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의 주인공이자 나의 현남친(?) 인 바이올린 씨와 만나게 되었다. 뭐 그 이전에 바이올린을 사고 어쩌고 한 일들이 있겠지만 8살이 되기 직전의 나이었던 나는 첫 번째 레슨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첫 번째 레슨은 아마 아주 특별했을 거다. 대부분 아이들에게도 그렇겠지.
그때 우리가 간 바이올린 학원은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 바로 건너편 건물이다. 그때당시는 그 근처에 살았으니 아마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학원에 간 게 아닐까... 싶다.
그 학원은 스즈끼 음악학원이었는데 상가 2층에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첼로도 가르친다고 쓰여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학원을 7년 동안 다니면서 첼로를 연주하는 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들어가면 일종의 '거실' 느낌의 대기실? 이 있다. 레슨 방이 한 3개 정도, 합주실이 1개가 연결되어 있고 푹신한 보라색 소파와 낮은 책상 그리고 정수기 옆에 낮은 책장이 있다. 레슨방까지 따라가지 않는 부모님들이나 합주할 때 기다리는 부모님들이 앉는 공간이다.
나는 그 학원 원장 선생님께 레슨을 7년 동안 받는 중인데, 그 말은 내가 레슨을 받는 방이 중앙에 있는 방이란 말이기도 하다.
그 레슨실에 들어가면 방 뒤편에 전신거울과 그 옆 조그만 탁자와 두 개의 의자, 문 옆에 또 다른 푹신한 의자와 바이올린과 잡동사니가 올려진 그 옆 커다란 책상, 그리고 그 옆 피아노와 그 앞 선생님의 의자가 있다.
이런 장황한 묘사는 그러려니 넘겨주셔도 좋다. 그 묘사 자체보다는 그 공간에서 일어날 일들이 훨씬 중요하니까.
오늘의 이야기가 펼쳐질 곳도 그 레슨실이다.
8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릴 적 나는 푹신한 의자에 앉은 선생님 앞에 섰다. 자그만 바이올린이 내 손에 들어있었고 내 뒤에 의자에는 엄마와 그 당시 꽤 귀여웠던 내 남자 쌍둥이가 앉아있었다.
"자, 바이올린 이렇게 잡고. 인사해 봅시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렇게 레슨이 시작했다.
그때당시 시작하고 끝날 때 인사하는 법을 배운 나는 그 후 7년 동안 레슨에서, 그리고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그 인사를 반복했다.
정확히 뭘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엄청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내게 열심히 바이올린을 잡는 방법을 알려주셨겠지. 바이올린 초보자였던 나는 바이올린의 네 줄 중 하나만 연주하는 법을 배웠을 거고...
나름 열심히 했겠지?ㅎㅎ
열심히 했던 기억은 난다. 선생님께서 부담스럽게 내 앞에 서계시기도 했고, 뒤에 엄마의 따가운 시선도 너무 잘 느껴졌으니까. 그렇지만 그 당시 '열정'이 부족했던 나를 자극한 말이 있었다.
"어머 쟤 좀 봐. 눈빛이 초롱초롱하네."
선생님의 말씀.
그 말이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심지어, 한 번도 아니었다.
"그래, 저렇게 집중해야지."
"어머어머 쟤 좀 봐."
그것은 나의 뒤편에, 엄마 옆에 앉아있던 나의 쌍둥이를 겨냥한 말이었다!
그 당시 걔는 외모는 조금 귀엽고 키는 나보다 작았으며(이제 성장이 끝난 나에 비해 남자인 그 녀석은 쑥쑥 커 나보다 10cm가 크지만) 어른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는 착한 아이였다.
아마 호기심 때문에 굳이 굳이 내가 레슨 하는데 같이 온 내 쌍둥이는 특유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레슨쌤의 마음을 완벽히 뺏은 모양이었다.
나의 질투심은 불타올랐다.
질투심이라기보다는... 내 레슨인데, 내가 더 집중받고 싶었다.
