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시 40분. 알람 맞춰진 기상 시간이다.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이불 속에서 게으른 행복을 즐기며 더 빈둥댄다. 몸을 정확히 큰 대大 자로 뉘고 몸과 마음도 뇌를 생각하며 긴장을 푼고 천천히 다시 눈을 감는다. 가슴에서 시작해서 귀로 들어오는 울림이 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명치에서 ‘천수경千手經’이 흘러나온다. 손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그 소리를 들으며 오늘 나에게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며 입으로 지을 업業을 미리 정화한다는 마음으로 따라한다. 어제 말로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는지 떠올린다. 다행히 없다.
다음은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오는 신들을 포함 다섯 방위와 안과 밖 등 세상의 모든 신들을 편안하게 하는 진언이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입조심부터 시작해서, 온 사방의 존재들을 안온히 하고, 진리를 만난 것에 대한 감사함과 그 진리의 법을 펼침에 대한 알림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천천히 천수경을 꼽씹으며 오늘 새벽 루틴을 시작한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천수경을 들은 지 서너달 된다. 천수경을 듣는 것도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매일 점검해 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고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독송 길이가 짧아 절에서는 아침저녁 예불 등에서 자주 쓰는 대중적인 경전이다.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며 나를 아름답게 점검하는 도구로 쓴다.
천수경은 대승경전인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구성이 참 다채롭다. 인도식 진언도 있고 중국식 설명도 있다. 부처님 생존 당시에는 문자가 없없다. 경전이 입으로 전승되어 온 탓에 경전 형식이 일정한 리듬과 게송이 중요한 진언 형태의 표현으로 전해졌다. 문자가 생긴 후 경전의 신성神性을 설명하는 문장이 들어오며 대승불교의 많은 보살들을 칭송하고 있다. 또 뜬금없이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청하며 힌두교 신들을 찬송한다. 아마도 인도에서 불교와 힌두교가 종교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면서 서로의 신들을 경전 속으로 모시고 온 듯하다.
많은 부처님 명호도 부르고, 살면서 잘못하거나 계율을 어긴 것에 대한 참회 진언을 외운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다시 진리의 법을 펼친것에 대한 것과 몸을 보호하는 진언을 외운 뒤 그 유명한 ‘옴 마니 반메 훔’을 송頌한다. 이후 불교(佛敎)에서 바탕을 이루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의 삼보三寶에 귀의함을 밝히며 천수경은 마무리 된다. 여기까지가 아침에 일어나 20분간 하는 루틴이다. 나의 새벽 루틴!
아침 루틴의 시작은 노란 몸통에 녹색 머리를 한 믹스커피 한잔을 먹는 것이다. 오래전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이제 믹스커피를 아침에 한잔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 꼭 해야 할 일을 안한 것 같기도 하고 기운도 없는 것 같다. 이 믹스 커피에 중독된 지 오래다. 다음은 혈압약, 전립선약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약을 먹고, 기운도 나라고 비타민제 하나를 먹는다. 이러나저러나 내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순서다.순서대로 먹는 건강 보조제의 시간, 약을 먹는 시간도 루틴이다.
출근 전까지 몇몇 카톡방에 시 한 편과 사진 한 장을 올리며 하루 인사를 챙기는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 출근 전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시간이 의미가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얼굴을 모르는 많은 분이 힘이 된다는 댓글을 남기고, 글을 잘 보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매일 아침 시 한 편을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에서 채워지는 뭔가 뿌듯함이 있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기분이 든다. 카카오톡에 시와 사진을 올리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은 3~4년 동안 쉬지 않고, 빠지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아침 루틴이다. 나의 아침 루틴!
일과를 보낸 후 집에 오면 현관문을 여는 것부터 루틴이 시작된다. 현관문과 우리 집 문 비밀번호 두 개를 누른다. 가방을 중문 옆에 두고 외출복을 벗어 털며 탈취와 항균 기능이 있는 페브리즈를 외투와 바지에 뿌린다. 샤워를 하고 나와 대략 7시쯤이면 저녁을 먹는다. 오늘 하루 있었던 사소한 일과 반복된 일상을 이야기한다.
오늘 있었던 장모님과 집사람, 그 여성들의 세계는 늘 재미있기도 하고 이해 가 안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하다. 남자인 나는 우리 어머니와 저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개개인의 관계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아들과 엄마의 관계보다 딸과 엄마의 관계가 더 깊고 좋은 관계라 생각이 든다. 부럽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하고 음식물을 버리고 종이, 재활용품을 정리해서 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 활동이 집사람이 아닌 내 저녁 루틴이라는 것이다.
저녁 8시부터는 TV를 본다. 재미있는 드라마, 스포츠 경기, 노래 경연대회, 뉴스를 본다. 보이스 피싱을 막은 뉴스를 보며 우리도 조심하자는 이야기하고, 전세 사기 뉴스를 보며 가해자들을 함께 욕을 하고 피해자들을 걱정한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소식을 보며 분노하고 북한 뉴스를 보며 가까워진 충돌을 걱정한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9시가 넘어가면 ‘도롱 도롱’ 집사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집사람은 항상 밥 먹고 2시간 뒤 9시~11시 사이에 얕은 잠을 잔다. 같은 쇼파에 앉은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혼자 조용히 TV를 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풍경이 내 루틴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아까우니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은 어떤지 생각하시는가? 그 생각도 훌륭하지만 난 이대로가 좋다.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장면처럼 하늘에서 보면 오늘 할 일을 마친 아내는 자고 남편은 TV를 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풍경 속에 덧붙일 장면은 없다. 난 아내가 살짝 코를 고는 그 사람의 등을 보는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저녁 10시, 아내가 자는 방의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컴퓨터로 간단히 기억할 일을 메모하고 유튜브를 본다. 잠시 감사의 마음을 기도하듯 가진다. 오늘도 아무 일 없는 이런 저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기쁨의 표현이다. 저녁 11시. 약속이 없다면 잠자리에 든다. 보통 선잠을 자던 집사람이 일어나 야행성 활동을 시작하면서 침대방의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며 말한다. “굿 나잇!”. 다시 몸을 큰 대大자로 만들고 몸도 마음도 뇌도 긴장을 푼다. 눈을 감으며 손가락은 손전화 버튼을 누른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다시 ‘천수경千手經’이 흘러나온다. 천수경千手經을 들으며 오늘 하루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며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생각한다.
이 밤, 천수경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그제처럼 평이하게 닫힐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이 하루 행복 루틴이 반복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잠이 든다.
아무 일 없는 오늘 하루 행복 루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