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어색함, 그리고... 즐거움이랄까...
3주 만에 처음으로 다시 올린 저번 글 <방학에도 매일 등교합니다>에서 나는 '내일 두 달 만에 바이올린 학원을 간다!'라고 써놨었다.
결말만 이야기하자면, 결국 가지 못했다ㅎ
선생님과의 소통 오류로 금요일날 레슨이 있었다고 생각한 나는 닫혀버린 학원 문 앞에서 쌤께 전화드린 후에야 오늘 레슨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런!
저번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엄마와 바이올린으로 인한 갈등도 잦았고 애초에 사이가 불안 불안할 때라 차마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레슨을 한 척했었다...
그 이야기도 아마 이 브런치북 후반대에 들어갈 예정이다ㅎ
바이올린 학원 가기 전에
"우왁 잠깐만 나 2달 만에 바이올린 처음 잡는데??"
하며 후다닥 연습 비슷한 걸 하던 나는 생각보다 손가락이 잘 굴러가서 놀랐고, 아파서 놀랐다.
이걸 어떻게 7년 동안 했는지.
음악시간에 기타 배울 때 특히 손이 여린 여학생들은 기타 줄을 잡다가 물집이 나고 손이 아파서 애를 먹었다. 물론, 7년 동안 바이올린을 하며 쇠줄을 만진 나에게는 해당 없는 소리다.
쇠줄 잡고 짓누르고 손으로 떨고 비브라토 트릴...
에, 아픈 줄도 몰랐다.
몇 달 만에 다시 잡아 몇 곡을 휘리릭 연주하니, 손끝이 짓눌린 느낌이 생생하다.
코로나 공백기로 인해 더 오래 쉬었던 그때의, 저번 글의 내가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할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게 된, 바이올린이란 남자 친구랑 '재결합'하게 된 그때의 나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코로나 이후의 첫 바이올린 레슨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첫 합주는 기억이 그나마 선명하지만, 합주는 많은 인원이 함께 해야 하는 특성상 조금 더 늦게 정상화되었다.
1대 1 레슨이었던 나의 바이올린 레슨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저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었나 한참을 고민하며 서있곤 했다.
정말 기억이 안 났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만난 바이올린 쌤이 아주 반갑지만은 않았다.
바이올린의 시작은 또다시 레슨의 시작이며, 나의 짜증의 시작이고 결국에는 혼나는 무한굴레의 시작.
그렇지만 어쩌면 모든 게 옛날처럼 '정상화'될 수 있으리라는 일종의 희망적인 신호가 되었다.
첫 번째로 변한 것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월요일날 합주 직전 시간을 쌍둥이와 함께 고수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레슨 받고, 쌍둥이가 레슨 받고, 조금 기다렸다가 합주하고.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는 아주 좋은 방법.
(대신 일주일의 시작을 꽤 고통스럽게 시작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가 그만둔 시기에 한 아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그 아이는 코로나 시기 내내 그 시간에 왔으므로 우리가 그 시간대를 빼앗기보다는 양보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른 시간대로 밀려나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로.
신기했다.
코로나 공백기와 함께 나의 바이올린 생활도 아주 큰 전환점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요일에 학원에 등원을 시작했다.
금요일 공기는 좀 다르다 카더라!
합주가 없었기에 따로 올 필요도 없었다.
(대신 일주일의 마지막을 꽤 고통스럽게 끝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로 변한 건 사람들이었다.
바이올린 초창기 시절 학원 구성원들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마치 옛날 외할머니 집을 떠올리면 나는 묘한 부엌 냄새처럼, 의미 있는 잔상으로나마 그들의 친숙함이 느껴진다.
합주 때도, 레슨 때도 학원은 항상 사람으로 북적였다.
합주 때는 나보다 어린애들이 줄줄이 앉아있었고 나보다 훨씬 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난 언니오빠들도 연주했다.
우리 레슨을 받으러 도착해 앞 타임 아이가 끝나길 기다릴 때면 다른 선생님께 레슨을 받으려는 아이들과 부모님들 역시 소파에 앉아계셨다.
그렇게 레슨 중간중간 우리들은 만나고, 또 인사하고, 헤어졌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알던 수많은 내 또래, 내 동생뻘 아이들.
내가 항상 우러러보던 잘하던 언니오빠들.
대부분이 그만두었다.
학원이 상당히 텅 비었다.
