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똑"
"네, 들어오세요"
나무로 된 손잡이를 돌리고 들어가자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책장에 빼곡한 책들이 보였다. 역시 교수가 되려면 이정도는 읽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문 맞은편에 있는 책상에 앉아 계셨다. 의자 뒤에 있는 창문을 넘어온 햇빛에 눈이 부셨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랜만이네요? 일단 앉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책상 위에는 자그마한 찻잔과 함께 초코칩 쿠키 몇 조각이 담긴 접시가 있었다. 부드러운 홍차 향이 코 끝에 맴돌았다.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아 네, 고맙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어요?"
초코칩 쿠키가 담긴 접시를 내 쪽으로 밀며 교수님이 물었다.
"다른 게 아니라 어떤 고민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쿠키 하나를 집어먹었다.
"아, 그래요? 마침 다음 수업까지 시간도 넉넉하게 남았으니 잘됬네요. 어떤 고민이죠?"
나는 씹고 있던 쿠키를 넘기기 위해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장미 향이 입 안 가득히 퍼졌다.
"오늘 한 친구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화가 났지만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진정했고, 그 친구와 다시 한번 대화를 해서 기분 상하게 헤어지는 것은 피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서요?"
교수님이 몸을 앞으로 구부리면서 대답했다. 그가 자세를 낮추자 가려져 있던 햇빛이 눈을 찔러서 따가웠다. 나는 찡그려진 눈을 애써 떠보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수님. 제가 화를 풀었던 것은 스스로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눈에 힘을 과도하게 줘서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자세를 조금 뒤로 젖히고 나는 말했다.
"그건 다름 아닌 저의 꿈입니다."
"흐음, 꿈이라고 한다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찻 잔을 입으로 갖다대며 교수님이 말했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목젖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마신 줄도 모를 정도였다.
"저는 좋은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인간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고, 큰 욕심도 품지 않으면서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만일 이러한 꿈이, 그저 부족한 재능을 대신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속인 것이라면? 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본 재능 있는, 흔히들 말하는 천재를 바라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솔직하게 말이죠. 그렇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거대한 이상 못지않게 제가 가진 꿈도 가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화를 다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고요. 그런데 오늘, 저는 이 꿈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것. 어쩌면 이것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한 제 자신을 숨기기 위해 내가 나를 속이는 짓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죠? 힘 있는 자만이 용서할 수 있다고요. 저는 그 힘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은 패배자의 이상에 불과한 이 꿈에 취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가 없어요. 모두들 제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어 보이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그럴 때마다 겁이 납니다. 이러다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살아갈까봐요.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참습니다. 이유 따위 저도 알 수가 없어요. 감정의 부유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면서 무조건 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수님. 이것도 거짓말이에요. 사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고 있어요. 참으로 가엾은 이유랍니다. 그 눈물이 나의 꿈이 패배자의 이상이라는 것을, 그것을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참는 것입니다. 교수님. 저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장 내일이라도 제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불안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요. 길을 잃었단 말입니다......"
말하던 도중부터 쓸데없는 감정에 울컥해버리고 말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생각에 빠진 듯한 교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좋은 인간이 되기란 참으로 어려운 꿈이에요. 좋은 엄마, 좋은 아빠, 좋은 아들 이 중 한 가지만 되기도 정말 어려운데 그것을 다 합쳐놓았다면 말 안 해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죠."
"......"
"그리고 재능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건 마치...그래요. 해답없는 수수께끼와 마찬가지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곧, 답이 될 수 있겠죠. 그 답을 의심하는 순간 삶은 스핑크스처럼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거예요. 아직 당신은 스무 살입니다. 어른인 제가 아무리 말해봤자 받아들일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어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당신을 응원할게요. 그 꿈을 포기하지 않길 바래요."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다음에 봐요"
나는 일어나서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창 밖에서 들어온 햇빛이 내 몸을 구석구석을 비췄다. 꽤나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나온 복도 양 옆에 열린 문으로 바람이 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겨울바람이었다. 나는 곧 어딘가로 향했다. 방향이 맞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