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우왕좌왕 초2의 졸업연주회
졸업 연주회라, 일단 듣기만 해도 심장이 콩닥거리고 설레게 되는 말이다.
'졸업'이랑 '연주회'라는 두 낭만적인 단어가 붙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그윽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의 날짜는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다.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이다.
우리 중딩들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컾크'를 보내며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도 있었고 집에서 하루 종일 노는 친구들도, 약속을 잡아 노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물을 받는 방법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저번화에도 등장했던) 아침에 같이 등교하는 친구는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선물을 준다고 한다. 자신은 언니와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고 또 언니와 부모님께 선물을 받게 된다. 어찌 보면 제일 평등하고 아름다운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반에서 젤 친한 친구는 부모님께서 크고 작고 다양한 선물을 사 포장하신다고 했다. 그럼 5살 어린 남동생과 차례대로 자기가 원하는 선물을 랜덤으로 골라 뜯어보고 교환하든지 가지든지 한다고 했다.
반대로 선물을 아예 받지 않는 친구들도 충분히 많았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원래 선물을 받다가 핸드폰 잠금 시스템에 불만을 품기 시작한 때부터 '프리데이'라는 것과 바꾸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핸드폰의 모든 제한을 풀고 하루 종일 핸드폰을 자유로운 상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덕분에 나는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았고 쌍둥이는 게임을 했다.
어쨌든, 이제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이 글이 브런치에 올라갈 날짜는 2025년 12월 28일.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그야말로 정말 2025년에게 작별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
한 3달 전 나는 올해까지만 바이올린을 하고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그 후에 애증 했던 바이올린을 놓아주기가 참으로도 힘들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선택하였고, 그렇게 이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일은 역시 모르는 것인지, 현재 바이올린을 쉬게 되었고 내년 2월쯤에 몇 번 레슨을 받은 후 그만두게 될 듯하다.
결국 나와 바이올린의 인연은 2026년까지 계속된다.
오늘은 졸업연주회에 대해 써볼까 한다.
첫 졸업연주회였고, 한동안 마지막 졸업연주회로 취급되었던 바로 그 연주회.
여태까지 배운 곡들을 연주하고, 공연하고, 그 대가로 완벽히 끝낸 교재(스즈키 1,2,3권 등)를 졸업하는 연주회.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연재로써 가장 적합한 추억이 나온 것 같아 기분이 몽글몽글하다.
이런. 공들이며 쓰다 보니, 정말 이 졸업연주회에 대해 기억나는 부분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코로나 이전이었던 2019년쯤으로 나는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약 6년 전.
어쩔 수 없이 추억을 긁어모으는 수밖에.
여러 다른 연주회들과 달리 1차 졸업연주회(지금 이 글의 주제인 연주회)의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아노를 배우면서도 콩쿨 한번 안 나가보고(못해서 안 나가긴 했지만, 학원 대회 같은 것도 안 나갔다. 용기가 없어서;) 살면서 연주회라곤 저번에 말한 장기자랑이 전부인데, 아마 연주회에 대한 실감이 안 났을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한 사람이 나와서 하는 연주회가 아닌 다 같이 하는 '합주' 형식이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졸업연주회
한국스즈키음악협회에 소속된 모든 악기(바이올린, 첼로, 플룻, 피아노) 회원은 매년 졸업연주회에 참여합니다.
졸업연주는 1권부터 10권까지 각 권이 끝난 어린이가 권별로 지정된 곡을 녹음한 파일을 협회에 제출하여야 하며 녹음심사가 끝난 어린이가 연주회에 참여한 후 졸업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장소 제약과 지역 간 거리 관계로 피아노를 제외한 악기들은 현재 서울/경기/강원 지역, 충청/전라 지역, 경상 지역의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실시하고 있습니다.
(출처 사단법인 한국스즈키음악협회)
대충 찾아보니 이렇다.
이런 방대한 설명은 재처두고, 내가 그 당시 이해한 공연의 모습은
'많은 스즈키 학원의 아이들이 와서 동시에 노래를 연주한다'
였다.
어찌저찌 커다란 공연장 형태의 연주 장소로 가서 하얀 옷과 까만 치마를 입은 상태로 어찌저찌 연주를 준비한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악기나 물품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어깨받침이나 케이스에 이름을 잘 써놓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또, 이름만 쓰면 어느 스즈키 출신인지 알 수 없으므로 '분당 스즈키' '송파 스즈키' 등 지역을 같이 쓰라고 하셨다.
더불어 악기 떨어뜨리지 말라는 경고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공연 자체보다는 공연 시작하기 전, 리허설인지 입장인지 모를 그 혼돈이 가장 기억이 선명하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악기를 쥔 수많은 아이들이 얼레벌레 정해진 곳을 따라 걸어간다.
아무도 정확히 어디를 가는지 모르고, 가서 무얼 하는지 모른다.
그냥 가라고 하니까 가고, 악기를 들라고 하니까 들고....
일단 가장 믿을만한 내 쌍둥이를 옆에 끼고 그 아이들 무리를 따라 우르르 걸어가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보다 훨씬 잘했던 Y 언니를 만났던 것 같다.
그렇지만 S언니는 그 당시 이사를 한 후였는지 전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존재감이 없었던걸 보니, 아마도 그 연주회는 같이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각자 졸업하는 권의 곡을 연주하지만, 거기 참가자? 다 같이 연주하는 곡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어려운 부분 쉬운 부분 나뉘어서 돌림노래?처럼 파트별로 연주하는 노래였다.
