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귄다고 무관심하지 마

그땐 알았을까 이렇게 오래 할 줄을...

by 에원

'관종'이란 신조어가 있다.

사실 신조어라 하기 좀 뭐 할 만큼 많이, 오래 쓰인 단어긴 하다만 아직까지도 활발히 이용되는 유행어다.



관종: 관심 종자의 줄임말.
타인의 관심을 지나치게 끌고 싶어 하거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과장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사실 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관종이던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신조어 '관종'은 사실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되지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관심을 갈구하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는 현재는 관심을 그리 바라지 않는, 특정 경우를 제외하면 꽤 내성적인 편이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특히 막 바이올린을 배우던 시절에는 외향적이었으며 굉장히 관심을 받기 좋아했다.

아주 심한 정도라기보다는 그냥 어리고 귀여우니까 넘어갈 수 있는 정도ㅎ


난 어렸을 때 바이올린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다.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듣고(선생님이 참 멋진 분이셨다)

동갑 친구 J보다 진도가 빠르며(J가 늦게 시작했기 때문인데... 저번 화를 보셨다면 내가 J어머니께 잘난 척했다는 것도 독자분들은 아실 수 있으실 거다.)

또한 내 쌍둥이보다 잘했다.


그리하여 나의 멋진 바이올린 실력을 세상 모든 사람들, 더 정확히 말해서는, 합주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그때에는 간절했고, 지금은 이불킥을 부르는 내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본다...






월요일 저녁 7시 30분, 합주실에서는 합주가 시작한다.


아주 어린아이들과 조금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1권부터 차례차례 합주를 시작한다.

깽깽거리는 소리들이 합쳐져서 그래도 꽤 들을만한 소리를 만들고, 엄마들은 그 아이들의 소리가 예쁜지, 음정이 맞는지와는 상관없이 박수를 친다.


한창 열정적으로 곡을 연주하고 있을 때, 무대 밖에 피아노 옆에서 같이 연주하시던 선생님이 활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자, Y만 혼자서!"


순식간에, 모든 아이들이 활과 바이올린을 내리고 그 Y 언니에게 시선을 돌린다.

Y언니는 당황하지 않고 연주하던 선율 그대로 이어서 연주한다.


한곡 당 많으면 네 명까지도 했었던 것 같다.

합주의 하이라이트, 엄마들의 자랑.

'독주'.


어느 정도 Y언니가 연주를 하다 보면 선생님이 다시 외치신다.


"다 같이!"


그리고 다시금 조용하고 외로웠던 한 명의 선율이 여러 명에 의해 풍성해진다. (더 듣기 좋게 변했다고 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풍성'해지긴 했다.)



'독주'는 그야말로 무대에서 나 혼자 연주를 한다.

내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이자 찬스.



합주를 할 때 나는 선생님을 열심히 쳐다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는 선생님을 안 보고도 잘해!'


라고 뻐기려고 일부러 다른 곳을 보고 연주하곤 했다.

내가 독립적으로 얼마나 잘하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엄마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다ㅎㅎ


어쨌건, 그렇게 자립적(?)으로 연주를 해나가던 나는 한 명의 아이가 독주를 위해 지목당했을 때부터 선생님을 빤히 쳐다본다.

'그다음 독주는 저 합시다. 저 진짜 잘하는데. 저 독주할 수 있는데.'

그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에 의해 선생님께서 날 지목하시는 경우에는, 나는 그야말로 가장 크고 풍부한 소리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왜인지 골똘히 생각해 봐도 정말 이유는 안 떠오른다.

그렇지만 중간에 몇 명의 아이들을 놔두고 나머지 애들은 전부 내려와 엄마들 발치에 앉아있다가 한두 곡이 끝나면 다시 올라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름하여 '자리 재배치'가 일어나게 되는데, 나는 그 순간을 매우 좋아했다.


무대 정 중앙 맨 앞에 서면 문이 바로 보였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해서 문을 나침반 삼아 그 찰나의 순간에 무대의 정중앙에 서기 위해 애썼다.


선생님이

"다들 다시 올라오세요~"


라고 말하면 그때 우당탕 뛰어가서 그 자리를 독점했다.


어느 날, 나는 친구 J에게 그런 말을 했다.


"J 야, 내가 왜 맨날 뛰어가서 맨 앞에 서는지 알아?"

"모르는데?"

"사람들한테 나 보라고 하는 거야. 나 잘하니까. 거기 서면 내가 엄청 잘 보이거든."

"거기가 어딘데?"

"저기, 중앙에."


그다음에 선생님이 우릴 부르시자,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J를 놔두고 다시 정중앙에 우뚝 섰다.

