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사가 생각나요, 아이유의 이름에게 라는 노래인데 '조용히 사라진 니 소원을 알아' 그리고 그 노래가 마지막에는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라는 가사로 끝나는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떠오르네요."
1년 가까이 만나고 있는 내담자가 있습니다.
상담 초반에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느끼고 싶지 않고, 어떻게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털털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분이었어요. 자세하게 쓸 수 없지만 보호받거나 지지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긴 시간 혼자 견뎌 온 탓에 쉬이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고 하셨어요. 아주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평생 모른 채 살아온 사람에게 한 번에 마음을 열 수 있겠어요? 저 역시 내담자일 때는 항상 조심스럽고 불안했기에 아주 천천히 조금씩 거리감을 줄여보자고 답했습니다.
* 편의를 위해 내담자 분을 A라고 칭할게요*
1년 사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A는 상상만 했던 일 그리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하나 둘 도전했고 까다로운 상황도 직접 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날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과거의 기억들,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몰려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죠. 상담자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함께 견디고 늘 여기에 존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연하죠, 우리 중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 수 없으니까요.
"요즘 제가 만나는 건 오직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뿐이에요. 저의 일상을 유일하게 공유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죠."
A는 본가에서 아주 먼 곳으로 이사했고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친한 고향 친구들과도 만날 수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죠.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남짓한 시간을 함께하는 게 전부인 상담자와의 관계는 유일한 '대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상담자와의 대화, 나 자신과의 대화, 대화를 통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외로운 날에도, 슬픈 날에도, 힘겨운 날에도 함께 했습니다. 음...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함께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니까요.
"제가 A에게 저의 마음이나 감정을 말로 전달한 적이 있을까요?"
"음... 의견을 주신 적은 있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는 제 기억상으로는 거의 없어요."
"오늘은 제 마음을 좀 전달하고 싶어요."
그러나 얼마전, 조심스러운 마음을 잠시 뒤로 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상담자-내담자 관계에서 가장 조심하는 건 바로 '거리'입니다. 너무 멀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저한테는 꽤 어려운 일이거든요. 사람을 좋아한다기엔 비관적인 편인데..... 아!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저의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노력하다 보면 종종 선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관계는 오히려 더 위험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의 생각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접어두고 내담자에게만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제가 내담자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자 기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내담자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진솔함을 드러낼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년 간 함께 하며 차곡차곡 쌓아 온 저의 진심을 전할 순간, 바로 지금이라고.
"이제 A 씨가 저에게 줘야지! 해서 주는 마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게 있어요. 그냥 이 사람이 믿어주고 있구나, 많이 신뢰하고 있구나. 그래서 나한테 이런 걸 나누는구나. 그게 되게 저한테는 감사한 일이고 (중략) A 씨가 마음이 없고 마음을 줄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충분히 많은 마음을 받고 있고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저는 종종 일상에서 내담자 분들을 떠올릴 때가 많아요. 직접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있지만 저 혼자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리거나, 음식이나 노래와 같은 요소들이 자극이 되어 문득문득 내담자 분들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마음에 찾아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기도해요. 부디 오늘도 그들의 삶이 무탈하길요. (무교입니다!)
그러니까 상담은 일반적인 대인관계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분명 '관계'입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상담의 효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내담자나 상담자가 밖에서 맺는 관계의 특징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이를 '도구'로 잘 사용하여 성장의 계기로 만드는 것이 상담의 중요한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언젠가 다른 내담자분에게 "여기서만큼은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노력할 수 있으니까"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그분과 저는 아주 많은 실수와 ㅎㅎ 실패를 경험했고 서로 오해하기도 했고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상담 관계는 매번 도전입니다. 상담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역시나 관계에 미흡한 부분이 넘치는 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미흡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우리가 주고받는 마음에 더 마음을 씁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소중한 시간을 너는 이게 못났어, 저게 못났어, 나는 이게 문제야, 저게 문제야 하면서 보낼 수는 없잖아요.
당연히 성찰도 필요하고 변화를 위한 노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1순위는 아니에요.
상담 장면에서도 그저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이 제일이지 않을까요?
글을 쓰다 보니 내담자분들에게 우리의 관계가 상담실이 아닌 곳에서도 이어져 있음을, 마음을 나누고 있음을 더 잘 전달하고 싶어 지네요. 아직 갈 길이 먼 초심이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진심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노력할게요! 살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