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 비연에서 공연으로!

내가 기억나는 첫 장기자랑

by 에원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 중딩들은 '축제 준비'로 바쁘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말고사 범위로 중요한 부분 수업을 다 나갔으니 할 게 없는데 그렇다고 학교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 없으니 '축제'를 위한 학급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2학년들은 춤을 춰야 하는데 아무래도 서로 살아온 배경과 재능이 다른 32명이기 때문에 실력 차이가 상당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주 심각한 몸치이다.

그 사실을 초5 때 우리 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아주 유행했던 아이브의 러브다이브를 추다가 알아차렸다.

그때 아이들은 정말 아이돌인 것 마냥 능숙히 추는 것에 비해 나는 나조차 내가 무슨 곡을 추고 있는지 알아맞히기 어려운 돋보적인 춤선을 보였다.... 흑.


우리 반에서 춤을 가장 잘 추며 댄스부인 친한 친구와 내 대화를 조금만 적어볼까 싶다.



"야, 넌 춤 잘 춰서 좋겠다."

"에이, 잘 춰봤자 좋은 거 진짜 아무것도 없어."


일단 내 춤이 뭔지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좋은 점인걸...


"축제 준비도 훨씬 쉽잖아."

"아 근데 진짜 레알 학창 시절 벗어나면 쓸데가 아예 없음. 솔직히 그리고 축제 없었으면 니들 나 춤 잘 추는지도 몰랐을 거잖아."


"어.. 잘 추는 건 알았지."

"근데 얼마나 추는지는 몰랐겠지.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네?"

"비밀연애지. 나랑 춤은 꽁냥 대고 있는데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대화는 그렇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끝났다.


그렇다. 설사 같은 반 친구라고 하더라도 비밀연애, 즉 '비연'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공개연애, 즉 '공연'으로 사귀어야 우리가 알 수 있다. 그전까지는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커플링을 맞췄는지, 100일인지 200일인지 알 수 없다.


그 댄스부 아이는 '축제'라는 계기로 자신과 춤의 관계를 '비연'에서 '공연'으로 바꾸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했고 꽤 잘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안다. 내가 우리 반 남자애 두 명이랑 같이 학교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연주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바이올린을 얼마나 능숙히 다루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내가 다니는 곳은 학교이며 그곳은 악기 자랑을 위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런 나의 비밀 연애를 공개 연애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비연'을 '공연'으로 바꾸면서 '공연'을 하는 행위,

장기자랑이다.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장기자랑을 바이올린으로 했으며 중학교 음악시간에 한 장기자랑에도 바이올린을 들고 나왔다.

이렇게 보니까 바이올린을 장기자랑을 안 한 해는 올해가 처음이다. (올해는 중학교 특성상 장기자랑이 없었다. 중1 때도 1학기때 지필고사가 없어서 예외적으로 있었다)


1학년때는 기억이 안나는 관계로 초2 때 장기자랑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사실 서론에 비해 본론은 조금 짧은 글이라고 생각이 문뜩 든다.

그렇지만 추억이란 게 늘 그런 법이다.


섬광처럼 강렬하고 짧게 기억날 때도, 구질구질한 모든 디테일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하여간, 초2 때 나와 내 쌍둥이는 같이 합주를 해서 장기자랑을 했다.

그때는 우리 둘이 같은 반이었고(쌍둥이는 같은 반을 할지 말지 선택이 가능하다), 사실 독주를 할 만큼 실력이 되지도 않았다.


'합주'라 하지만, 사실 같은 곡을 두 명이서 맞춰서 연주하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스즈키 2권에 미뉴에트였나? 그런 곡이었다.

약간 춤곡스러운 한 페이지 정도의 짧은 곡이다.


그때 당시 나와 내 쌍둥이는 같이 교실 앞에 섰다.


우리 앞에는 악보대나 악보가 없었다. 우리는 외워서 연주를 했다.

사실 외워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딱히 어렵지는 않으면서도 상당한 부담이 가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바이올린은 어느 부분을 짚었을 때 어느 음이 나는지부터 외워야 하고, 사실 곡이란 게 자연스럽게 오래 연주하면 외워진다.

그러나 악보가 없이 공연을 한다는 것은, 내가 까먹었을 때 나를 도와줄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랑 내 쌍둥이는 장기자랑 전에 거실에서 같이 연습하곤 했다.

악보대를 앞에 펼쳐놓고 몇 번 연주하고, 악보를 접고 몇 번 하고.

그때 엄마가 했던 말도 떠오른다.



"00아, 이 노래 도돌이표가 몇 번 있잖아. 그런데 너희 중에서 혹시 한 명이 도돌이표를 안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럴 때, 너희 둘이 다를 때, 에원이를 따라가는 걸로 하자."



내가 더 잘했기 때문이다. 후훗.


내가 유일하게 더 잘한다고 놀릴 수 있는 상대, 내 쌍둥이. ㅎ.

이해를 잘 못해서 어벙벙 거리는 내 쌍둥이에게 내가 부연설명 하던 것까지 명확하게 기억난다.

