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국정감사장에서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이 소환되었다. 선생은 1968년부터 1988년까지 긴 수감생활 동안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한 시대의 지성인이자 철학자였다.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 '강의' 등 베스트셀러 작가,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장, 석좌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감옥에서 서예를 배워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신영복체'가 있는 서예가다. 선생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에 크게 차이가 난다. 각자 호불호가 있는 시선으로 선생을 바라보지만 20여 년간의 수감생활에서 체득된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숙고가 담긴 저작과 훌륭한 서체에 대한 평가는 인정하는 바가 있다.
1981년 7월 21일 자 아버님께 보낸 편지 일부분이다.
'그러나 그저께 밤중의 일이었습니다. 여태 없던 서늘한 바람기에 눈을 떴더니 더위에 치친 동료들을 위하여 방 가운데서 부채질하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상
嚴霜은 정목貞木을 가려내고 설중雪中에 매화 있듯이 고난도 그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을 묻고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인정을 보지 못하고 지레 '미움'을 걱정함은 인간의 선성善性의 깊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견短見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선생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깊은 숙고를 할 수 있을까!
펠로폰네소스 전쟁 8년 차에 아테나이인 투퀴디데스가 지키고 있던 암피폴리스가 라케다이몬 장군 브라시다스에 의해 함락된다. 암피폴리스를 잃은 책임을 물어 아테나이인들은 장군이었던 투퀴디데스에게 20년간 추방령을 내린다. 아테나이 부자이자 귀족인 투퀴디데스는 이 기간에 '펠로폰네소스전쟁사'라는 역작을 남긴다. 그때 만약 투퀴디데스가 방어에 성공하고 기록하지 않았다면 2,500여 년 전에 벌어졌던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전쟁에서 지고 아테나이에서 추방된 한 개인이 괴롭고 힘든 시기에 위대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조선 후기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신유박해가 일어난다. 기독교인이었던 다산 정약용도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배교하여 유배로 감형된다. 이후 18년간 긴 귀양 생활 중에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많은 조선 후기 기록물을 남긴다. 그중 목민심서는 지방관리들에게 백성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목민관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스터디셀러다. 정치적, 종교적 박해 속에 살던 조선의 지식인은 긴 유배에서도 자기 할 일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불행하고 치욕적인 시기를 이겨내고 공동체적에 큰 업적을 남긴 지식인은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책 '사기'를 쓴 사마천도 궁형을 받고 은거 중에 사기를 썼다고 한다. 전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일로 삶의 행로가 바뀌었을 때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책무責務을 알고 실천했다. 개인적으로 긴 세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나 어찌 되었던 결과물은 고전이 되고 역사가 되어 공동체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한 개인 수감 기록물을 넘어서 '고난의 순간을 버텨 낸 숙고'의 결과물로 고전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내게도 힘들고 일에 허둥대던 시기가 있었다. 새 천년을 시작하던 해, 서기 2,001년 나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 당시 벤처기업 붐이 일어나 기술 중심 '. com'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때다. 30대 중반 패기에 찼던 나도 그 대열에 뛰어들었다. 4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얼마 뒤 직원이 20명이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회사는 계속 발전했다. 회사가 잘나가자 같이 시작한 사람 간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회사 미래 먹거리에 대한 방향 설정에 상호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였지만 대표와 기술이사 간 갈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기술이사 편에 섰던 나도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기술이사와 함께 회사를 그만뒀다. 스스로 사표를 내고 자진 퇴사 형식을 취했지만 쫓겨난 셈이다. 문제는 이후 1년간 방황이다. 전국에 있는 절을 돌아다니며 마음을 추스렸지만 평화롭지 못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 무엇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더 힘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뜬금없이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뭘 할까! 자신의 삶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난을 넘어서는 앞선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있었고, 나도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책무責務를 다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