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이었다.
할미꽃.
엄마가 저를 임신했을 때 꾼 태몽입니다.
난 태몽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많고 많은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 중, 하필 할미꽃 이라니!
힘없이 고개 숙인 듯한 모양, 꽃 색깔은 또 얼마나 촌스러운지,
가장 싫었던 건 무덤가에 핀다는 점입니다.
난 싫었어요.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죠.
한 지인에게 내 태몽얘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녀의 돌아온 대답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죠.
“난 정확한 생일도 몰라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라고요.
반 백 살이 넘은 지금, 어리고 철없던 내가 웃음이 나더군요.
할미꽃은
유라시아·북미 대륙 쪽에 주로 서식하고,
한국에는 원종인 할미꽃, 가는 잎할미꽃,
분홍할미꽃, 동강할미꽃이 자생한다고 해요.
야산 무덤가에서 자주 보이는 이유는,
산과 들, 양지쪽 풀밭에서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벌초를 자주 해주고 잡목이 우거지지 않는
환경이 이상적인 장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래요.
한의학에서도 잘 쳐주는 식물로,
약재로서의 이름은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한데요.
꽃말로는 충성. 신라 시대의 설총이 지은 이야기 화왕계에서,
꽃의 왕 모란에게 아첨하는 장미와 달리
지혜로운 조언을 하는 충신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할미꽃은 외유내강인 듯해요.
겉모습은 초라해 보일 정도로 소박하지만,
왕께 옳은 말을 하는 충신처럼 자신만의 철학과 취향이 뚜렷하죠.
그래서 양지를 좋아하고,
잡목이 우거지지 않은 벌초를 자주 하는 야산 무덤가를 고집하니까요.
엄마는 신비하고, 흥미로운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할미꽃’ 태몽 얘기를 해 주셨어요.
할미꽃이 예쁘다고 하셨죠.
물론 태몽도 맘에 들어하셨고요.
나만 아니었던 겁니다.
태몽은커녕 생일도 확실히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태몽이 있다 것, 게다가 꽃이라는 것, ‘충신’이라는 꽃말인 것.
감사합니다.
‘할미꽃’ 태몽을 꿔주시고, 들려주셔서!.
엄마!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