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첫 합주.

by 에원

(이번 화에는 '인연들'에서 언급이 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합주의 개념 또한 그 부분에 더 상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가볍게 읽기엔 상관없습니다>. < )



이제 이야기가 조금씩 최근으로 흘러오기 시작한다.


초1이 되기도 전에 시작한 바이올린을 행복하게 하다 코로나 공백기를 거쳤다.

갑자기 생긴 강한 애착으로 인연을 이어나가다 쌍둥이가 포기 후 덤덤해진 마음으로 계속하던 게 몇 년.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이 지났고, 5학년이 되었다.


4학년때는 코로나의 위력으로 장기자랑이 없었지만, 역시나 5학년때 나는 1,2학기 장기자랑을 모두 바이올린으로 했다.

난 바이올린 이외에 장기자랑을 해본 적이 없다ㅎㅎ


그때 1학기때는 영상, 2학기때는 실물로 가서 연주했었는데, 내 바이올린을 돌려가며 껴보고는


'와 생각보다 힘드네'


하고 말하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몇 년 동안 연주한 나에겐 바이올린을 턱과 어깨로 잡는 게 전혀 어려울 일이 아니지만,

어느 위치에 바이올린을 놔야 할지도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굉장한 일로 느껴진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오랫동안 한 바이올린이 약간은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의 존경 섞인 눈빛에 어깨가 으쓱해지거나 괜히 부담감이 늘어나는 것도 그때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주 많은 아이들이 악기를 그만두자, 꾸준히 했던 내가 더 부각된 탓이었다.

더군다나 연주한 햇수도 굉장히 길었고 생소한 현악기인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내가 잘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어린 시절에 비해서 바이올린 실력에 대한 내 자존감? 이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로 그때다.

훌륭한 연주들을 많이 접하면서 내가 바이올린을 아주 상당히 잘하는 것이 아닌, 그저 약간의 재능과 투자한 시간의 결과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기도 했으며,

투자한 시간 덕에 늘어난 기대감에 미칠 자신이 없기도 했다.

당연히, 고학년이 되며 조금 더 내성적으로 바뀐 성격도 한몫하기도 했다.


그런 모든 것이 겹치고 또 극복해 나가던 시기였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다시 합주가 시작되었다.






앞에 회차를 읽었다면 알겠지마는, 코로나 이후로 학원의 분위기가 화목하기보다 자기중심적, '홀로서기'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분위기는 복귀된 레슨과 달리, 아이들의 소통과 칭찬의 장이었던 월요일 저녁의 '합주'가 없어지면서 더 부각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합주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완전 패닉에 빠졌다.



합주는 1권부터 자신이 현재 레슨을 받고 있는 권수까지 연주를 한 후 나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어리고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은 일찍 나와 구경하고 나중에는 정말 오랫동안 다닌 실력자들만이 남는 구조.


나는 실력자는 아니었지만, 꽤 오래 한 탓에 많은 친구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6권을 레슨 받던 중이었다.

내 지식에 의하자면, 상당히 많은 재학생과 부모님 앞에서 1,2,3,4,5권을 연주해야 했다.



이런!



내 내성적인 성격은 비상이 걸렸고 도무지 기억이 안나는 이전 권들을 기억해 내려 애쓰기 시작했다.

결국은 불안을 달래기 위해 그 주 레슨 연습 대신 모든 권의 대표곡을 한 번씩 연주해 보았다.



'실수해도, 활만 맞추고, 손가락만 맞추고, 그렇게 하면 될 거야. 되지.'



이미 '잘하는 척'을 하는데에 도가 텄던 초등학교 5학년 에원이는 그렇게 되뇌며 정말로 몇 년 만에 합주하러 엄마와 같이 학원에 갔다.




도착하니, 신발로 가득 찬 신발장이 우릴 마주했다.

반가웠다.


항상 이렇게 가득 찬 신발장이 합주하러 온 우릴 마주했는데.

우리밖에 없던 레슨에선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유치하게 보이는 예쁜 분홍색 구두들이나 편한 운동화 그리고 부모님들 신발까지.

상당히 늦게 도착한 우리 신발을 벗자 신발장에서 신발이 밀려나갈 정도였다.



북적북적.



선생님이 나보고 오라고 한 시각에 맞춰서 왔는데, 이미 합주실 안에서는 어린아이들의 깽깽거리는 연주소리가 가득하다.

뭐지? 싶은 찰나, J가 보인다.


합주실에 가장 가까운 소파에 앉아있는 J.

코로나 이전 어릴 때 꽤 친했지만 코로나 때 끊지 않았다는 사실만 겨우 전해 들었던 J.


