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을 수용한 날
마음이 매운 날,
나는 네댓 살의 나를 떠올린다.
엄마와 함께 충남 청양에 있는 외갓집에 갔다.
그때의 청양은 6·25가 일어났다는 소식도 늦게 전해질
정도로 외졌다고 한다.
외갓집에는 외할아버지만 계셨다.
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이었지만, 앞마당은 제법 넓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께서 농사지으신 고추를 태양볕에 말리려 하셨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고추를 널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고추를 두 손으로 평평하게 폈다.
그러다 엄마와 멀직히 않아
고추를 바닷가 모래처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빨갛고 맨질맨질한 겉만 보고
매서운 성격은 모른 체 재미있었다.
그러다 고추의 매운 냄새 때문인지,
머리카락 때문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코와 눈이 간질간질해졌고,
본능처럼 올라간 손은 대참사를 불러왔다.
극심한 공포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더니,
나는 발버둥도,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두 눈을 꼭 감고 얼음이 되었다.
시간이 한 참 지난 것 같았고,
그래서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살짝 떠보았다.
어림도 없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눈을 찌르는 듯
따가워 깜짝 놀라
나는 얼른 다시 눈을 꼭 감았다.
이번엔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듯 더 세게.
이 정도면 괜찮을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확실히
처음보다 덜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놀랍게도 따가움은 점점 날아갔고,
마침내 고추의 매운맛은 순한 맛이 되었다.
그때는 이미 한낮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종종 그날을 떠올린다.
마음이 따갑게 힘들 때.
그럴 때 나는 매운 마음을
부정, 부인하지 않는다.
없애려 하지도 않는다.
그때로 돌아가
그냥 눈을 감고 내버려 둔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맵고 따갑던 마음이
조금씩 순해진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수용’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