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쌍둥이
오늘은 시작을 좀 달리 해보려 한다.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시작하고 아마 마칠 듯하다.
그것은 바로 나와 15년가량 함께하고 있는 친구이자 원수, 내 쌍둥이이다.
남매 쌍둥이인 나와 그는 어릴 적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까진 아니지만, 가장 만만히 볼 수 있는,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의 제일 좋은 친구였기에.
자라나면서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고 사이가 안 좋을 땐 정말 안 좋았다.
초3이 아마 우리의 사이가 가장 극악으로 치솟았을 것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면서 놀기도 많이 놀았지만,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웠다.
24시간을 한 사람과 붙어있으면서 그 사람을 증오하지 않게 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부모님도 안 계시는 집에서 소리 지르고 던지고 내리치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참 많이 사이가 좋아진 것 같다.
지금도 싸우고, 서로 놀리고, 욕도 하고....
때로는 부모님께도 알리기 전 민감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예컨대, 시험 결과)
부모님께 절대 알려선 안될 정보를 나누기도 하며(예컨대, 폰 제한 앱 우회방법)
또 서로 말을 맞춰야 할 일들은 상의하기도 한다(예컨대, 성적표가 나왔다고 언제 말해야 하는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므로 선생님이나 애들 이야기(나 험담)도 쉽게 할 수 있고
시험 전날 둘이 새벽까지 공부(라 쓰고 떠들기라 읽는 것)를 할 수 있다.
부모님께 알려야만 하는 심각한 사안이 생겼을 때는 이를 도대체 어떻게 잘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를 나누기도 한다(예컨대, 한 명의 성적이 바닥을 친 사실)
쌍둥이면 상당히 많은 것들을 함께 하게 된다.
부모님이 편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입장에서도 둘이 각자 갈길을 가는 것보다는 마음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작정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어린 시절에는 특히.
학교나 학원도 둘이 같은 반이거나 같은 학원인 경우가 부모님께도 우리에게도 이득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 우리는 중3이 되었고 진작에 서로 매우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상호작용은 존재한다. 내가 다니던 괜찮은 영어학원은 후에 내 쌍둥이가 다녔고, 관리형 독서실도 잠깐이나마 같이 다녔고, 나의 스케줄문제로 몇 회 남은 과외는 쌍둥이가 대신 받아 듣는 중이다.
그러나 나이도 나이인 만큼, 서로의 삶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쌍둥이들은 반배정시 배정을 함께할지 따로 할지를 정할 수 있는데, 공적인 학교에서 사적인 갈등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초3 이후로 꾸준히 따로 반을 배정받고 있으며, 서로의 강단점을 고려해 다니는 학원들도 아예 달라졌다.
그러나 이제 곧 우리 둘의 공통점이 하나 더 생긴다.
바로 바이올린을 더 이상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
나의 바이올린 인연은 저 녀석과 시작했다.
이 브런치북 3화에 이미 소개된 내용으로, 간략히 설명하면 내 첫 레슨을 뒤에 앉아서 선생님이 반하실 정도로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내 쌍둥이는 그 후에 울며불며 자기도 시켜달라 해 결국 같이하게 되었다.
(더불어 엄마의 피아노 치는 아들 로망은 무너졌다)
(>>03화 바이올린과 설레는 만남<<)
초2 때의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같이 했다.
그리하여, 아마 바이올린도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음악의 여정에서 동료가 되어준 나의 쌍둥이는 상당한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했다.
나보다도 더 연습하기 싫어했다.
매일 정해진 분량을 연습하고, 만약 하루 연습을 못했다면 다음날 두 배를 해야 했던 우리 집의 시스템.
연습은 지옥과도 같았고 우리 둘은 그 사실에 공감하며 투덜대곤 했다.
코로나시절 우리가 하지 않은 공부를 했다고 거짓말을 많이 한 덕분에 신뢰를 잃은 우리는 연습을 녹음해야 했다.