그만두지 않더라도, 합주도 없고 레슨 시간도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쪼개지면서 학원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착각 속에 매달리곤 했다.
항상 합주할 때 맨 뒤쪽에 서있던 내성적인 꼬불머리 보라뿔테안경 언니. 친하지 않았다, 잘하는 지도 몰랐다. 근데 나보다 진도는 빨랐다. 아마 그만뒀겠지.
S언니도 그때인가 그 이전인가 이미 그만뒀다.
Y언니나 J 같이 친했던 사람들은 계속 다닌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일본분이던 세 자매는 아직 다니는 걸까,
Y언니랑 같이 진도가 제일 빨라서 합주 때마다 마지막까지 둘이 남아 연주하던 그 잘생긴 오빠는 끊었겠지. 나랑 내 쌍둥이는 '둘이 서로 좋아하는 거 아냐!' 이러면서 웃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서로 어울려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좋아하는 거라고 우리끼리 키득대곤 했다. 쌍둥이들끼리 집에서 하는 얘기라 그 이야기가 실제로 부모님을 통해서나 이름 모르던 그 오빠나 Y언니에게 직접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실제로 우리도 몇 번 그러다 말았던 걸로 기억한다. 둘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에.)
합주 첫날 긴장된다고 울어버렸던 그 아이는 아직 다니나?
(얜 내 글에 한번 더 출연한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사람들이 많이도 사라졌다.
있어도, 서로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바이올린 학원의 분위기가 바뀌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더 커서 그런 걸까, 아직도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들 사이의 분위기는 그렇게 화목할까.
어린이들끼리 놀고 부모님들끼리는 수다 떨고, 음악은 곁들 뿐.
만나기만 해도 반갑게 인사하던 이웃 느낌의 재원생들.
이제는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만나도 못 알아본다.
진정한 고독의 예술의 세계로 뛰어든다.
고독했다, 참.
그다음 변했던 건 J였다.
1학년때부터 친했고, 그 친구가 바이올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 친해졌던 J.
(남자아이라 사실 나보다 내 쌍둥이와 친했다)
키가 나만하고 동글하고 귀여운 눈을 가진 강아지상에 달리기가 빨랐고 동물을 좋아하며 굉장히 활발한 아이 였던 걸로 기억한다.
바이올린은 나보다 못했다.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늦게 시작했고 그래서 진도가 나보다 느렸다.
(나는 그 사실을 항상 굉장히 의식하곤 했다ㅎ)
그러던 J는 코로나 시절 때도 멈추지 않고 바이올린을 계속한 모양이었다.
진도는 나와 거의 비슷했다. 한곡 느린 정도.
정말 실력이 많이 늘었다.
키도 크고 성격도 훨씬 내성적으로 바뀌었다. 성장한 걸까.
마스크를 써서 그때 당시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난다.
항상 내가 뻐길 때 들어주던 친구 J가 이제 말을 안 하는 나만큼 잘하는 묘하게 어색하게 다른 아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다시 해서 즐거웠을까?
흥분했던 것 같다. 마치,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들면 흥분하는 요즘처럼.
그리웠던 음악소리와 익숙하던 감촉.
그리고 어딘가에 아직도 깊숙이 파묻혀있는 내 실력.
그것을 꺼내버리고 싶은 욕망.
되던 게 안되니 끓는 짜증.
그렇게 다시 맹맹한 재결합을 해버렸다.
그렇게 쉽게, 그렇게 어색하게. 우리의 관계는 똑같았지만 주위는 그렇게도 달라져버렸다.
이때 바이올린에 흥미를 잃었을까?
고독해진 학원이 초3에겐 너무 고독했을까?
같이한 시간이 늘어나게 되며, 가벼운 취미 이상의 것으로 다가오게 되었을까?
바뀌어버리고 사라져 버린 친구들의 모습이 어색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점점 나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 같다.
기억이 나지도 않는 그때를 더듬으면서 드디어 7년간의 의문을 하나 둘 해결하는 것 같다.
하나를 해결하면 넷이 튀어나오지만, 뭐, 괜찮다.
사실 아직 고난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고독은 이제서야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다.
바뀌어버리고 사라져 버린 같은 동료들의 모습에 한탄하던 이때 이후 나는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를 잃게 된다.
예상된 일이었고,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 말할 이야기이다ㅎ
오늘의 추억은 여기까지!
부디 다음 주에는 내가 레슨을 갈 수 있길 빈다.
그럼...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