최대한 쌍둥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따라 하며 선생님의 행동을 관찰했고, 선생님이 쌍둥이의 눈빛을 감탄하실 때마다 획획 돌아서 그 눈빛을 관찰했다.
휴.
그때 나도 참.
그날 레슨이 끝나고 내 쌍둥이는 울며 불며 엄마한테 매달렸다. 바이올린 배우게 해달라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멋진 남자아이를 키우는 로망이 있던 엄마는 결국 포기하고 두 아이를 바이올린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내 쌍둥이는 음악의 여정에서 꽤 오랜 시간 나와의 동료가 되었다.
초중반에 나는,
아니, 애초에 나는 태생부터 짜증이 많았다.
아직 내가 내 성격을 정확하게 진단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지만, 사실 짜증이 많은 성격이긴 하다.
짜증이 많으며 내가 최고로 잘나야 하고 남이 날 지적하는 걸 몹시 싫어한다.
요즘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최고조였던 시기.
나의 짜증을 7년 동안 받아주신, 그리고 아직도 금요일마다 30분씩 받아주시는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악기를 배우면서 참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할 일을 만들었구나...;;
수업은 30분 정도의 '레슨', 그리고 월요일 저녁에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연주하는 '합주'를 하는 구조로 나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합주는 못하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나는 레슨과 합주를 성실히 다녔다.
이번 글에서는 초반 당시의 레슨, 다음에는 합주 내용이 나올 듯하다.
상가 계단을 엄마와 쌍둥이와 함께 올라간다. 2층인데 계단이 가팔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보이는 문.
불투명한 유리문을 한 명이 연다.
딸랑~
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우리는 들어간다. 신발장에서 나와 쌍둥이는 신발을 벗고 그냥 들어가고 엄마는 옆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온다. 대부분 일찍 왔기에, 안에는 우리 또래의, 혹은 우리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들이 낑낑대는 악기를 들고 애쓰고 있다.
소파에는 부모님이 앉아계실 때도, 아니면 레슨실에 들어가 계서 아무도 없을 때도 있다.
주로 아이가 어린 경우에 부모님이 레슨에 함께 들어가신다.
바이올린을 아무렇게나 두고 나와 내 쌍둥이는 정수기 옆에 낮은 책장으로 달려간다.
그곳에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만화책들이 존재했다.
되게 트렌디한 만화책은 아니다.
고전 명작 만화(작은 아씨들, 폭풍의 언덕, 햄릿과 같은)와 무슨 맹자 관련된 예절 만화책?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 이 정도의 책들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 만화책이 아닌 줄글책도 있었는데 그 어떤 아이도 그 책을 읽진 않았다.
주로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읽었고 고전 명작 만화도 꽤 재미있었다.
우리 이전 아이가 레슨이 끝나기 전까지 만화책을 읽을 수 있었다.
막 그렇게 작은아씨들의 고달픈 이야기와 제우스의 바람난 이야기를 마주하던 그때...
문이 열리며 아이(때로는 부모님도 같이)가 나온다.
"자, 누구 먼저 들어갈래?"
그때부터 눈치싸움.
내가 들어가면 내 쌍둥이는 내가 레슨 하는 동안 30분가량 만화책을 읽을 수 있다. 어차피 그다음에 걔도 들어가면 나도 읽을 수 있지만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순서'가 굉장히 중요했다.
읽던 흐름대로 만화책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가기 전에 기분 좋게 만화책을 읽을 것인가!
그때당시 우리가 뭐가 더 좋았다고 판단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누가 먼저 들어가네 누가 나중에 들어가네로 많이 투닥거렸던 것 같다.
정확하진 않지만 나중에 선생님께서 순서를 정해주셨던 것 같기도 했다. 그냥 네가 먼저 하라고. (기억상 내가 먼저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같이 들어간다. 엄마는 문 옆에 의자에 앉고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 쌤 앞에 선다. 알맞은 발 모양을 만들기 위한 발판 같은 거 위에 서서 발 모양을 잡고 레슨을 시작한다.
바이올린은 까다로운 악기다.
