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세상에는 수많은 난임 부부들이 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아이를 갖고 싶지만 자연 임신이 되기 어려운 부부들, 우리도 그중에 하나다.
난임 병원을 가기 전과 다녀온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공식적으로 의사 선생님께 난임이라는 진단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단어 하나가 뭐라고, 변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초조해졌다. 충분한 고민과 논의를 거쳤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은 조급함이 결국 결정의 주된 이유였다. 누구를 탓하진 않지만 결론적으로 병원에서 받은 여러 번의 시술 끝에 몸과 마음은 엉망이 되었다.
마지막 시험관이 끝나고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별문제 없이 쉽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점점 길어질 것 같은 시험관 시술에 단 한 번이라도 더 성공률을 높이는 쪽이 낫지 않겠냐는 결정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시험관 시술을 병행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되어 휴식 기간에 대구의 M병원을 내원하기로 했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몇 달 뒤면 또 주사를 맞아야 하고 약을 먹어야 하고 채취를 해야 하고 이식을 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노력하겠다는 표현보다는 집착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시험관을 하지 않으면 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 머릿속에는 늘 임신에 관련된 생각뿐이었다.
봄을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채 초 여름을 맞이했다. 5월의 어느 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이클에 집에 쟁여 놓은 배란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곧 며칠 내로 어플에서 아기가 방긋 웃으며 "오늘이 피크이니 사랑을 나누세요!"라는 문구를 보겠다 생각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방긋 웃는 아기를 보긴 했으나 무려 30일이 훌쩍 넘어서였다. 뭔가 이상했지만 워낙 시험관 뒤에는 그런 일이 많다길래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6월에도 7월에도 주기는 길어지고 뒤틀렸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예상보다 일찍 대구 M병원을 내원했다. 결과는 난소에 혹 때문이었다. 몇 달 전에는 깨끗했던 난소에 봉긋하게 물혹이 생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과배란 주사 용량이 몸에서 받아주는 것보다 과량으로 투입되거나 오랜 시간 장기간 주사를 맞으면 난소에 물혹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혹여나 그렇지 않으면 수술을 할 수 도 있다고 하셨다.
'뭐 왜. 팔에 배에 온갖 주사 다 맞아가면서 한 것도 서러운데. 아니 이제 난소에 혹 까지 생기면 어쩌자는 건데. 더럽게 재수 없네. 뭐 잘 못 살았나? 되는 게 없지?'
진짜 나는 더럽게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일이 안 풀릴 수 있단 말인가. 두 차례의 갑상선암 수술을 겪고 나서 제일 무서운 건 몸의 이상 변화였다. 재수 없고 다 싫은데 이제는 진짜 몸을 챙겨야 할 때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노력하고 힘들어야 하는지 목적의식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오버가 되었고 넘쳐흘러버렸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더 값진 미래를 위해 단지 병원의 도움을 조금 더 받아보자고 시작된 것이 내 삶을 지배해버렸다. 내가 있고 그다음이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나는 쉼을 계속 말했고 바랬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는 브레이크를 좀 밟아야겠다. 나는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