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공백기
나는 2020년 즈음에 바이올린과 한 번의 이별을 겪었다.
한 2~3년 정도 바이올린을 한 시점으로 나는 초3이었다.
저번 화와 별로 나이차이가 나지 않는 시점(저번엔 초2였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흥미를 잃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권태기'일까?
아니다.
내가 바이올린을 멈췄던 이유는 개인적 이유가 아닌 전 세계적 이유.
2019년 말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으나, 저번 화에 졸업 연주회는 코로나 이전의 일이고 그 후에 바이러스가 나타났던 것 같다.
당시 아홉 살이었던 관계로 코로나 초기 당시 심각성이나 기억은 별로 없다.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다.
그때 당시 부모님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
"1년 뒤면 끝나겠지."
그냥 아무런 근거 없이, 막연하게.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현재 상황 설명을 들은 그 순간 아홉 살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홉 살에게 1년은 꽤 긴 시간이다.
그저 독감 유행같이 몇 개월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닌 '1년'이란 긴 시간으로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까?
어린 눈에도 그렇게 심각해 보였을까?
그렇지만 팬더믹은 알다시피 1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지배했다.
코로나가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직업 특성상 피해를 더 보신 분들도 계시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불편하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당시 영향을 덜 받는 계층이었던 어린 '학생'이던 나는 그때를 회상하면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고생스럽고 원망스럽던 기억보단 그냥 그 시간이 통채로 삭제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초등학교 3, 4학년이 의미 없이 흘러가다 내 머릿속에서 삭제되어 버린 느낌.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무서웠고,
그다음에는 계속되는 그런 일상에 지루했고,
그다음에는 코로나가 없어지는 날을 기다렸다.
그 과정을 모두 겪으면서도 열 살이 된 나는 1년이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코로나 초창기였던 2020년에 초3, 열 살이었던 나의 일상은 아주 지루하게 흘러갔다.
부모님은 일하러 가시고 초3은 집에서 영상을 보는 것으로 수업이 대체됐다.
쌍둥이와 함께 일어나서 영상을 본다.
처음에는 성실히 봤지만 그다음에는 그냥 켜두고 놀곤 했다.
영상을 듣지 않아 교과서가 백지 상태라는걸 들키고 부모님 퇴근 후에 공부하자는 이야기를 듣자 오전은 아예 놀기 시작했다.
할 일도 정말 없었지만 둘이서 정말 가열하게 놀았다.
줌수업을 하긴 했었던 것 같은데(그때 친구 한 명을 줌수업으로 사귀었다) 정확히 얼마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대부분 영상수업+일부의 줌수업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영상 시청, 줌수업, 그리고 놀기.
그렇게 의미 없이 1년이, 거의 2년이 흘렀다.
그 코로나 시기에 내가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친구 한 명.
그 친구가 아직까지도 단짝인걸 감안하면 많은 걸 얻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 두기도, 마스크도, 열체크도 없이 코로나 이전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코로나 이전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완전히 일치한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름 평화로운 세상을 돌아오게 되었다.
코로나 초반에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위에 언급된 바처럼 학교도 중지되었다.
그리고 나도 바이올린 학원을 그만두었다.
사실 1대 1 레슨 형식이었고 합주를 제외하면 사람 만날 일이 없긴 하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선생님을 나 또한 만나야 한다는 점에서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는 그만두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
...
너무 좋았다.
월요일 합주를 하기 위해서 몸을 이끌고 나갈 필요도 없다.
늦었다고 엄마한테 혼날 필요도 없다.
레슨에서 선생님한테 짜증 냈다고 혼날 필요도 없다.
매일매일 연습할 필요도 없다.
학원을 다닐 동안은, 바이올린을 배울 동안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해야만 했던 것들이 전부 의미 없어졌다.
하기 싫었던 것들을 그야말로 '합법적으로' 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는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잠깐의 헤어짐으로 생각했을뿐더러 어렸고 그다지 많은 추억도 없어 아쉽지 않았다.
그냥 잠깐 '해방된' 느낌으로 행복했다.
코로나가 조금 완화되었을 때
'이제 다시 바이올린을 다녀도 되지 않을까'라고 엄마가 이야기하셨을 때 오히려 아쉬워했을 정도다.
지금도 바이올린을 그만 두면 그런 느낌을 받을까?
지금은 연습은 아예 안 한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이자 합당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 찰나의 순간뿐이다)
합주는 참여하지 않게 된 지 오래이며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실력 유지' 느낌으로 금요일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과 나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지금은 그마저도 쉬고 있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일주일에 단 한 번도 잡지 않는 나는 지금 그다지 허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코로나 공백기 그 시절처럼 해방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이 엄청 그립지는 않다.
때때로 그 매끄러운 몸통의 감촉과 활의 아슬아슬한 느낌 그리고 줄 위를 미끄러지듯 노닐던 내 손가락이, 내 실력이 그리워 바이올린을 잡기도 한다.
그렇지만 더 이상 레슨이 그립지는 않다.
더불어, 바이올린에 대한 충동으로 손을 댄다 한들 머릿속에 떠다니는 멜로디 몇 개를 연주하고 이내 내려놓기 마련이다.
어쩌면 지금도 '영원한 이별'이 아닌 '잠깐의 헤어짐'으로 인식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조금은 성장한 나는 이젠 이별을 받아들인 준비가 된 걸 수도 있다.
코로나 공백기는 바이올린의 부재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텅 비고 하얀 시간이었다.
딱히 추억할 것도 그리울 것도 그렇다고 아쉬울 것도 없기에 한 번도 추억하지 않았던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바이올린을 놓아야 하는 순간이 앞둔 지금, 그리고 이미 반쯤은 놓아버린 지금,
그때를 더듬어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만 둘 때 내 생각만큼 슬프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나에게 시간의 제약이 없고 해야 할 공부가 없으며 느긋하게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 수 있다 했을 때 레슨을 계속할 거냐... 그 물음을 던진다면,
나는 아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7년 동안 만든 레슨 쌤과의 가깝기엔 멀지만 멀기에는 가까운 관계,
익숙한 풍경의 옛날 동네,
레슨 받는 동안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지만, 어쨌든 느낄 수 있는 클래식 특유의 여유.
그리고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가는 그 오분의 짧은 시간.
다시 걸어서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느낄 수 있는 여유.
레슨 자체보다는 '레슨'이라는 것에서 내가 쌓아온, 형성해 온 그 이미지, 그 기분, 그 익숙함이 느끼고 싶을 것 같다.
그것까지 모두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어쨌든 시간은 허투루 쓰는 것은 아니니까.
시간이 손이 있었다면,
집에서 학원까지의 그 거리, 학원의 레슨실과 합주실, 그리고 내 바이올린과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바이올린에 대한 추억은 손때가 반들반들하게 묻었을 것이다.
그 정겨운 익숙함에 아쉬워 여태까지 계속한 게 아닐까.
오늘의 추억은 여기까지, 사실 오늘은 코로나 공백기에 대한 글이었기에 다소 알맹이 없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글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코로나 공백기의 그 맹맹한 추억은 회상하는 글조차 맹맹하게 만드는 것일까ㅎ
코로나 공백기를 기점으로 내 인생은 물론이거니와, 바이올린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었다.
나의 성격과 태도가 바뀌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뀌었고 그에 따라 분위기도 움직이게 되었다.
여태까지 주요했던 인물이나 부분들이 사라지거나 변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성장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가 대략 초등학교 4, 5학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그만큼 크게 되었다.
오늘의 추억은 여기까지.
나도 모르게 다음의 변화가 가득한 추억을 더 기대하게 된다.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