휙... 퍽... 파사삭...
바이올린과 만남의 반짝, 그 이후 익숙하고 따뜻한 레슨과 합주.
더욱더 따뜻했던 인연들.
자랑스러웠던 장기자랑, 공연들.
코로나 공백기, 그 이후 벌어진 수많은 이탈,
알던 학원의 풍경의 변화. 인연들의 사라짐 혹은 멀어짐.
쌍둥이의 포기까지.
사실 코로나 공백기를 기점으로 그렇게 극명히 나뉘진 않았다.
4학년 때 즈음 바이올린에 대한 상당한 애착을 가졌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내 이야기는 점점 더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들은 그리 열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바이올린과의 긴 인연을 받아들인 후이며 연습이 줄어든 관계로 짜증도 많지 않던 시간이기에.
그렇지만 그리 암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보다 확실히 기억나는 추억들이 있으며, 어찌어찌 잘 걸어왔으니까.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을 건너기 전 잠깐 쉬는 느낌으로,
오늘은 좀 허튼소리를, 일명 '썰 풀기'의 회차가 될 것 같다.
기억하기론, 한 4학년 즈음!
그때는 바이올린을 꽤 좋아했고 잘하고 싶어 했다.
바이올린을 사랑한다기보다는, 나의 실력을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났던 시기다.
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연습할 기회도 아주 많았다.
모든 게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깨달았을까,
열정과 다르게 연습과 함께 상당한 짜증이 몰려왔다.
잘하는 곡들은 연주하면 재밌었다.
음원과 나의 소리가 묘하게 겹쳐 들리면서 마치 내가 엄청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만 같은 착각!!
아직 하지 못하는 비브라토 같은 기술들까지 따라 하려고 하며 몰려오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지만 '배우는 과정'이란 것은 (매우 짜증 나게도) 내가 잘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란다.
그럼 실력이 안는다나 뭐라나.
그러므로 나는 처음 보는 곡들을 연주해야 했고 음원과 내가 내는 소리의 차이가 극명히 벌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연습을 해도 해도 포지션이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손가락은 꼬이고 팔은 아파오고 서서 연습하다 보니 다리까지 아파온다.
만약 여름이라면 후끈후끈해진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아 짜증이 더 나곤 했다.
그럴 때면 바이올린을 침대에 던지고(침대 옆에서 연습하곤 했다)
뒤에 있던 선풍기의 목을 꺾어서 나를 향해 초초초강풍으로 틀어버리곤 했다.
점점 바이올린을 던지던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점점 습관이 되어버렸다..
특별히 짜증 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한 곡 연주가 끝나면 바이올린을 침대로 휙!
던져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때 즈음 연주하는 곡 길이도 길어지고 체력도 바닥나면서 바이올린을 오래 들고 있으면 팔이 너무 아프곤 했다.
거기에 날 가끔 짜증 나게도 하는 바이올린이었으니, 연습이 끝난 후 던져버리면 정말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그날도 똑같았던 걸로 기억난다.
특히나 어렵고 복잡한 곡을 끝낸 나는 끝나기 무섭게 바이올린을 (조금 세게) 침대에 던졌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의 작고 소중한 바이올린은 그만..
침대에 얌전히 놓이는 걸 거부한 바이올린은 아주 환상적이게 매트리스에 튕겨서 침대 발판(풋보드)에 퍽!! 하고 뒤집혀 부딪혔다.
으응...?
뭐지??
약 3초 동안 정지했다.
설마, 설마 내 바이올린이 침대 받침에 박았을 리가
설마 부서졌을 리가.
천천히 바이올린을 뒤집었다.
아주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탄식이 입에서 절로 새어 나오는 광경이었다.
바이올린 앞쪽(앞판) 부분에 발판에 맞은 바로 그 모양대로 금이 쩍 가있었다.
"하...."
심장이 바로 쿵쾅거리고 머리가 왱왱거린다.
도대체 어떡해야 하지?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혼날 거 같은데?
바이올린 비싸지 않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때쯤 결론이 났다.
숨기자!
당시 열한 살이 내린 결론으론 아주 합당했다.
암 그렇고말고.
바이올린 자체를 숨길 순 없다.
그렇지만 바이올린이 아예 박살 난 건 아니고 금만 갔을뿐더러 소리는 잘 난다.
금이 꽤 크게 났지만, 드러난 속살의 흰 부분만 어떻게 감추면 대충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내 바이올린은 잘 안 보니까...
내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
'갈색 사인펜...'
온 집을 다 뒤졌지만 내 바이올린과 비슷한 빛깔의 갈색 사인펜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찾은 건 진짜 어릴 때 썼던 싸구려 갈색 사인펜.
드러난 바이올린 속판을 갈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잘 되지 않을뿐더러 색도 하나도 안 맞았다.
'으씨ㅠㅠㅠ 망했다ㅠㅠ'
나는 대충 수습한 바이올린을 들고 합리화를 하려 애를 썼다.
"괜찮아. 흐린 눈으로 보니까 티도 안 나네 뭐.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 주 레슨 때,
내 바이올린을 들고 조율하던 선생님은 나와 엄마를 흘끔흘끔 눈치보시 더니 말씀하셨다.
"저, 이게 바이올린이 깨졌네요?"
내 심장은 발끝까지 뚝 떨어졌다 다시 올라왔다.
선생님이 덧붙인 말씀 때문이었다.
"언제 그랬지? 몰랐는데..."
"어 그러네! 뭐야, 언제 깨졌지??"
나의 매소드 연기 덕분인가, 분위기는 점점 옛날에 깨진 것 같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에 그걸 어떻게 몰랐지!"
천연덕스럽게 덧붙이는 나를 향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몇 년 있으면 4/4 바이올린(바이올린 사이즈로 4/4가 가장 큰 성인용이다)으로 바꿔야 하니까 그냥 이거 쓰는 거 어때?
어머니 제가 보니까 소리도 괜찮고 뒤판이 아니라 앞판이 깨진 거라 괜찮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요, 괜찮으면!"
불안했던 나는 바로 덧붙였다.
엄마도 끄덕끄덕.
그때서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 후로 2년쯤 뒤인 6학년 때 성인용 4/4 바이올린을 샀다.
이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러지지만 않는다면 평생 이용할 목적이기 때문에 비교적 비싼 걸로 구매.
그리고 바이올린을 바꾼 지 1년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난 엄마한테 사실을 말했다.
"엄마, 있잖아 옛날 바이올린 그거 내가 부순 거다?
던졌는데 뽝...
아니 그래서 갈색 사인펜으로...!"
엄마는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전혀 모르셨다고...
나 잘했네ㅋ
그때의 철렁하던 내 심장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버려질 위기에 있던 그 갈색 사인펜은 내가 구원해 아직도 방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 바이올린도 역시 우리 집에 굴러다닌다.
앞판이 깨졌다는 이유로 사촌동생에게 거절당하고 조율 연습용으로 쓰이는 중이다.
이번 바이올린은 부수면 큰일 난다 에원아~~~~!
오늘의 이야기의 한 줄 요약
: 휙... 퍽... 파사삭
(파사삭은 바이올린이 아닌 멘탈이 나가는 소리다ㅎ)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