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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Nov 02. 2021

Round 2

고차수가 되어 가는 나

 새해가 밝았고 먹고 싶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 숫자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숫자가 나를 점점 초조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유가 있을 때 다시 산부인과를 찾을까 했지만 남편의 말 처럼 몇번의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지금 나에겐 시간이 금 보다 귀하다.

 정신 없는 3월, 다시 시험관을 시작하기로 했다. 불과 1차 시험관을 끝내고 한 달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단기 시험관에서 실패했으니 장기 시험관을 해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전에 자궁내시경도 해보자고 하셨다. 제일 궁금했던 체외수정(시험관 아기)시술 실패의 원인을 여쭤보니 배아의 질 문제, 자궁 상태, 그 외 피검으로 알아낼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 선생님 믿고 다시 힘내보자'


 몇가지 언급하셨던 문제만 찾아내고 해결하면 될 수 있을거란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나의 마음에 촛불 하나가 켜졌다.

 

 하나가 순조롭게 해결되어가나 했더니, 다른 곳에 복병이 있었다. 새롭게 옮긴 직장에 그것도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3D 업무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의 하루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잘 챙겨먹고 운동도 해서 몸을 만들어놔야하는 시기에 일 마치고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 없이 시체가 되기 일상다반사였다. 달력의 날짜는 2배속으로 지나갔고 자궁내시경을 받을 날은 금방이었다. 시술 당일 오후 2시까지 일을 하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정신을 잃었다. 수술대는 참 많이 올랐지만 오를 때 마다 긴장되고 떨린다.


 다행히 시술 뒷날이 주말이었다. 잦은 병원 진료로 업무 중간에 나와서 안 봐도 될 눈치를 참 많이 봤었는데 연가를 내지 않아도 되서 정말 다행이었다. 폴립을 떼어내서 인지 자궁 내벽에 미세한 스크래치를 내서 인지 하루 이틀은 우리하게 아팠다.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폴립이 착상하는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을거라며 폴립도 제거하고 배아가 착상이 잘 되게 자궁내벽에도 스크래치를 내서 다음 시술이 기대된다고 하셨다. 몸은 힘들었지만 다음 차수에 성공만 할 수 있다면야 이 정도는 괜찮았다. 지금이라면 더 한 것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장기 시험관 시작과 함께 복용한 피임약 때문인지 업무 때문인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끌어 모아 입만 열면 짜증 폭주기였다. 그때의 나는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유형이다. 대망의 기폭 장치는 팔뚝 주사 로렐린이었다. 배란 억제를 시킨다는 로렐린 주사와 피임약을 함께 복용했던 몇날은 싸움 닭이었다. 어디 한 번 걸려봐라~ 다 죽었어! 하는 심보로 몇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나의 화받이는 남편이었다.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이 짜증난다고 짜증내고, 말을 하지 않으면 너는 어쩜 그렇게 나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냐고 화를 내고... 오늘 저녁은 뭐 먹을거냐는 단순한 그 질문에 베베 꼬인 심보 하나 섞어서 너는 센스를 밥 말아 먹었냐는 폭탄을 던져 주었다. 내가 밥 차리는 사람이니? 이럴 땐 좀 먼저 알아서 요리도 하고 알아서 준비도 좀 하란 말이야....(이하 생략) 한 번 필 받으면 남편 말에 의하면 1절, 2절, 3절 수준이 아니라 그냥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을 해버린단다. 그러니 결국 나는 선을 넘었고 급기야 우리는 서로에게 화살을 겨눈 채 더 아픈 곳에다 깊숙이 깊숙이 상처를 내버리고 말았다.


 속상한 마음에 언니에게 상담 요청을 했다. 말이 상담이지 넋두리 겸 남편 흉을 보겠다는 목적이었다. 가만히 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언니가 조심스레 말을 했다.


"그런데..시험관을 하는 이유가 뭐야? 제부랑 니가 행복하기 위해서 시험관 하는  아니니?

물론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렵다는거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그 힘듦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잘 위로하며 함께 그 과정을 잘 이겨냈다는 생각이 들어야하지 않을까? 서로에게 상처만 주려고 하는게 아니잖아.

아기는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어. 누구보다 중요한 건 너와 제부야."


 전화를 끊고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육체적 고통만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옆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남편도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을까, 나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는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 눈물이 났다. 그리고 우리 함께 잘 이겨내보자는 손 편지도 냉큼 하나 썼다.


 곧 또 주사기로 주입되는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야수로 돌변하는 건 시간 문제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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