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일상/여행의 후폭풍!
지잉... 지잉....
희미하게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익숙한 내 방 천장.
휘익 돌아누워서 손을 더듬더듬 움직인다. 눈은 아직 완벽하게 뜨지 못했다.
다시 깜빡 잠에 들려는 찰나,
지잉.. 지잉.. 지잉!
아까보다 조금 더 격해진 진동소리.
손은 더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분 나쁜 진동이 침대 매트리스를 타고 뇌 속까지 전해지는 기분.
지이이이잉!
안 되겠다, 눈을 뜬다.
애꿎은 핸드폰은 바로 옆에 있었다. 핸드폰을 냅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화면을 밀어댄다.
이런, 핸드폰을 거꾸로 들고 있었네. 어쩐지 알람이 안 꺼지더라.
다시 제대로 들자 보랏빛 화면에 떠있는 시각 '8시'.
알람을 끄고 돌아눕는다.
5분 뒤면 8시 5분 알람이 울리겠지. 그다음에는 15분 알람, 그다음에 30분. 40분 알람도 있었나..
여러 차례의 알람에게 공격 세례를 맞고 겨우 눈을 떠 핸드폰을 켠다.
따뜻한 이불 밖, 차가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 용기를 얻어야 한다. 의지가 생겨야 한다.
핸드폰을 열심히 뒤지며 눈팅을 한다. 카톡에 들어가서 프로필이나 온 연락 확인도 하고 더쿠에 들어가서 간밤에 스키즈에게 벌어진 일도 살펴보고, 브런치 눈팅도 한다.
"안 일어나냐?"
엄마의 목소리에 힘차게 말한다.
"일어났어!"
'자, 하나 둘 셋에 일어나는 거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결국 여섯에 일어난 나는 느릿느릿 식탁으로 향한다.
이것은 어느 평범한 학교 가는 날 일상이 아닌, 바로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
아주 평범한 방학 날 아침의 모습인 것이다.
학교 가는 날에도 8시 반에 눈을 뜨던 아이가 방학에 왜 이 시각에 일어나는가.
그것은 바로 휘몰아치는 '공부'란 숙제를 하기 위해서다.
8시 48분에 집에서 나가서 9시까지 관리형 독서실에 골인하려고 굉장히 열심히 걸어간다. 힘차고 빠르게 걷기 위해서 필요한 스키즈의 신나는 노래도 빼먹지 않는다.
9시가 되기 전에 들어간다. 세이프! 역시 나야. 오늘도 벌점은 안 받는군.
핸드폰도 모두 제출하고, 말도 하면 안 되고,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에는 정해진 자리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삭막한 관리형 독서실.
만약 존다면 선생님들이 깨우고, 계속 졸면 서서 공부한다.
음악도 들을 수 없고 인강도 허락된 사이트에서.
3시간 동안 공부하고 12시에 밥 먹으러 잠깐 한 시간을 탈출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또 3시간을 공부한 후에 플래너 검사를 받고 밖으로 나간다.
이제 집?
아니, 또 다른 학교로 등교해야 할 시간!
다르게 말하면, 학원으로 등원해야 할 시간!
여행의 여파로 무려 3주가량의 숙제와 진도를 모두 끝내야 하는 나는 현재 공부는 수학 빼고 아무 학원도 다니고 있지 않다.
덕분에 월화수목금토요일까지 5시부터 10시까지 학원에서 보내게 된다.
집에 돌아가면 4시쯤, 밥 먹고 학원으로.
학원에서 풀려나면 10시.
돌아와서 간식 먹고 쉬다가 다시 잔다.
...
방학이어도 매일 등교합니다!
3주 동안 수학학원을 빠져 밀린 양이 어마무시하다.
3월 초에는 승급시험이 있고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마 학원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지금 과정인 수2(미적)를 지금 안 끝내면 고등과정 선행이 다 안 끝난다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난 정말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이다.
영어도, 국어도, 과학도 다 포기하고 수학만 하고 있다.
과학은 선행 한번 나가지도 않았다. 정말 '공교육'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미 힘을 잃은 공교육으로만 과학을 한다면 난 고등학생 때 감당할 수 있을까?
영어도 국어도 나름 잘한단 소리 들어왔지만 거의 2년가량 아무런 학습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망한 것 같다.
지금 앞에 나열한 관리형 독서실과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 절반가량 나는 자습을 한다.
그 자습이 그렇게 어려운걸 이번에 새삼 느낀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라고 나 자신을 다잡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중2?부터 공부에 집중하거나 열정을 갖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옛날에는 그렇게도 자연스러운 것이, 이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번아웃인가, 사춘기인가. 조금 쉬면 괜찮겠지. 그냥 하다 보면 다시 열심히 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 생각으로 계속 왔는데 아닌 것 같다. 중2 말에는 엄마한테 그 얘기도 했다.