J도 상당히 많이 컸다.

남자아이답게 원래 나와 비슷하던 키는 성큼 커져있었고 분위기도 성숙해졌다.

(얼굴은 상당히 똑같았다)



"J야!"



자연스럽게 J 곁에 갔다.


"왜 합주 시작했어?"

"우린 나중에 한대. 1권부터 하면 다리 아프니까."


무뚝뚝해진 말투.

아, 이 녀석, 전형적인 성장 중인 내성적 남자아이가 되었구나.


결국 결론은 나나 J처럼 권수가 높은 학생들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4권쯤 되었을 때 들어간다는 말.

나는 문뜩 J를 바라보았다.

J는 한 5권쯤 되어 보이는 스즈키 책을 펼치고 있었다.



"뭐 해?"

"읽고 있어. 기억 안 나서."

"나 한 번씩 다 연주해 보고 왔는데."

"난 그럴 시간이 없어서."

....


"와 진짜 쌤 독주시키시면 안 되는데."

"아 그니까."



어렸을 때 독주하는 걸 좋아하고 뽐내던 나와 J는 자신 없고 내성적인 전형적인 초등고학년 성장했다.

그때 등장한.



"어? Y언니?"


Y언니다.

이럴 수가, Y 언니는 진짜 오랜만이다.

S언니가 이사한 이후로 처음이다. 거의 3년만?



"어, 뭐야 에원이구나~ 진짜 오랜만이다."


터프한 성격도 그대로.


"언니 잘 지냈어?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나 코로나동안 멈췄어서. 별로, 한 7권?"



옛날 인연들과의 재회였다.


많이들 바뀌었고, 많이들 변했고, 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주 친했던 둘이 내 곁에 있었다.


그 둘 역시 많이 변했지만,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와, 나 옛날에 선생님이 나만 독주시켜서 진짜 싫어했었는데. 나 진도가 빠르니까. 이제는 너희 있어서, 괜찮겠다."

"그러니까!"


좋았다, 반가웠다.




합주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 얼굴이 보인다.

그 뒤로 한 뼘쯤 위로 올라간 합주 무대 위에 조그만 아이들이 보인다.

선생님이 여신 문으로 보이는 우리를 뚫어져라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전에 얼굴만 알던 언니오빠들이나 동생들은 사라졌다.

거의 다 모르는 사람들, 모르는 얼굴들.



"자, 4권 할게요, 밖에 친구들 들어오세요~"



합주실로 가는 그 문이 이세계를 향한 통로 같은 느낌이 든다.


옛날처럼 곡들을 외워서 멋지게 연주할 자신이 없는 우리는 악보대에 악보를 층층이 쌓은 채 악기와 악보대를 들고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1열을 차지한 어린애들 뒤로 2열에 선다.


맨 앞에 서고 싶어 안달이 나던 나였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는 곡들 때문인 탓에 안 보이는 구석으로 스며든다.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아마 Y언니, 나, J 그리고 나 동갑인, 옛날에도 얼굴은 알았던 남자아이 C, 이 순서대로 뒷줄에 섰던 것 같다.

이제 우린 나름 소수의 '실력자' 위치로 올라와 있었다.



"자, 합주 시작할게요! 4-4 펼칩시다~"



우리 엄마와 J 엄마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보인다.


'또 나름 첫 합주라고 구경하네.

틀리면 안 되는데...'


다시 한번 수많은 깽깽이는 소리 사이로 나와 Y 언니, J, C의 연주가 퍼졌다.





어색했다.

우리도, 실력도, 환경도, 앞에 선 아이들도 모두 변하고 바뀌었다.


어색했고, 변했고, 얼렁뚱땅 마무리되었다.

큰 이변도, 엄청난 충격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거나 엄청난 애정이 샘솟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상당히 좋았다.


몇 년 동안 잊혀진 이 공간에 다시 음악을 불어넣는다는 그 감정뿐만으로.

항상 내가 동경했던 '고학년 실력자'의 모습으로 다시 이곳에 설 수 있단 사실만으로.

그때의 인연들 중 아주 일부라도 지금 내 곁에 있으므로.


어색했고, 변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곳에서 다양한 아이들의 음악이 (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하게 울려 퍼진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우리가 변했지만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서 있었기 때문에.



합주를 안나가게 된 지 꽤 되었다.

그렇지만 힘들고 짜증 났던 레슨들에 비해, 나름의 옛날 학원의 모습, 나름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던 합주는 오랫동안 나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직도 그 합주실에서는 음악이 울려 퍼질까?


:)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