지금도 내 태블릿을 살펴보면 적어도 몇십 개의 녹음본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앵앵거리는 우리의 목소리와 뛰어나다 하긴 어려운 음악들이 녹음되어 있겠지.
한 번은 연습을 너무나도 싫어했던 그가 내게 말했다.
"있잖아, 우리 서로 녹음해 놓은 걸 틀어놓고 다시 녹음하면..."
"00아, 우리 그렇게까진 하지 말자."
서로 다른 태블릿에 녹음을 했기에 옛날 녹음본을 서로 재녹음하자는 제안.
다행히도 음악의 고결함(?)을 믿었던 나는 거절했고, 걔도 다시 제안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음악 앞에선, 바이올린 앞에선 솔직해졌다.
쌍둥이 둘이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사실을 듣는 사람들마다 낭만적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둘이 같이 연주해도 되겠네~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같이 연주도 많이 했다.
2학년 때 합동 장기자랑(>06화 장기자랑, 비연에서 공연으로!<)을 제외하고도, 유명한 바이올린 합주곡인 '두대의 바이올린',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셋이서 돌림노래를 연주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연습 때도 상당히 많이 같이 연주했다.
두 바이올린이 서로 다른 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닌 그저 같은 곡을 둘이 겹쳐서 연주하는 '합주'.
악보대를 거실에 펼쳐두고 음원에 맞춰 엄마 앞에서 연습했다.
관심종자였던 나는 나보다 살짝 못했던 내 쌍둥이가 버벅댈 때마다 어마무시한 속도로 치고 나가서 엄마에게 나의 연주 실력을 각인하려는 듯 연주를 해댔고, 내가 버벅거릴 때는 내 쌍둥이가 빨라진다며 성질냈다.
(휴 나도 참...)
하루는 합주에서 쌍둥이 소리가 내 소리보다 큰 것 같단 엄마 말을 들고 질투나 삐지기도 했다.
반면 음악적으로 약간의 재능이 있는(절대음감 비슷한 것) 나는 비교적 바이올린을 쉽게 배웠고 진도도 쑥쑥 나갔다. 나와 쌍둥이의 차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부각되었고 아마 걔도 꽤 질투했을 것이다.
그때 즈음 바이올린쌤이 여태까지 같이 쓰던 레슨책을 한 권 더 마련해 따로 쓰는 게 어떠냐 제안하셨다.
서로 진도 나간 범위를 너무 의식한다는 이유.
아주 탁월하신 제안이었다.
글에서 존재감이 아주 크진 않았지만, 피아노에 관한 앞에 두 글을 제외하고 여태까지 모든 글에서 내 쌍둥이는 나와 함께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바이올린과의 첫 만남 때도, 그 후 모든 레슨 때도, 합주 때도, 장기자랑 때도, 졸업연주회 때도, 코로나 공백기 때도, 그 후 다시 시작할 때도.
모든 인연들(Y언니 S언니 J)과도 아는 사이었고 친했다.
같이 매일 바이올린을 들고 활을 들고 연습을 했으며,
월요일과 금요일날 바이올린을 메고 같이 학원을 갔고,
연습하기 싫다고 서로 투덜대고, 송진을 십자가모양으로 파는 쓸데없는 짓까지 참 많이 했다.
바이올린과의 모든 여정에서, 모든 글에서 함께했던 내 쌍둥이는 아마 이제 더 이상 출연하지 않을 것이다.
초4 무렵, 바이올린을 먼저 그만두었다.
저번 글로부터 1년 후인 초4 시점. 코로나는 아직도 꽤 심각하지만 격리는 완화된 수준.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후 시간이 지나자 급격히 흥미를 잃던 내 쌍둥이는, 나와 비교당하며 더 흥미를 잃었다. 그런 그에겐 코로나 공백기가 아주 행복했었나 보다.
더불어 그때 무렵 내 쌍둥이가 우리 둘 중 처음으로 공부 관련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점점 시간부족에 시달렸다. 연습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바이올린을 싫어하게 되었다.
