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삶
어느 날, 지하철에 오르는 사람들이 마치 삶의 흐름 속에 자기 자신을 맡긴 것처럼 무력하게 보였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졸음이 가시지 않은 무거운 몸뚱이에 뇌를 맡기고 지하철에 올랐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집과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어서 이렇게 부지런히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 간신히 올라탈 정도로 지하철 안은 직장인이나 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세탁기 속에 한 달 치 빨래를 쑤셔 넣은 것처럼 빈틈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철에 오르고 난 뒤에는 무거운 살결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지나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널이 지하철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만 같았다.
책의 목차 하나가 끝나면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 틈에서 새어 나오는 우울한 얼굴들을 보았다. 그것이 비에 홀딱 젖은 후드티처럼 나의 목을 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동극의 자석이 맞물린 듯이 서로 떨어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다 피츠제럴드의 책을 읽고 있으면 그야말로 회전목마를 타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찬란한 빛에 더욱 우울해진 얼굴의 어른들을 보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
의식이 책의 내용으로부터 멀어지는 틈을 타 무언가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차창 밖을 봤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치는 랜턴들 위에 서있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나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였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다른 사물이 비칠 정도로 몸이 투명했다는 것 정도. 아니, 투명하다기보다는 비가 내리기 전의 하늘처럼 흐릿한 형태로 차창과 터널 사이에 서있었다. 나는 두 눈을 껌뻑이며 그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자 그도 나의 행동을 따라 하며 나를 향해 반투명한 두 눈을 껌뻑였다. 그 눈빛은 마치 내가, 나의 존재 자체가 신기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터널을 통과하는 지하철의 차창에 초록색, 노란색 불빛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덜컹덜컹.
지하철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언듯 보면 태엽이 풀린 인형 같기도 했다. 그들의 눈에는 삶에 대한 희망이 소실되었고, 그저 자신들이 내리고자 하는 역을 향한 맹목적인 기다림만이 안개처럼 흐릿하게 아른거렸다.
차창에 맺힌 남자도 그들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불빛들 사이에서 묵묵히 서있던 그가 처음부터 갈 곳이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지하철은 탑을 오른다. 암흑으로 가득한 터널 안을 신기루 같은 빛으로 밝히며 묵묵히 나아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향하여.
아주 먼 옛날, 사람들 간의 미움조차 없었던 시절, 바빌로니아라는 이름의 나라가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사람들은 신들이 있는 하늘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을 향해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벨탑이라는 이름의 욕망은 결국 신의 분노를 사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은 사람들의 언어를 수천 가지로 나누어 버렸다. 한순간에 소중한 이들과 말조차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정말로 바벨탑을 하늘에 대한 도전을 목적으로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탑의 완성이 아니라 쌓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들은 한층 한층 쌓아 올리면서 자신을 기다리는 무언가를 찾고 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오른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문이 닫히고, 열차는 다시 탑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다가오게 될 심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감을 들추어낸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무감각함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일종의 속박이 된다. 삶으로부터 자신을 얽매어 죽음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목적지를 찾기 위한 인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인내는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며 단지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것뿐이다. 무감각한 이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역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설령 그들 중 원하는 역에 내린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착역이 두려워서 내린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 내려야 할지 고민하는 척하며 그저 마음에 드는 역이 나올 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한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의식의 흐름에 떠내려 보내면서.
철컹철컹. 철컹철컹.
종착역이 보였다. 나는 곧 지하철에서 내려야 한다. 그게 싫더라도 내릴 수밖에 없다. 지하철은 분명 한치의 망설임 없이 모두를 내쫓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동자에 절망감과 공포가 드리운다. 그들도 눈치챈 것이겠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없이 많은 역을 지나는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은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결과 또한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죽음. 심판. 종착역. 이것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주어진 시간 앞에 서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것. 다가오는 심판을 마주하며 구원을 받는 것.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지금도 어딘가에선 지하철이 암흑으로 가득한 터널에 한줄기 빛을 내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 내릴지 모르는 무지의 승객을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