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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Dec 02. 2018

전혀 사소하지 않은 엄마라는 이름

부탁 하나만 들어줘(A Simple Favor, 2018)

   평소에 가장 편하게 부탁을 하는 상대는 누구일까? 아마도 엄마일 것이다. 엄마가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엄마는 뭐든지 다 해주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난 성인이 된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 도시락을 엄마가 싸 준다. 자취를 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요리도 잘 하고 나를 챙겨주는 것도 잘 하니까.’라는 안일한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그게 정말 쉬운 일일까?



    스테파니(배우 안나 켄드릭)는 전형적인 엄마다.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유투브 방송 컨텐츠로 만들만큼 요리도 잘하고 사교적이며, 하나뿐인 아들을 유치원에 꼬박꼬박 데려다주는 모범적인 엄마다. 게다가 귀엽고 키치한 패션으로 젊어 보이기까지 하는 귀여운 모습을 갖고 있지만 자신을 비꼬는 학부모들에게 일침까지 날릴 줄 아는 똑부러지는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 완벽해 보이는 엄마인 스테파니에게는 남편이 없다는 것이 흠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그의 보험금으로 겨우겨우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 그녀의 경제력까지 돋보이면서, 정말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스테파니에게 정반대인 에밀리(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나타난다. 에밀리는 일을 잘 하고, 남편과 아직도 연인처럼 지내고, 그만큼 섹시하고 매력적이지만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영 여유가 없다. 항상 바쁜 일 때문에, 아들의 절친 엄마여서 알게 된 스테파니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자신의 아들을 하루만 돌봐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녀는 그것이 아주 사소한 부탁(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A Simple Favor’)이라고 말하고, 스테파니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에밀리가 실종 후 시체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에밀리가 실종된 후에 스테파니는 어떻게 했을까? 모범적인 엄마답게 나서서 유투브에 실종된 에밀리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시작으로 에밀리의 회사에 잠입해서 에밀리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하고, 에밀리의 남편 숀과 함께 에밀리의 사진이 찍힌 전단지를 뿌리기도 하면서 에밀리를 적극적으로 찾았다. 하지만 결국 에밀리의 시체가 호수에서 발견됐을 뿐이었다. 그 다음 수순은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아들을 돌봐줘야 하는 것일까? 그녀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 같은 태세를 취한다. 에밀리의 상실로 인해 상심한 그녀의 남편 숀과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에밀리의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애초에 부탁의 시작은 에밀리가 한 것이기 때문에, 스테파니는 조금 찜찜하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져서 부러웠던 에밀리의 빈자리를 채운다. 문제는 과분하게 채웠다는 것이다. 그녀의 모범적인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은 죽은 에밀리를 소환할 만큼 질투를 불러일으킨 것이었을까?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아들에게서 에밀리를 봤다는 말, 에밀리에게 받았다며 건네주는 편지, 그리고 전화까지 받게된다. 에밀리는 죽지 않았다. 그 말을 숀에게 전하자 숀은 스테파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서 진정제를 먹으라고 한다. 스테파니는 여기서도 모범적인 엄마이자 아내로서 행동할까? 그렇다. 스테파니는 ‘엄마’의 방식대로 행동하겠다고 하면서 에밀리를 찾아나선다. 그녀의 엄마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엄마로부터 시작해 도달하게 된 에밀리의 진실은, 에밀리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도 아니었고, 자신의 깊숙한 비밀과 교환했던 에밀리의 비밀은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시체는 자신을 등쳐먹으려고 하는 쌍둥이 자매의 것이었으며, 성공의 문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해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해서 그들의 돈을 꼬여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모성애였다. 자신이 죽은 것으로 가장해 보험금을 타내려던 에밀리의 무모한 행동의 목적은 자신의 아들을 키울 양육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모성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라도 자식을 위하는 것은 자기애의 다른 이름이지 모성이 아니다. 그것을 스테파니는 보여준다. 자신의 엄마가 죽은 줄 알고 비뚤어져 자신의 아들을 때렸던 에밀리의 아들에게 훈계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준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에 동조해주면서 곁에 있어주는 것. 그런 것을 모성이라고 부른다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테파니는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을 하고있음에도 통념적인 모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직접 발로 뛰고 총을 들고 나선다. 우리가 아는 엄마의 방식이라면 눈물 흘리거나 에밀리처럼 비이성적인 모습에 갇혀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자신의 요리 유투브 방송 채널 통해 에밀리의 범행을 생중계해서 에밀리를 잡는데 성공한다. ‘엄마’적인 방식이되, 정말 본 적 없는 엄마의 방식이다.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일은 사소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도 회사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자기 일이 있는데도 다른 것보다 우선순위에 나를 두어서 도와주는 것이다.. 엄마한테는 내가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고 말하는 것의 무게가 훨씬 컸을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을 단순한 부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인 에밀리가 결국 파국을 맞게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정 주부의 일을 사소하게 보는 사회적 편견을 풍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초반에 스테파니가 가정 주부의 팁을 유투브로 만드는 것을 비웃었던 다른 학부모인 대런(배우 앤드류 라넬스)도 스테파니의 유투브를 보고 훌륭한 브라우니를 만들어내듯이, 집안일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할수록 그것에 감춰진 무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엄마’라는 사람에게 부담지워지고 있다는 것. <부탁 하나만 들어줘>가 꼬집고 있는 이 지점은, 우리 모두 엄마가 해준 밥으로 찌워진 살이기 때문에 유쾌하면서도 아프다.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일시 : 2018년 11월 29일 목요일 20시

장소 :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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