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어떤 문장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순간이 있습니까? 전 많습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온 몸에 전율이 흐를 때도 많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보다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면 요즘은 자주 웁니다. 왜 그럴까요?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길을 가다 자꾸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행이나 등산에서 좋은 풍경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큰 숨을 쉽니다. 숭배의 마음이 들어온다.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면 주변 세상이 밝아지거나 공기가 바뀌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쌓일수록 삶은 더 풍성해집니다. 이런 변화는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관, 생활습관이 바뀔 정도의 경험이나 충격을 받는 경우는 좀 드뭅니다.
고정된 듯한 하늘에도 가끔씩 새로운 별이 나타납니다. 별이 새로 생기면 신성新星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후 항상 존재하게 되고 우린 늘 그 별을 봅니다. 조금 다른 형태로 밝았다 사라지는 별도 있습니다. 초신성超新星입니다. 초신성은 질량이 큰 별이 진화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폭발이지 별이 항성이 아닙니다. 새로운 별新星보다 만 배 정도 더 밝지만 곧 소멸한다. 별은 소멸하지만 대폭발로 발생한 무거운 원자들이 지구로 날아와 쌓이면서 생명체를 형성하는 근본 원소가 되었습니다. 우주적 거대한 폭발 덕에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초신성의 발견은 몇 백 년에 한 번, 몇 천년에 한 번이어서 역시 매우 드물게 발견됩니다.
2006년 제주 자전거 여행, 그때 나는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는 경험을 한 뒤 나타난 초신성을 보았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날 나는 제주도 '최남단 해안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3박 4일 예정으로 시작된 제주도 자전거 여행 사흘째, 목표한 지점은 송악산입니다. 대정은 평지지만 하모 방파제에서 송악산까지는 끝날 것 같지 않은 낮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제주 해안도로 일주 중간 지점인데 엉덩이는 첫날부터 불타고 있고 온 몸의 관절들이 마음과는 달리 삐걱거립니다. 즐거운 상상으로 홀로 떠난 제주도 해안도로 자전거 일주가 힘든 현실이 되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왼편으로 오름들이 보이고 오른쪽에 송악산이 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쉬엄쉬엄 즐기는 게 이번 여행의 콘셉트이었지만 목표점이 보이니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습니다. 길 끝을 볼 때까지 쉬지 않으리라 굳은 다짐을 하고 속으로 스스로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호흡은 거칠어지고 다리는 근육이 뭉치고 시선은 자꾸 자전거 앞바퀴만 바라보게 됩니다. 고개와 가슴은 핸들 쪽으로 점점 더 숙여집니다. 제주엔 왜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왜 생활의 끝은 보이지 않는지,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지. 내일이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몸은 무겁고 잡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전거는 지그재그로 흔들렸습니다. 그렇게 '헉헉' 거리며 언덕배기에 도착했을 때 오르막에 가려졌던 푸른 바다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 약간의 겨를도 주지 않고 '파란'이 순식간에 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장관입니다. 그 순간은 뭐랄까... ..! 내 안에 쌓어있던 뭔가도 마치 초신성처럼 폭발했습니다. 세상은 푸른 바다와 바다를 꼭 닮은 하늘이 있을 뿐입니다. 온 우주도 나도 바다고 쪽빛이었습니다. 무엇하나 걸림 없는 자유의 세상이 펼쳐졌다. 껍질을 깨고 나온 '대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푸름만 존재하는 세상을 한참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그 상황을 오랫동안 즐겼습니다.
잠시 뒤 내 마음속 어디에선가 초신성이 등장했습니다. 마음에서 였는지 몸이었든지 어딘가에서 뭔가가 폭발하여 내 속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말할 수 없이 짜릿하고 뜨거운 자신감이 온몸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까지 스며들었습니다. 타인처럼, 혹은 다른 이의 성공과 비교하며 살던 삶이 터져버렸습니다.
내 안에 있던 초신성이 만났습니다. 그때 나타난 초신성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내 안에서 여전히 빛나고 번쩍하는 순간있습니다. 분명한 내 것으로 남았습니다. 인생에서 번쩍하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