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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14. 2017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그들의 시대

다큐프라임 - '2017 시대탐구 청년' 평범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u0cE5nSmQOE



"아빠 때는 안 그랬어, 한번 일하러 나가면 일주일동안 집에 못 들어오는 게 태반이었지. 버텼지.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어. 근데 너네는 너무 약해. 시간이 없다, 자유가 없다 등 그런 핑계를 대면서 취업도 미루고 돈 버는 것도 미루고 있잖아."


아빠가 예전에 비해 훨씬 유해진 것은 사실이다. 말이 전혀 안 통하던 시기를 지나 이젠 아빠와 마주앉아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아빠도 나도 많이 달라졌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세대차이. 생각해보면 3-40년 남짓 다른 나라들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생각도 못할 엄청나고 대단한 성장 고도의 시대를 아빠세대는, 일명 기성세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보내왔다.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혹은 그 이상의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노력하면 안되는 건 없었다. 아빠 말대로 아빠는 내 나이가 되기 전부터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나를 낳고, 동생을 낳아 길렀다. 아무리 시대가 힘들다고 하지만 아빠는 늘 말한다.


"열심히 해서 안되는 세상이라는 건 아빠도 알아. 그런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알아? 더 열심히 해야하는 거야. 남들과 비슷하게 열심히 해선 안돼, 될 때까지 죽어라 열심히 해야해."


나는 숨이 막힌다. 대체 뭘 더 얼마나 어떻게 열심히 하라는 걸까? 아빠 말대로 공무원 준비를 시작해서 죽어라 공부하면 되는 걸까?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묻고 싶다. 대체 공무원 시험이 어떤 건지는 알고 계시는 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 지 알고 계시느냐고, 열심히 하면 더 열심히 해야하고 더 열심히 해서 안되면 더더 열심히 해야하고, 그런데 80만명이 모인 그 곳에서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 얼마나 있겠냐고. 다들 죽어라 하는데 안되는 건 거기도 마찬가지 라고. 열심히 해서 보상받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윗 세대분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다.

"아빠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야. 아빠 말대로 열심히 일해서 차사고 집사고 가족 일구고 자식 키우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근데 이게 이 평범한 일이 우리한테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고 앞으로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답답해"

시대가 좋아졌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당연한 소지품이 되었고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고 무엇을 입는 지 우리는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 또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고 있을까?


세상은 변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지식들 새로운 방식들이 넘쳐난다. 기존의 것들을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품에 안고 그것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세상. 변화를 통해 변화해야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면 안된다고 배웠고 튀면 안된다고 배웠고 어른의 말에 반론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배웠다. 

"튀면 안돼. 잘난 척 해도 안돼. 해고 당하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어. 뭔가가 잘못됬으니까 저런거야 이유없이 왜 그러겠어.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 문득 차가운 바다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것이 당연했던 아이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잘난 척하는 일이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튀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하나 어찌할 바를 모른채 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결국 우리는 털썩 주저 앉거나 넘어지고 말았다. 열심히 공부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처럼 이야기하던 어른들. 내가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하던 어른들은 어른이 된 아이들 앞에서 인상을 쓰고 성을 내고 무시하고 화를 내는 꼰대로 변해있었다.

그럴거면 왜 그 비싼 돈을 들여 대학을 보내고 외국 보내고, 공부를 시킬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한다.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 " 그렇게 온갖 사탕 발림 말들을 늘어 놓더니 면접에서 혹은 회사에서 아니 사회에서 만난 어른들은 새로운 것을 거부했다. 부정했다. 왜 대드느냐고 화를 냈다. 이것밖에 못하느냐, 우리 때는 더했다. 우리 때는 이렇게 하면 다 잘됬다. 시키는 대로 하면 다 알아서 흘러 갈 것을 왜 이렇게 따박따박 걸고 넘어지느냐. 취업준비를 해야하는 시기가 오면서 아빠는, 엄마는 그리고 주변 어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말들을 늘어놓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은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도 지켜지지 못하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사람이 하고싶은 것만 다 하고 사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누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고 했어?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라고 대답한다. 언제는 다 할 수 있을거라던 사람들이 이젠 왜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투정부리냐고 혼을 낸다. 이럴겨면 처음부터 하고 싶은 걸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지. 그랬으면 그들이 원하는 딸,아들이 되지 못할테니까? 어디가서 우리 딸, 우리 아들 시험 점수 몇점이고, 대학 어디 나왔고, 어디 취업했는 지 당당하게 말 못하니까? 우리는 그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나? 엄마 아빠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 엄마 아빠가 잘 만들어 낸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그럴거면 나는 왜 인간이 되었을까. 하고 싶은 거 없는 그냥 시키는 것만 잘 하는 로봇으로 만들어 졌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엄마 아빠에게 평범했던 일들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너무나도 달라졌다. 엄마 아빠가 만들어낸 감사한 고 성장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우리는 고 성장의 끄트머리에 태어나 엄마 아빠가 노력해서 얻은 성과로 길러졌다. 엄마 아빠가 가르쳐주시는 대로 살면 우리에게도 같은 보상이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했고 어른들은 따라갈 엄두도 나지 않는 이상하고 기이한 세상을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엄마 아빠에게 배운 삶이 더 이상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변화하지 마라, 시키는 대로 해라 라고 해서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아마 이대로 영영 멈추다 못해 뒤쳐지고 말 거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는 내 생각보다 너무나 크고 단단하고, 노력에 대한 신뢰는 더 했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아빠에게 내 삶의 가치를 아무리 설명해도 아빠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이해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이해가 안된다고 하신다.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나 많다. 

얼어붙은 취업시장도 
변할 생각이 없는 사회의 우두머리들도
거기에 맞춰 가는 사람들도
나를 나무라다 못해 사회부적응자로 걱정하는 부모님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싸그리 씹어먹을 만큼 너무나 큰 벽.

나를 잃은 내가 있다.

이렇게 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 나에게 취업못한 루저의 주저리 혹은 사회부적응자의 쓰잘데기 없는 한탄이라고 생각할까봐 무섭다. 하지만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모두가 살아온 것처럼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하면 할 수록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지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소위 말하는 윗대가리들은 나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나를 죽이고 고개를 숙이고 그저 "네"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할텐데 그게 과연 누구를 위한 삶일까? 거기서 시작한 삶이 과연 행복하고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좀 덜 행복해도 되니까 취업을 하고 돈을 벌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어른들의 말은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걸까? 인생이 다 그런거지 하며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정말 다 잘 될까?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은 사치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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