왼손으로 바이올린의 목 부분에 줄을 눌러 음을 변화시키고 오른손에 활로 줄을 그어서 소리가 나게 만드는 데, 소리를 내기는 비교적 쉽다. 이제 어려운 건 '정확한 음'을 내는 거다.
기타와 같이 부분별로 나누어져있지 않아서 내가 어느 부분을 눌러야 어느 음이 나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지금 나는 7년 동안 그 짓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 위치를 완벽하게 외웠다.
그 당시에는 목 부분에 테이프를 붙인다.
이 테이프에서 1번 손가락(검지)으로 짚으면 엄마줄(제일 앏은줄)에서 '미' 소리...
같은 테이프에서 같은 손기락으로 짚으면 아빠줄(그다음 얇은 줄)에서 '시' 소리....
음정과 씨름하며 짜증 내고 툴툴대고 뭐 어찌저찌 레슨을 진행한다.
초반에는 30분 동안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진짜 레슨 중간에 그냥 앉아버리기도 했다. 다리 아프고 힘들고 그게 예의 없다는 생각도 못할 때니까.
레슨이 끝나면 첫 레슨에 배웠던 인사를 한다.
"자, 바이올린 들고. 선생님한테 경례. 엄마한테 경례."
바이올린을 손에 쥐고 선생님한테 인사, 엄마한테 인사하면 그때부터 난 자유였다.
내가 나가기 전 선생님은
"잘했어~"
라고 하시며 내 손에 마이쮸 두 개를 쥐어주신다.
모든 아이들에게 이 보상을 부여하시기에, 선생님 바이올린 옆에는 마이쮸 큰 봉지가 늘 놓여있다.
요즘 보니까 없던데, 아직도 어린애들한테는 주시나, 갑자기 궁금하다.
신나게 나가서 마이쮸를 입에 물고 쌍둥이가 들어갈 동안 만화책을 펼치면 내 할 일은 끝.
아 하나 더 있다. 혼나기.
쌍둥이가 레슨을 끝내고 엄마가 만화책을 들고 징징대는 우리를 데리고 학원에서 나오면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 남아있다. 긴 복도를 걸어가며 엄마에게 오늘 레슨에서 짜증 냈다고 혼난다.
그래. 그럴 만도 하다.
진짜 짜증 겁나게 많이 냈고 선생님도 레슨이 끝나고 내 욕을 중얼거리셨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할 말이 없다.
음정이 조금 낮다고 지적하면 엄청 높여버려서 아예 다른 음을 짚는다.
음정이 조금 높다고 지적하면 엄청 낮춰서 아예 다른 음을 짚는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짜증 내고, 한 곡 통과 못하면 노려보고, 힘들다고 성질낸다.
정말 그때 나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극한 직업이다.
나름 레슨 가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많이 혼났고 그랬지만, 난 잘했다.
나는 한 절대음감의 40% 정도 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음을 듣고 이게 무슨 음인지 분간할 수 있는 정도. 노력을 해서가 아닌, 그냥 음이 들리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도~' 뭐 이런 소리가 들린다.
(절대음감처럼 목소리를 음으로 바꿀 순 없다. 정말 절대음감의 40% 정도 되는 능력이다)
이러한 나의 특성들이 바이올린과 꽤 잘 맞았다.
바이올린은 내가 내 소리를 듣고 음이 높은지 낮은지, 어느 음을 짚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악기이기에.
그래서 나는 바이올린을 꽤 잘했다.
잘하니까, 나쁘지 않았다.
짜증도 났지만, 괜찮았다.
그런 마음으로 7년을 다녔다, 다닌다.
아직도 나와 그이의 7년의 역사에서 중요한 다른 한 부분을 시작하지 못했다.
바로 '합주'라는 부분.
합주는 나를 포함한 학원의 많은 재학생들이 같이 하는 연주이기에, 거기서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그저께 학원 가던 버스에서 그 인연들 중 하나의 안부를 전해 듣기도 했었지...
그렇게 나와 그이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D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