그래서 따로 레슨 때도 연습을 했었고, 당일날 거기서 리허설도 했다.
우리를 통제하고 지휘하려고 애쓰던 지휘자분? 의 무서운 눈빛이 기억난다.
연주회가 시작한다.
약간 축구 경기장같이, 무대가 아래에 있고 관객이 위쪽에 있는 구조였다.
더불어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전광판으로 우리의 모습을 송출했다.
(이전 글들에 나왔듯이) 약간의 관종이었던 그때의 나는 그 전광판에 내 모습이 찍히길 너무너무 바랬다.
그래서 머리를 아예 반대로 틀고(연주하는 방향이나 손을 보지 않고 연주는 연주대로 하고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틀어버린 것) 전광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내가 나오나 안 나오나... 나오면 이쁜 표정 지어야지...
어라. 저건 내 쌍둥이인데?
전광판에 내 쌍둥이가 나오네?
그럼 그 근처에 내가 있을 텐데?
뭐지, 저 까만 뒤통수는 뭐지?
어?
저게 나야?
내가 어떤 모습으로 연주하고 있었는지 자각을 못하고 있던 나는, 전광판에 비치는 나의 이상한 모습을 보고 알아차렸다. 바로 고개를 홱 돌려 저게 진짜 나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내 쪽을 찍는 카메라 렌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나서 나는 마치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 마냥 멋있게 연주를 시작했다.
음, 느낌상 그랬다.
카메라는 그 후 우리를 스쳐 지나갔고 끝날 때까지 다시 나를 비추지 않았다.
대신 나보다 한 두줄 정도 앞에 있던, 머리에 연보라 리본을 하고 투명 뿔테 안경을 쓴 여자아이를 계속 찍었는데, 너무 부러워서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었다.
'와, 저 애는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것과 그 아이의 인상착의 가 6년 뒤인 지금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정말 미치게 부러웠나 보다.
"화면에 나오고 싶다."
"난 별로. 안 나왔으면 좋겠어."
어쩌다 친해졌던 옆에서 연주하던 여자아이. 그 아이는 꽤 부끄럼을 탔던 것 같다.
한 곡이 끝나면 진행을 하시는 분들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고 몇 명 아이들을 지목해서 이야기하거나 내려오셔서 아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셨다.
당! 연! 히!
나도 그 아이가 되고 싶었다.
"아휴, 00 씨 빨리 골라주세요~"
"아이, 잠시만요. 지금 너무 예쁜 친구들이 많아서 고르기가 너무 어렵네요~"
그 말을 하며 내 한참 앞에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휘적거리는 진행자분을 흘끗 쳐다보며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인터뷰를 받으면 어떻게 대답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어느 스즈키 출신인가요?'
'어, 저는 00 스즈키 출신이에요. 맞나? 어, 나 어디 출신이었지? 어, 인터뷰 나 하면 안 되겠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김 에 원이요!'
이런저런 대답을 상상하며... 당연히도 그분은 날 지목하지 않으셨다ㅎㅎ
연주회 후 다음 주 합주에서 선생님이 개인에게 졸업장과 손톱깎이... 선물을 주셨다ㅎ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준비하신 게 아니고 그 졸업연주회 한 측에서 주는 것 같다.
"자, 그리고 졸업장이랑 손톱깎이도 있어요. 손톱 좀 잘 깎으라고. 바이올린 하는데 손톱도 안 깎으면 안 되지."
왼손으로 줄을 눌러야 하기에 짧은 손톱은 필수인 바이올린이다.
물론, 난 아직도 손톱을 셀프로 뜯어버리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손톱깎이 따위 없어도 완벽한 개구리 손가락으로 비브라토가 가능하다.
내 손톱깎이는 파란색, J와 내 쌍둥이 것은 노란색이었다.
난 파란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두 남자아이들의 부러워하는 눈빛과 바꿔달라고 조르는 그 표정이 좋아서 계속 가졌던 기억이 난다.
한 명씩 나가서 선생님이 내용을 읽고 받고 들어갔는데, 엄마들이 계속 웃었다.
졸업장 내용 때문에 웃는 것 같았는데.. 그때 굉장히 의아했다.
졸업장은 현재 내 옷장에 아직도 붙어있는데 다시 읽어봐도,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싱겁게 1차 한국 스즈키 졸업 연주회가 끝이 났다.
6년 전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 더듬다 보니 꽤 정확한 글을 적은 것 같다.
이 내용이 전부인 만큼, 정말 '평평한' 경험이고 기억이었다.
모든 추억이 극적이고 인상적일 필요는 없다.
강렬한 타이틀 '졸업연주회' 안에서도 아홉 살 나는 어리바리하고 충분히 무난히 모든 걸 보냈다.
그렇지만 그 무난한 조각들이 모여 6년이 지난 지금도 추억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고 하나의 기억이 되었다.
올해의 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이 글이 업로드되는 날은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
그렇게 생각하자면 난 지금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 밤을 열심히 보내는 중이다.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강렬하지도 않게, 그냥 평화롭게. 흘러가는 대로. '일상'을.
올해의 끝도 무난하게 끝날 것이다.
올해도 별의별 일들이 많았고 드라마 같은 순간들도 넘쳐났지만, 아마 막상 31일 밤, 가족들이랑 티비 앞에서 앉아 올해를 마무리할 듯하다.
그렇게 따뜻하게 무난하게 올해도 흘러가고 내년이 찾아온다.
또, 이렇게 올해의 마지막 연재글을 준비해 본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한 해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성실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올해 행복하게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