뒤늦게 온 J는 내 뒤에 옆에 서서 나를 보고 알았다는 듯이 웃어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은 나보다 어리고 키가 작은 (나는 또래에 비해 키가 좀 컸다) 아이가 자리를 잘못 잡고 내 뒤에 섰다.

선생님은 나와 그 아이를 번갈아 보시더니...


"에원이랑 00이랑 자리 바꾸자."


하필이면 J한테 말을 한 그날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뭔가 민망하고 부끄럽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아이와 자리를 바꾸었고 옆에서 느껴지는 J의 시선과 미소를 애써 무시했다.




스즈키 4권 즈음인가, 6권 즈음인가, 내가 아직 하기에는 너무 높은 권에 노래에 '무궁동'이란 노래가 있었다.

매우 경쾌하고 빠르고 뭔가 그런 노래였는데 중독적인 박자가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 노래를 아직 배우지 않았으므로 엄마 앞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는데, 그 중독적인 박자가 날 뭔가 꿈틀거리게 했다.


오른쪽 발을 움찔, 왼쪽 발을 움찔.

그렇게 엉덩이로 깔고 앉은 발을 박자에 맞춰 움찔거리니 내 몸이 맞춰 덩실거리고 좌우로 살짝씩 이동까지 했다.

재밌었다, 그래서 박자에 맞춰서 계속했다.


뒤에서 들리던 J 엄마의 말소리 (그걸 들으면 안 됐었다.)


"어머, 쟤 좀 봐. 귀엽다."


내 광대가 씰룩씰룩,

관종끼가 움찔움찔 올라온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움찔거리며 무대와 엄마들 사이 정중앙으로 이동하였다.

가는 내내 그렇게 이상한 춤을 춰대며 엄마들과 연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무대 아래 바닥의 정중앙으로 이동해서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이상한 춤을 췄다.


진짜 이 사건이 정말 나는 잊히지 않을 흑역사다.


엄마들과 연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7살 8살쯤 된 애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발을 움직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니, 참....




또 다른 춤 사건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내가 정확히 뭘 했는지 나는 알 수 없기에 아까의 민망함보다는 약간의 궁금증이 느껴지는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약간 가보트스러운? 낭만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순서였다.


그날따라 나의 음악적 감수성이 풍부했다.

나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 낭만적인 선율과 크~ 아름다운 음정에 풍덩 빠져서 나는 눈까지 감고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음악에 맞춰 낭만적으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정확히 뭘 했는지 모르겠다;

예상컨대 아주 멋있게 흐느적흐느적 춤을 췄을 걸로 예상된다. (심지어 연주는 계속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정말 나는 음악에 아주 심취해 있어서 누군가의 웃음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엄마들은 날 보며 모두 웃고 계셨고 우리 엄마의 질린 표정이 보였으며 뭔가 애들도 다 날 보고 있었으며 선생님은 날 보고 웃으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그래요, 저렇게 예원이처럼 음악을 느끼면서 해도 좋아요."


나는 그때 그야말로 혼란에 빠져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 있었다.

모르겠다, 내가 뭘 하고 어떤 모습으로 춤을 췄는지.


그렇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다..ㅎ





이렇게 바이올린과 나에게 관심을 주라고 바락바락 애를 쓰던 아이는, 바이올린을 하며 할수록 사람들의 무관심에 슬퍼하기도 했다.

당연히, 아이가 악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1년 정도 한 후에 관심의 정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오래 했다'라는 이유로 특별함이 사라지지 않으며, 또한 관심이 사라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은 관심을 갈구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꽤 커서까지도 나와 바이올린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걸 좋아했다.

쌍둥이가 바이올린을 그만둔 이후에는 바이올린에 대한 우리 가족의 열정이 아주 크게 식어버렸는데, 그때 당시 열심히 연주를 해서 멋진 연주를 끝냈는데 정말 아무도 듣지도 않고 관심도 없자 울어버렸던 기억도 난다.




'오래 사귄다고 무관심하지 마.'


타인이 우리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바이올린과 나 서로 간에도 관심이 필요했다.

그래야지만 더 발전하며 같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관심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침대에서 쓰면서 바닥을 내려다보니 침대 밑에 반쯤 들어간 바이올린 케이스가 보인다.


저 녀석은 참 관심 달라는 말 안 하고 날 기다려주는구나.

뭔가 뭉클하다.

오랜만에 켜볼까, 생각도 든다.

오늘 연주하지 않으면 몇 달 동안 연주 못할 텐데...


저 녀석에게도 이제 관심을 줘볼까 싶다 :)



(바이올린 선생님 일정과 내 일정이 애매하게 겹쳐서 남아있던 레슨을 미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12월에 그만두기로 했던 바이올린이 12월, 1월에 휴식기를 거처 2월에 한두 번의 레슨을 마쳐야지만 끝이 날 것 같다.)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