그때 당시 나도 내가 더 잘하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자만했겠지ㅎㅎ



"그냥, '어! 에원이가 도돌이표 안 했네!' 생각이 들어도 그냥 나 따라서하라고. 둘이 다르면 이상하니까."



그렇게 서로 합을 맞추고 꼼수를 부리고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우릴 바라보는 친구들 앞에서 미뉴에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그 아이들은 아마 바이올린의 존재만으로도 압도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초2의 연주는 너그러이 들으셨을 거다.


그렇게 어찌어찌 잘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우리 엄마가 예측한 대로, 누군가 한 명이 도돌이표를 안 한 것이다.



도돌이표가 있을 때는 특정 부분을 다시 반복해서 연주해야 한다.


나와 내 쌍둥이가 같이 곡을 연주하다가 어느 부분에서 엇갈렸다.

서로 다른 부분을 연주하면서 우리는 아주 매우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프로답지 못하게 우리의 실수를 만천하에 알리면서 우리가 공유했던 눈빛의 내용은 매우 짧고 간결했다.



'오잉?'



다행히도, 다시 중간에서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었다.


뭐, 이것도 초2의 어리숙한 맛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아,

또 하나, 우리 9살 쌍둥이가 어리바리하게 넘긴 게 있다.

연주가 끝난 후 박수를 받으며 들어가는 우리에게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노래가 너무 좋다, 무슨 곡이니?"


그때 당시 우리는 '2-2(스즈키 2권에 2번째 곡)' 혹은 '2-3(2권 3번째 곡)'같은 형식으로 곡 이름을 부르고 작곡가는 물론 곡명도 몰랐다. 그래서 당당하게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2-2...."


"음... 그래^^ 알겠어, 잘 들었어!"


그렇다.

그러고 나서 꽤 똑똑했던 친구가 쉬는 시간에 우리에게 말했다.



"나 그거 알아! 그거 미뉴에트잖아!"


클래식에 참 조예가 깊은 아이가 틀림없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연주한 곡이 미뉴에트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곡이 미뉴에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도 우리랑 마찬가지로 9살이었고 그 아이가 어디서 그 곡명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첫 장기자랑이 끝났다.

그렇게 우리의 비연은 공연으로 바뀌었다.


그날 장기자랑에 우리가 제일 돋보이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라인업이 어마무시했고, 알라딘 노래를 영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른 애도 있었다.

(TMI로 그 애와 나는 5학년때 다시 만나서 올해까지 3년째 등하교를 같이하는 중이고 그 장기자랑에서 그 애가 노랫말을 절었을 때를 가지고 아직도 놀리는 중이다ㅎ)


그러나 그때가 내 기억상 '바이올린 학원 사람들'만 알던 나의 바이올린 실력을, 경험을, 실제 그 모습을 공개한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리고 후에 더 알게 되었지만, 크고 거창한 공연장에서 단체로 하는 공연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거의 매일매일을 함께 하는 학교 친구들에게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그 작은 장기자랑 공연이 제일 짜릿한 경우가 많다.


저번 편에 이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일까,

아무도 모르던 나와 바이올린의 특별한 관계를 내 주변인들이 딱 아는 그 순간,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짜릿했다.

오래된 비밀 연애를 공개 연애로 바꿀 때 그 느낌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중학생이 된 현재로 다시 돌아오자면,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도 내가 바이올린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아이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이제는 별로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물론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줄 때 그 느낌은 그립지만,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굳이 누군가의 인정을 통해서 의미를 띤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나도 컸다ㅎㅎㅎ



저번화랑 저저번화였나, 이 브런치북의 한두 편 정도의 글은 어딘가 널브러져 있는 바이올린을 묘사하며

'아, 진짜 해봐야 하는데, 해볼까?'

이러면서 끝났다.


그래놓고 실제로 한건 어제였다. (여기서 '어제'는 금요일이다. 역시나 나는 연재일 하루 전에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꺼낸 바이올린은 음정이 하나도 안 맞았고, 독서실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7분밖에 남지 않아서 정확히 맞추지 못한 상황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쌍둥이는 학원에 있었고 엄마아빠도 다 바쁘셔서 제대로 듣는 사람도 없었으며, 온갖 것들의 전시장이 된 악보대에 악보를 반만 걸쳐놓은 상태였다.


그야말로 극한의 상황인데, 왜 굳이 그때 바이올린을 했느냐 물으신다면,

정말 하고 싶었다.

그 바이올린을 다시 잡는 그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하고 싶어서 했다.

그리고, 그래서 정말 행복했다.


물론 내 연주는 완벽하지 않았고 바이올린 자체 음정도 맞지 않았으며, 손가락도 굳어 트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트릴을 잘하던 나였기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바이올린을 다시, 자발적으로 쥐었다는 점에서 꽤나 즐거웠다.


연주한 곡은 최근에 레슨 받던 곡의 2악장인데 (이럴 수가, 나는 이제 초2가 아닌 중2이지만 아직도 곡명을 잘 모른다.)

레슨 할 때만 연주하고 평소에는 연습조차 안 해서 엄마아빠는 처음 듣는 곡이었다ㅎㅎ



"맙소사, 이게 얼마 만에 집에서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냐!"



라던 엄마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칠까 싶다. :)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