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축제의 실체

by 에원

(학교 축제가 끝났던 시점인 2025년 12월 29일 날 쓴 글입니다!)




오늘부로 학교 축제가 끝나버렸다.


그렇게 죽어라 준비하던 축제가.

정말 드디어 끝나버렸다.


생각보다 실망스럽고 부끄러웠지만 또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빛난다, 중요하다는 어른들의 말은 우리 반에 한해서는 적절한 말인 것 같다.



아쉽게도,

축제 결과보다 우리가 노력하던 순간이 빛났어~~

이런 의미가 아니다.


그저 우리 반은 축제 준비 기간 동안 정말 가열차게 놀았고, 연습에 그다지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도 할 건 다 했으며, 나아가 축제 당일날도 연습이 아닌 꾸밈과 놀기를 선택했다.


'축제 준비한다고 노는 거 아니냐.'

'무슨 축제 준비는 축제 준비 너희가 그걸 하냐.'

'얼마나 열심히 한다고.'


라는 어른들의 비관적인 말을 들을 때가 많은데, 항상 너~~ 무 억울했다.

투표해서 노래도 정하고, 다른 반끼리 겹치면 가위바위보해서 밀린 반은 다시 정하고(인기곡은 한정되어 있고 반은 11반이기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잦다ㅠ), 때로는 노래도 외워서 같이 불러야 하며 춤도 배워야 하고 어떨 때는 춤 창작까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 많이 논 것 같긴 하다ㅎㅎ




물론, 이렇게 해피해피 긍정긍정한 오프닝을 썼지만, 축제준비라는 것은 항상 난리부르스 난장판에다가 싸움판을 동반하는 일이다.

중2들을 모아놓고 '알아서들 잘해봐~~'라는 태도를 취하시니,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축제를 할 때 '중학생'이란 인간들은 주로 세 부류로 나뉜다.


1.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리드하는 "리더"형

2. 시키면 하는데 나서지 않는 "참가자"형

3. 몰라 난 하기 싫은데 시키니까 하는 "들러리"형


1번은 주로 재능 있는, 열정 있는 여자아이들이며,

2번은 나머지 여자아이들과 약간의 모범적 남자아이들,

3번은 주로 대다수의 나머지 남자아이들이다.


협동력을 증진시키고 추억을 만들기 위한 축제는 주로 갈등의 판인 '개판'의 모습을 띤다.


1번 아이들은 초반에는 재능을 살려 열정적이지만, 춤과 대형을 짜고 노래 파트를 분배하다 보면 지쳐버린다. 어쩔 수 없다. 그들도 인간이며, 학생이고, 아이들이다.

"에이, 너희는 잘하잖아~"라는 선생님, 어른들, 타학생들 말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그들도 전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며 일반인이다.


2번 아이들은 열심히는 하지만 지쳐버린 1,3번 사이에서 회의감을 느낀다. 더불어 불평불만이 없지 않아서 투덜투덜 거리는 경후도 다반사.


3번은 말대로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

학교에서 시키는데 하기는 싫고. 놀고 싶고. 하라니까 하는데 불평불만 투성이.

곡 선정도 안무도 노래 배분도 다 싫고 설렁설렁 대충 하며, 따질 수 없는 선생님이나 학교 규정보다는 자신들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비교적 만만한 1번 아이들에게 불평하고 화내고 협조를 안 한다.


결국 연습해 달라고, 제발 해달라고 비는 1번 아이들은 지치고,

1번이 지치니 3번은 놀고,

"뭐야, 왜 우리만 해? 우린 하고 싶은 줄 알아?"

하던 2번도 결국 포기한다.


일명 "침체기".


이겨내면 성공적으로 학급 공연을 마치고 안된다면 그대로 흘러가 잊히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제압 못하는 문제아들이 반에 있는 경우에는 그 아이들을 춤추고 참여하게 만드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다.

왜냐하면 학급 축제란 '모든 아이들이 공평하게 참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일부러 길게 여행을 가거나 축제 당일날 체험학습을 쓰고 그 빌미로 연습에 참여 안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노래랑 춤이 인생에 뭔 도움이 된다고. 학교에서 공부 안 하고 축제 연습만 하니 2주 동안 유럽을 만끽하거나 고등학교 선행을 나가겠다는 심리다.



정말...


연습을 하다 보면, 외치고 싶다.

그냥 하라고.


어차피 해야 하면 힘 모아서 으쌰으쌰 열심히 같이 하자고. 제대로 하자고.

불만이 있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모두 입 다물고 하면 안 되냐고.


그렇지만 나의 외침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주로 생각하는, 모두가 참여해서 으쌰으쌰 나아가는 '이상적인 반의 연습 과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


평등성,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한 명이 안 하는 순간 아무도 안 한다.




