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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

by 이종준

- 지난 500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은 1945년 7월16일 오전 5시29분 45초였다. 정확히 그때, 미국 과학자들이 뉴 멕시코 주 앨라모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그 순간 이후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만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지니게 되었다. _ 사피엔스 353~354p _ 유발히라리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다 소개한 부분이 눈에 띄어 다시 ‘사피엔스’를 찾아 읽고 곰곰히 생각해 본다. 인류의 역사가 정지하는 ‘결정적인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혜성 충돌? 기후 변화? 핵전쟁? 등등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핵전쟁은 그나마 인간의 선택이나 노력이 들어갈 수 있고, 지난 70년 동안은 관리를 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투하 이후에 사고가 아닌 직접적인 핵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체르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같은 사고가 있기는 하지만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기후 변화는 좀 심각하다. 지난 폭우, 요즘 폭염을 생각하면 관리에 실패한 것 같다. 어쩌면 이상 기후에 대한 적응도 해 나가겠지만, 지구가 스스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 인류의 힘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하다.

하나 더 생각해 보면 '유발히라리'도 언급하지 않았던 인공지능 AI, 특히 생성형 AI는 얼마나 위험할까를 생각한다. 챗 GPT로 대변되는 것 말이다. 드디어 지구에 인간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그냥 학습적으로 방대한 정보를 모아서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가 생긴 것이다.

핵은 물질로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이 생성형 AI를 '어떤 존재'로 인식한다. 어느 순간 관리할 수 없을 것으로 대부분 언론, 미래학자,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어떤 존재’인 그들은 온라인 속에서 살아서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생성형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 매트릭스, 아이로봇의 이야기가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더구나 몇몇 과학자는 어쩌면 그 ‘특이점’이 이미 지났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등골이 오싹하다.

그럼, 어쩌면 챗GPT, Bard 등...생성형 AI가 등장한 날이 인류사에 '단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이 아닐까? 이들 새롭게 나타난 존재들은 우리와 함께 발전,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앞에 서서 우리를 인도할 것은 분명하다. 영화처럼 AI 안에서도 '좋은 AI'와 '나쁜 AI'가 인류의 생존을 놓고 싸울까? 인류와 문명의 존치를 지구에 대한 해악으로 인류를 공격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예상한다. 즉, 인류는 인류 스스로 자신을 공격하여 파멸시킬 수 있는 존재를 탄생시킨 것이다.

<사피엔스>를 처음 접하고 궁금했던 것은 저자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였다. 예상대로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책 표지에 있는 글만 옮기면 이 책은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을 한 책이고, '2100년이면 현생인류 사라질 것'이라 예언을 한‘ 책이다.’, 책의 앞 뒤로 ‘역사와 현대 세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수렵채집인이던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의 사회와 경제를 이루었는지 알려주는 인류 문명화에 대한 거대한 서사' 등등의 찬사와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대서사, 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항해한 인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이렇게 소개된 문장만 해도 거대한 역사의 강을 보는 듯하다.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던 <사피엔스>가 '신이 된 동물'이 되는 과정이 유심히 읽힌다. 유발 히라리는 마지막에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체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렇게 많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바라보기엔 자신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인간들이 신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인류가 탄생한 이래 쉬지 않았던 전쟁, 지금도 여전히 전쟁을 하고, 핵실험을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AI를 만들어 로봇 시대를 사는 신들인 인간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신처럼 너무 무책임하고, 너무 위험한 ‘신’들이 아닐까? 다른 생명체의 시선으로 본 인류의 일상은 매일 버튼으로 벼락을 켰다 껐다 하고, 불을 쉽게 만들고 가스 렌지, 보이지 않는 전파를 이용하고 전자 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야기할 수 있는 핸드폰을 쓰는 신인 것이다. 이건 제 아무리 똑똑하고 IQ가 있다는 동물이라도 못 할 일이기에 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사피엔스>가 좋은 것은 방대한 정보의 전달과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은 어떨까? 비교하며 읽는다. 나는 인간이 지금처럼 지구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면 스스로가 ‘신이 된 동물'로 자처할 뿐 분명 ’신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만든 핵은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핵발전으로 인류에게 전기라는 선물을 지금도 제공하고 있다. MRI 등 의료기기에서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역시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위험한 물질인 핵 물질도 긍정적,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다.

일본이 시도하고 있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의 바다 방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어쩌면 핵 오염수 방류로 인한 전 세계 바다 오염도 어쩌면 '단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도 자연 상태의 핵이 아닌 인간이 만든 핵, 그 핵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검증이 철저하다 했지만,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다면 인류는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인류사적 사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핵 오염수 방류와 인류가 만든 AI, 생성형 AI는 인류문명의 방향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궁금하다.

앞으로 인류는 지속적으로 문명를 발전시키며 영속할 수 있을까? 글쎄, 내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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