계속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 엄마는 우리에게 한 말씀.
"너희, 바이올린 끊으면 다시는 못해. 나중에 커서 너희 돈으로 해. 난 다시 안 시켜줄 거야."
악기를 가벼이 끊고 가볍게 시작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막기 위한 말이었다. 실제로 그 나잇대 애들은 하기 싫으면 끊고, 다시 하고 싶다 해서 다시 다니고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둘 다 조심스러웠던 우리는 그 후 하기 싫어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한번 더 고려했다.
'내가 진짜 싫은 걸까?'
'다 클 때까지 안 해도 될 정도로 연습이 싫나?'
'이번 한 번은 그냥 눈감고 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 멈추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조금 더 컸을 때 우리가 바이올린에 대한 엄청난 열망이 생길 거라 생각했을까?
혹시나 후회할 일 만들지 않으려고, 지금 끊으면 '영원히' 못한다는 말이 너무 무거웠던 우리는 계속했다.
난 그때까지 바이올린을 꽤 좋아했으므로, 내 쌍둥이가 그만두려 할 때 그 심리는 일종의 나의 협박 수단이기도 했다. 협박이라기 보단, 설득, 회유의 수단.
"진짜 그만하게? 영원히 안 하게? 지금 안 하면 다시 못한다는데. 나라면 안 끊을 텐데..."
쌍둥이 없이 아무것도 못하던 꼬마는 바이올린도 쌍둥이 없이 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서 레슨을 가고 합주를 가고, 혼자서 연습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내 회유에 꾸역꾸역 하던 쌍둥이가 초4 때 그만둔 이유는, 내가 혼자 할 자신이 생겨서인 것 같다.
초4 때 처음으로 다른 반 배정을 받고도 세상은 잘 흘러가더라.
걔가 없어도, 내 편은 세상에 있더라.
(오직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만 놔주자.'
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도 싫어하는데, 힘들어하는데.
영원히 같이할 순 없으니까, 어차피 쟨 나보다 먼저 그만둘 테니까.
말릴 나도 없었고, 역시나 그때쯤 자기주장이 선 내 쌍둥이는 과감히 바이올린을 그만뒀다.
그 용기, 아직까지도 부럽다.
그 아이의 마지막 레슨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하고, 안아주기도 했던 것 같다.
"안녕히 계세요! 에원이 올 때 놀러 올게요!"
"놀러 오긴 뭘 놀러 와. 바쁘다고 그만둔 애가."
흘겨보는 엄마의 눈빛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학원 밖으로 나온 쌍둥이는 읊조렸다.
"그만두는 건 괜찮은데, 선생님이랑 헤어지는 게 너무 마음 아프다..."
쌍둥이가 그만두고도 나는 씩씩하게 학원을 다녔다.
무려 5년 동안이나.
혼자 열심히 연습했다.
무려 5년 동안이나.
그 5년 동안 서로에게 얽혀 사는 걸 많이 멈췄다.
그 시발점이었다.
5년 전 내 쌍둥이가 걸었던 길을 마주한 이 순간, 그렇게 초연히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된다.
둘이 하던걸 하나가 하니 당연히 관심은 줄었다.
관심도, 애정도, 챙김도.
그때부터 남의 관심을 위해 연주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그 이후에는 무얼 위해 연주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잘하고 싶었나? 자기 계발 의미로?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이나 했을까?
음악의 여정에서
바이올린과의 여정에서,
혼자 설 자신이 없었던 내 곁에 있어준 내 쌍둥이가 오늘따라 고맙다.
(... 이런! 현재 새벽 4시라 감성적인 것 같다. 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자야겠군.)
동료와의 작별을 통해서 그때의 나는 한창 성장해 나갔다.
또한 홀로 이어나간 그 이야기가 5년 만에 끝이 난다.
그 이별의 여정은 쌍둥이가 아닌 글과 함께 오늘도 걷는다.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
*글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 독자님들 모두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