이런 게 바로 학교 축제의 진실이다.

그리하여 우리 반은 선택을 하였다.


'열심히 하고, 놀자.'



1번 아이들을 A팀, 2번을 B팀, 3번을 C팀으로 나눠서 서로 협조해서 안무를 배웠다.

열심히 안무를 배우고 대형 이동까지 마스터한 후에 우리 반은 놀기 시작했다.


간혹 가다 억지로 연습을 시키시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그런 선생님들 앞에서는 한두 번 예의상 연습을 한다.

담임선생님 시간에도 연습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한 교시에 한 번쯤.

그다음에는 자유롭게 논다.


친한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고 남자애들은 레슬링을 빙자한 어떤 놀이를 진행한다.

책상을 붙여놓고 한 구석에서 패딩을 뒤집어쓰고 자고, 연습을 빌미로 책상을 다 밀어버렸기에 바닥에 앉아서 논다.

영화를 보여주시면 신나게 감상을 하고, 안 보여주신다면 알아서 논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도 있으며 여러 가지 보드게임이 바닥을 즐비한다.


다빈치코드는 우리 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 되었으며, 두 개의 다빈치코드를 섞어서 조커가 4개인 극악의 난이도를 만들거나 6명이 한꺼번에 할 수 있게 개조하기도 했다.

덕분에 수업을 할 때 보다 아이들의 사고력이 향상한 것 같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루마블도 단골. 지폐가 항상 널려있기 마련이다.


체스나 오목, 카드게임 같은 클래식한 게임들도 인기다. 단순할수록 재밌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질린다면 변형하면 된다.


할리갈리도 인기 만점.


대부분 무리 지어서 놀기 때문에 서로 보드게임을 바꿔가며 놀고, 선점하려 애쓰기도 한다.



보드게임이 싫증 나면 놀이를 한다.


홍삼게임은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

아이엠그라운드도 뭐 꽤 괜찮다는 분위기. 그렇지만 네박자는 너무 쉬우니까 여덟 박자의 극악 난이도로 진행.


남녀가 섞여서 홍삼게임을 하거나 남녀 섞어서 열다섯 명 정도가 단체로 수건 돌리기를 하기도 했다.

손병호게임이나 남이 정해준 키워드가 적힌 종이를 안 보이게 들고 질문을 통해 맞추는 놀이(이름을 모르겠다) 같은 게임들도 등장.


더불어 남녀 혼합 열두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진실게임을 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순수한 질문들도 많았지만 갈수록 짝남 짝녀 썸남 썸녀 전여친 전남친 현여친 현남친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 찼고...^^ 그렇다.


이 정도만 써도 우리가 얼마나 가열차게 놀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축제날 우리는 우리 반이 맞춘 옷인 수면바지와 흰 반팔을 입고 학교를 활보했다.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입고 파워풀한 춤을 추는 반들 사이에서 우리만 거의 유일한 뽀짝 팀이었기에 우리 의상은 매우 돋보적이었다.

키티 수면바지를 입고 다니는 건 엄청 부끄러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편하고 따뜻하고 만족도 100.


우리 무대 때 생각만큼 호응도 없었고 진짜 내려오자마자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우리 학년이 워낙 호응이 없긴 했다)

그렇지만 다른 반을 구경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어쩜 그렇게 춤을 잘 추는 건지...


개인적으로 1, 2학년 둘 다 상을 받지 못한 반에 소속인 입장으로 소신발언을 하자면,

못하는 반에 소속되면 좋은 점이 '잘하는 모든 반의 공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간은 억지로 학급공연을 모두 보고 모두가 기대하던 개인 장기자랑.


전에 내 글(7년 사귄 바이올린과 이별하기)에 잠깐 등장했던 우리 반 여자애가 포함된 댄스부가 내가 최고로 꼽는 무대였다.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멋짐. 간지.

마지막에 고개를 숙였다 들어 올리면서 네 명의 여자아이들의 생머리가 휘날리고 뒤에 조명을 팍!! 받으며 엄청난 관경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축제날은 끝이 났다.


어떻게 보면 학창 시절의 필수 통과점이라고 볼 수 있는 축제가.


제목은 '축제의 실체'이면서 내용은 너무 긍정적인가 싶다ㅎㅎ

축제가 계속된 이유도 그게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과 경험으로 미화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과거'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과장이나 미화를 거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과거들이 모여 또다시 현재의 우리를 만드니 어차피 쌤쌤 아닌가 싶다ㅎ


(제가 여행을 가게 되어서 한동안 글을 못 올릴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2월에 다시 찾아올게요!)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