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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록 坐禪錄

by 이종준

새벽 5시. 오랜만에 가부좌를 틀었다. 먼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숨을 코로 천천히 들여 마시고 입으로 아주 천천히 내뱉기 시작한다. 한번은 목까지, 한번은 가슴까지, 한번은 복부까지, 그리고 단전까지. 서서히 입으로 내뱉던 숨을 코로 쉰다. 아주 천천히 들여 마시고 내뱉는다. 최대한 천천히... 호흡에 집중하다 숨 쉬는 것을 잊는다. 살아 숨 쉬어야 하는 목숨은 아주 천천히 자동으로 돌아간다.


눈 앞에 펼쳐진 까만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 먼저 빛이 있으라 했다. 태양을 그리고 적당한 거리에 달님을 모신다. 태양계의 별들의 사진 속 모양새를 생각하며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갖다 놓는다. 최근에 퇴출되었다는 명왕성도 갖다 놓았다. 태양계의 별들도 스스로 돌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작은 별들과 별처럼 보이는 은하, 퀘이사, 블랙홀들을 갖다 놓는다. 배경이 검어도 밤하늘을 아닌 우주 풍경 한자리를 펼쳐 놓았다. 내가 놀 시공간이 만들어졌다. 이쯤되면 주변의 작은 변화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밖을 향한다. 서서히 내가 앉아 있는 이 방, 가부좌를 튼 이 자리에서 나를 부양시킨다. 무중력 상태이지만 앉은 그대로 이 방을 벗어난다. 우리 집을 벗어나고 남구를 벗어나고 부산을 벗어난다. 대한민국을 벗어나고 아시아를 벗어나고 지구를 벗어난다. 이제 나는 지구인이 아닌 우주인이다. 지구보다 더 큰 나를 지구 북극 위에 안착시킨다. 이제 나는 지구 위에 걸터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다. 내가 제일 크다.


그리곤 온 법계法界를 마음대로 싸 돌아다닌다. 뜨거운 태양에도 고리가 매력적인 토성에도 간다. 떠오르는 길을 따라 순간이동을 한다. 목성의 대척점에도 가고, 목성의 위성인 이오, 유로파에도 간다. 멀리로는 우리 은하계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계에도 갔다가, 겉보기 등급이 가장 밝다는 시리우스에도 가본다. 하나로 보이는 두 개의 별이다. 최근에 제임스 웹 망원경으로 찍었다는 블랙홀까지... 내가 그 형상을 아는, 사진으로 본 모든 별들을 거침없이 돌아다닌다. 여긴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오래전에 지구를 떠난 보이저 1, 2호에도 들러본다. 지구를 떠나 태양계를 벗어나 오르트 구름 속을 여전히 시속 약 6만km로 날아가고 있다. 지구인이 만든 물체 중에서는 제일 빠른 속도이고 지구에서 제일 멀리 떠나와 있는 물체다. 아직 작동 중이다. 대단하다.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내 자리, 그 자리로. 호흡을 점검한다.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 아미蛾眉 지점, 눈썹과 눈썹 사이에서 출발한다. 눈, 코 잎 귀에서 놀다 목을 타고 심장, 허파, 위, 대장, 요즘 문제가 생긴 전립선 등등 장기를 구경하고, 단전, 허리, 허벅지, 무릎, 발바닥, 발가락을 살핀다. 다시 돌아와서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등을 미세한 감각으로 느껴본다. 거기에 살아있는 세포 하나하나 감각적으로 느껴보려 한다. 40여년 전, 기도 중에 경험했던 내 몸의 주파수를 떠올린다. 그 진동으로 온몸 미세한 세포 하나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내 몸 속에 살아있는 모든 세포와의 교감을 기억하고 있다.

안에서 벗어나 첫 자리로 돌아온다. 호흡을 확인한 뒤, 이젠 그려놓았던 것들을 하나씩 지운다. 수많은 별을 하나씩 지운다. 보이저호도 지우고, 명왕성, 해왕성, 천왕성을 지우고, 토성을 지우고, 목성을 지운다. 화성, 달, 금성, 수성을 지운다. 이젠 태양과 지구, 지구 위의 나만 남았다. 태양을 지운다.


물리적 빛은 사라졌지만 지구와 지구 위의 나라고 생각하는 형상은 스스로 존재한다. 이제 지구를 지운다. 남극부터 천천히, 칠판지우개로 그림을 지우듯 위도 별로 남극이, 뉴질랜드가, 호주가 지워진다. 적도가 사라지고 필리핀이, 라오스가, 중국 남부가 지워진다. 일본이, 대한민국이, 러시아가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북극을 지운다. 이제 이 세상에 오롯이 나의 형상만 남았다.


다시 보이는 것을 지운다. 먼저 가부좌를 튼 다리를 지우며 생각한다. 이 다리가 나인가? 내 몸이지만 나는 아니다. 다리를 잃은 사람도 살아간다. 엉덩이와 허리도 지운다. 내 몸이지만 나는 아니다. 나를 지우던 지우개가 가슴, 목까지 올라왔다. 목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이 머리, 이 얼굴이 나인가? 아니다. 머리와 뇌를 지운다. 근육이 굳는 병으로 몸을 쓰지 못했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뇌만 살아있었다. 그 상태에서 엄청난 저서와 활동, 물리학의 발전에 기여 했다. 물론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가능했다. 그럼 뇌가 나일까? 뇌의 일부가 잘려나가도 살아간 사람이 있다. 물론 문제는 발생했지만 생존은 했다.


머리 끝에 일어나 있던 머리털 한 가락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지웠다. 자! 그럼 무엇이 남았는가? 지금 이 질문을 하는 이는 누구인가? 참 나인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무상고무아無常苦無我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서산대사께서 입적 직전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 에는 내가 너로구나.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서산스님의 그 나는 누구인가?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집중하여 호흡하며 주문한다. 감각을 살려 돌아온다. "옴 마니 반메 훔"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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