담에서 다뤘던 불안을 한마디로 줄이자면 



자살사고나 정신질환의 경험이 있고 히스토리가.....다양한데 상담사로서 일해도 되는가



물론 섭식장애든 다른 정신 질환이든 경험 자체는 나의 자산이지만 

혹시나 동료 선생님들이 아시게 된다면....괜찮을까? 라는 걱정이 있었다.

걱정이 얼마나 심했으면 꿈까지 꿨었다. 꿈 분석을 받았었는데 명확한 두 가지 요소가 드러났다. 

동료선생님 그리고 자살사고

관련한 이야기로 글을 쓴 적도 있다. 







집단상담 워크숍 때는 내가 현재 직장에서 일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었고

학교를 그만두니마니 할 때여서 경계없이 자살사고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러다 현재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마음 한켠에 그 때 나눴던 이야기에 대한 불안과 불편감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하기 무서웠다.

내 과거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건 내 생각이니까 마음대로 괜찮다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담 중에 그 불안과 두려움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한가지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잘 하고 싶어 하는 구나" 

이 마음을 아무리 꽁공 숨겨도 두려움이든 불안이든....어떤 형태로든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극단과 균형을 결핍의 해결책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ㅎㅎ


당당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신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기로 다짐했다. 

상담을 받기 전부터 길고 긴 글쓰기와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내왔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찌들어 스스로를 '식충이'라 부르며 폄하하던 때도 있었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회복의 길을 택했다. 

아직 가는 중이라고 해도 나의 선택이 '회복'과 '성장'이라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분석(상담)받으면서 정말 많이 나아졌어요. 

심지어 지금 선생님과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려워서 상담에서 다루기도 했어요!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은 것 같아요 (웃음) 

저한테는 자살이 도피처였고 비상구였고....선택이기도 했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저한텐 정말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살아가는 게.

섭식장애도 비슷하구요."



담담하게 웃으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3시간이나 이어졌다. 

(선생님의 경험도 많이 들을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현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가정폭력과 학대의 기억부터 

섭식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날들까지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나의 자원이고 자산이라 부를 수 있는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여전히 울컥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일도 있고 어이없지 않냐며 헛웃음이 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고 지금을 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대단하고 멋지다고 말씀해주셨지만 상사로서는 충분히 걱정되고 고민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삶과 모든 경험이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상처와 아픔에 매몰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분석(상담)을 받으며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더이상 아픔을 그저 동정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쓰고 싶지 않다.

아픔에서 나아가는 과정 또한 잘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

불쑥 불쑥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들을 억압하기보다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실패하는 날도 있고 좌절하는 날도 있겠지만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주 느리고 느리게 걸어가는 사람이다.

여전히 열등감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불안과 두려움에 수면과 식사패턴이 엉망이 되기도 하지만 

제 손으로 상처내고 죽음을 택하는 건.....가능한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은 미뤄두고 싶다.


자살만이 도피처인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런 때가 있었어. 

그럼에도 살기를 택했고 살고 싶었어.


죽고 싶었지만 사실 사라지고 싶었고 끝내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

이 모든 고통과 끔찍한 기억과 이별하고 싶었다. 

한번에 이별하는 일

완전히 이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이젠 그런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그 모든 경험을 안고 살아가고 싶다.

가능한만큼 조금씩 그러나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며.



ps. 삶을 선택하는 것은 타인의 몫이 아니다. 강요하지 말자.

     그가 삶을 선택할 때까지 함께 하는 게 제일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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