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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오조라 (あおぞら)

by 김상

https://youtu.be/UXrr58y-PtA?si=6zHyM67FaiXm_FHj

"오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친구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한 가지를 열심히 하고 무언가 배울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에요"

"우리 친구로 지내요"


새벽에 몇 차례나 잠을 뒤척이며 나는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불현듯 내 마음속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과 욕망의 감정이 꿈틀대며 나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스카이스캐너를 뒤적거리며 비행기표가 가장 저렴한 후쿠오카행 티켓을 구입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옷가지들과 여권을 챙겨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즐거움이 보였고 그들의 들뜬 마음이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고 나에게 다가왔다.

1시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일본공항 특유의 간장향이 나는 냄새를 맡았다. 나는 서둘러 공항에서 나와 시내로 향했고 스키야에서 규동하나를 주문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일본에 올 때마다 먹는 기무치규동은 저렴한 가격과 일본식 김치 특유의 달달함으로 내 굶주린 배를 달래주었다.


다음날 아침 하카타역에서 2500엔짜리 고속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마침 20분 뒤에 구마모토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나는 버스를 타고 구마모토로 향했다. 고속버스 안에서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규슈의 정취를 마음껏 느꼈다. 한국과는 다른 규슈의 녹색빛이 감도는 강물의 색과 푸른색 잎이 가득한 나무는 아름다웠다. 1시간 30분을 논스톱으로 내리 달려 구마모토 도심부에 도착하였다.


나는 구마모토 곳곳을 노면전차를 타고 그저 도시를 마음껏 느꼈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았다. 흔들리는 노면전차 안에서 그들의 겉모습 안에 있는 그들의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작은 호기심을 가진채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다. 노면전차는 뜨거운 여름날의 햇빛을 묵묵히 견디며 철로 위를 쉬지 않고 달린다.


노면전차 여행을 마친 뒤 체크인을 하러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5층으로 된 건물이었는데 4층에는 피부관리실이 있었고 5층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다. 4층 피부관리실에서 스태프를 만나 체크인 수속을 완료하고 근처 강가를 산책하고 싶어 밖으로 향했다. 강가 옆에 있는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무를 그늘 삼아 잠시 쉬었다.


세븐일레븐에서 야채덮밥과 히야시츄카(중국식 냉라면)를 산 뒤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오늘 머무는 일본인이 거실에 앉아 쉬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를 마치고 야채덮밥을 데우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조작했다.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의 전자제품은 조작이 어려워서 몇 번을 시도해도 동작이 되지 않았다.

"스미마셍, 이거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그녀가 버튼을 몇 번 조작하자 전자레인지가 동작했다.

"고맙습니다!"

"한국인이세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다. 그녀는 영어를 하지 못해 번역기를 통해 그녀와 나는 한 번씩 돌아가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제 이름은 다케타 카즈코예요. 간사이 사람입니다. 은행원을 퇴직한 후에 현재는 요가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어요. 구마모토는 갑자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오게 되었어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말이죠."

"저는 서울에서 온 김도석입니다. 내일 계획이 없으시면 같이 여행을 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좋아요! 제가 렌터카를 빌려서 운전을 할 테니 아소산으로 같이 가보실래요?"

"너무 좋죠! 차를 타고 일본을 여행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너무 기대가 됩니다."

"내일 오전 7시에 다시 만나요!"


다음날 아침 카즈코상과 나는 구마모토역 근처에 있는 렌터카 회사로 향했다. 그녀는 길을 걷다가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초등학생에게 간사이 사투리로 갑자기 말을 걸고 몇 분 간 대화를 한다.

"카즈코상 아까 그 아이는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 제 아들이 아마추어 야구선수라 그냥 대화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당신은 정말 멋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김상! 당신은 당신 그대로가 좋아요."


카즈코상과 나는 노면전차를 타고 구마모토역에 도착하였다.

"김상! 내가 렌터카 수속을 하고 올 테니 잠깐 기다려주실래요?"

"물론이죠."

몇 분 뒤에 닛산 소형차를 타고 아소산으로 향했다.


아소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여러 대화를 나눴다.

"김상. 저는 혼자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놀랍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꼬불 꼬불한 산길을 지났다. 푸른 하늘과 드넓은 산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스폿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30분 여분 정도를 차를 타고 마침내 아소산에 도착하였다. 가스 경보가 있어 분화구로 가는 길은 통제되었다.

"카즈코상! 저기 앞에 호수가 있는데 저기 한번 가봐요! 그리고 다이칸보 전망대라는 곳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여기 가보시는 건 어때요?"

"가봅시다!"


다이칸보 전망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저는 은행원으로서 커리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즐거운 것보다는 스트레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즐겁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경청해야 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에 코코로(마음)로 듣습니다. 스킬은 그다음입니다"


"김상, 지금을 소중히 사는 게 우선입니다. 남의 의견은 참고만 하시고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세요. 저의 신념은 만남을 소중히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진심으로 소중히 생각했던 적이 있던가?

30여분을 더 달려 다이칸보 전망대에 도착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평야가 보였다. 시원한 산바람이 내 뺨으로 지나간다. 드 넓은 풍경에 취해 오랫동안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우리는 다이칸보 전망대를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카즈코상! 한국음식 좋아하신다고 하셨는데 구마모토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 먹으러 가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도로를 한참을 달려 구마모토 시내로 진입하는 입구에 진입하였다. 하늘에는 구름 뒤에 비치는 석양이 보인다.

"김상! 행운의 구름입니다. 케세라세라(될 일은 결국 될 거야!)"

"러키네요!"


구마모토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점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가게는 문이 닫혀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한국인 여사장님이 나오신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아이고.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오늘은 영업이 종료되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다시 차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여사장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일본인한테는 이렇게 안 하는데, 한국인이니깐 특별히 해주는 거예요. 국수라도 괜찮다면 들어오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간장으로 양념을 한 궁중스타일 소면이 나왔다.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간 맛있는 국수였다. 자극적이지 않은 심심한 물김치는 또한 별미였다. 내가 일본인과 다니며 일본어를 못하니 신기하게 보셨던 사장님께서는 물으셨다.

"혼자 여행 오신 거예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났고 카즈코상께서 일본을 여행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은 정말 러키가이이군요? 이 가게에 오게 된 것도 러키예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카즈코상은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카즈코상,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신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국에 오시게 되면 연락 주세요!"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김상"

다음날 아침 구마모토의 버스 터미널에서 후쿠오카행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갔다.

후쿠오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 얼마뒤 스태프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김상!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오버부킹이 된 손님이 있는데 영어랑 일본어를 전혀 못하세요. 한국말만 가능한데 혹시 도움을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목동에 사시는 한국인분이 오셨고 오버부킹과 1주일 내에 전액 환불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 손님은 시스템상 문제에 대해 이해해 주셨고 다른 숙소를 찾으셨다.


"김상.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괜찮다면 맥주를 대접해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녀가 판매용 냉장고에서 삿포로 맥주를 꺼내 직접 따라주신다.

"저는 나츠미라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김상! 영어는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잘하시던데요!"

"저는 호텔에서 매니저도 했었고, 아일랜드에서도 워킹홀리데이를 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미국에서 1년간 댄스 학교를 다녔습니다. 내일 떠나시죠? 아쉽습니다. 다음에 후쿠오카에 오게 되면 또 들려주세요!"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작은 소동이 마무리되고 그렇게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밤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푸른색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하늘은 참으로 푸르구나.

구름아 잘 가거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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