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아저씨

by 이도경

초등학교 6학년쯤에 한 남자가 엄마의 친구라면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전에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왔기에 그런가 싶었다. 우리는 주말이 되면 셋이서 어딘가로 향했다. 산이며, 바다며, 주말이 다가오기 무섭게 놀러 다녔다.


어렸을 적에 나는 어른들의 일에 관해선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얼마 안 가서 아저씨가 단순히 친구는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할머니 집에 있을 때 해보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히나 여행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마치 눈을 처음 본 강아지처럼 들뜬 마음에 아저씨를 만났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저씨와 함께 3명이서 한집에 살았다. 묘한 느낌이었다. 분명 아버지는 아닌데 그것과 비슷한, 그러나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존재의 느낌이었다. 확실한 것은 어린 시절 내가 바라던 사람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서고 나는 어머니와 굉장히 많이 틀어지게 되었다.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해 끝내 상대방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비수가 되는 말을 던졌다. 계속되는 싸움에 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어져서 이대로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테지.)

아저씨는 우리 둘 사이에서 서로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기분을 맞춰가며 중재자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아저씨를 짓누르는 짐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

아저씨는 어느샌가 출장을 가는 일이 많아졌고

몇 개월에 한 번씩 들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저씨는 예전처럼 상냥하고 편안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표정. 그리고 딱딱한 말투는 나를 방 안으로 밀어냈다. 닫힌 방문 너머로 어머니와 전화로 싸우는 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나는 혼자서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와 다툰 일에 대해서나,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던 8~9일 정도의 여행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이틀 정도 더 머무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나는 약간 들떠있었다. 마중을 나와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디를 둘러봐도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집 문을 열자 무엇인가 차분하고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내 방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반듯하게 개인 이불 위에서

부유하는 먼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것을 보자 여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이불에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잠이 나의 의식을 옆으로 밀치며

깊이 파고들었다. 바람이 창문을 넘어 머리를 쓰다듬었고 문득,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저녁밥을 먹으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말하다 문득 나는 아저씨 생각이 났다. 벌써 6개월 가까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아저씨는 언제 오냐고 여쭤보았다.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아저씨는 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갔어.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지 않을 거야.>라고.

그 뒤에 우리는 조용히 저녁식사를 이어갔다.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벽걸이 시계의 째깍거림과 밥그릇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식사가 끝난 후에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곧장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마치 극장의 스크린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하나 씩 떠올려보았다.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저녁을 대신하여 푸른 밤이 하늘을 메웠다.

집은 한 사람의 빈자리에 애도를 표하듯 깊이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