'엄마, 나 기다리면 내가 다시 열심히 하고 집중하고 할 줄 알았는데, 진짜 이제는 죽어도 공부가 하기 싫다.
어쩌면 이게 어른이 되는 것 중 하난가? 하기 싫어도 하는 거?'
그래서 그냥 했다.
여행 가기 전에도, 여행 갔다 오면 논만큼 더 열심히 할 줄 알았다.
웬걸, 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아직도 어른이 되긴 멀었나 보다ㅎ
문제 한 문제를 푸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그저 어려워서라고 포장하진 못하겠다.
딴짓하다 관리형 독서실 앞에 커다란 시계를 보고 흠칫 놀란다. 벌써 20분이 지나서.
앉아있는 시간은 엄청 많은데, 되게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아서.
독서실에 플래너 제도 중 하나가 '오늘의 공부 만족도'를 기입하는 것이다.
별로 그닥.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해서 기분이 되게 좋지도 않다. 나만 떨어지는 기분, 뒤쳐지는 기분, 왜 나는 열심히 안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는 기분.
이제 시작인데, 언제 끝날 지를 벌써부터 묻는 기분.
여행은 즐겁다.
특히 3주 동안의 해외여행은 잊기 힘든 굉장한 경험이었다.
지금 공부와 집중하지 못하는 부족한 열정과 싸우는 나에게 여행을 후회하냐 묻는다면, 단번에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투정 부리면서도 결국에 나는 내일 또 공부를 하려 독서실을, 학원을 갈 것이고, 결국엔 공부로 진로를 걷게 될 것이다. 다른 길은 딱히 없다.
이제 중3, 조금 있으면 고딩.
엄마 아빠가 그랬다, 너희들이 이제 고딩 되니까, 이렇게 우리 가족끼리 길게 해외여행 가는 건 마지막일 거라고.
"중3 겨울방학은 안돼??"
"요즘 고1이 얼마나 중요한데. 중3이 고3이야. 어딜 가게."
후회 안 한다 절대.
더 커서도 후회 안 하려면, 지금 더 열심히 해야겠지.
어쩌면 시간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걸까. 정말 앉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면 좀 더 열심히 할까?
(나는 살짝 그런 사람이다..)
퍼뜩 진로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다.
한평생 오랫동안 해온 게 바이올린, 글쓰기 그리고 공부밖에 없다. (사실 공부도 그닥 열심히 하진 않았다ㅎ)
음악이나 글쓰기로 갈 용기도 재능도 없다.
그럼 남는 건 공부밖에 없다. 아무리 못하더라도, 열심히 안 하더라도.
중3은 새로운 걸 찾기에는 조금 늦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나도 이루고 싶은 꿈은 딱히 없다. 찾고 싶은 꿈도 없다. 그냥 공부를 조금만 더 열심히, 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다.
오늘 밤은 글을 쓰면서 조금은 다짐해 본다.
내일은 진짜 열심히 해야지.
조교쌤한테 질문도 많이 해야지.
관리형 독서실에서 집중도 잘해야지.
내일은 진짜 후회 없이 보내야지.
내일은 또 바이올린 학원을 거의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간다.
다음 주면 끝난다고 한다.
과연 나는 진짜 바이올린을 그만둘 수 있을까..
정말ㅋㅋ 답 없다ㅋㅋㅋㅋ
이럴수록 더 열심히 바쁘게 공부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어야겠다.
나중에 돌아보면, 이 시기에 저거 하나만큼은 잘했다, 라며 셋 중 하나는 되돌아보겠지.
화이팅
!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
안녕하세요 에원입니다!
무려 3주 동안의 긴 여행을 다녀오고 나타났습니다ㅎ
다녀오자마자 바로 글을 올리려 했는데, 또 게으름이란 게 있기도 하고 여행 후의 바쁜 일상에 치여 지금에서야 쓰게 되었네요.
돌아오자마자 너무 암울한 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모두가 아는 '여행 후 후폭풍'인 만큼 미화 없이 그대로 써내려갔습니다.
덕분에 저는 다시 좀 밝아진 것 같네요ㅎ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2월에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1일 날이 입국이라서 글을 못 올리게 되었습니다,, 대신 '7년 사귄 바이올린과 이별하기'는 예정대로 이번 주 일요일(8일 날) 올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내일도 힘차게 나아가는 에원이 되겠습니다:)
새벽 1시에 직접 찍은 사진과 쓴 글을 두고 조용히 달아나는 에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