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숭생숭 밍밍 행복한 한해가 되길.
아는 오빠네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와서 대충 놀리던 어머니 네 명이 만나서 만든 인연이 이렇게까지 이어졌다.
한 어머니의 말씀을 빌려 그 모습을 묘사해 보자면...
"포동포동한 밀가루 덩어리 같은 거 두 개가 쌍둥이 유모차에 얹혀 있고, 엄마는 그 옆에서 해방된 것 마냥 핸드폰 보고...
둘째였던 걔는 무슨 ADHD 애기처럼 온 놀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엄마는 걔 누나로 배운 게 많아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우리 애는 유모차에 끔뻑끔뻑 누워있고...
쟤는 똑같이 유모차에 누워있고, 그 둘이 제일 조그맸지."
그렇게 만나고 만나고 인연이 이어지고 같이 여행 가고 어쩌고 저쩌고...
그리하여 여섯 명의 아이들 중 한 명이 올해로 고3, 세 명이 고1, 두 명(나와 내 쌍둥이)이 중3이 될 때까지 이렇게
인연을 잘 이어가고 있다.
놀랍게도 이 사람들 중 한 명은 이미 내 브런치에 언급된 전적이 있다.
유모차에 누워있던 오빠는 바로바로 아주 명대사를 만들어 내 브런치에 오른 인물이다.
바로 "브런치 구독해 달라고 애원해서 에원이야??"를 난발했던 그 오빠다.
허허.
어쨌든, 그래서 네 가족이 2025년 12월 31일 날, 명대사 오빠네 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8시쯤, 아이들은 학원 끝나고 10시쯤부터 주섬주섬 모였다.
그렇게 어른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주방에서 마시고 드시고,
우리는 거실에서 같이 먹다가 남자들은 게임해고 여자들은 얘기하고 또 그러다 같이 얘기하고 놀고...
그렇게 새해를 같이 맞이했다.
어쩌다 남에 집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뭐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 어색했고 재밌었다.
빨리 가는 게 아쉬울 정도(일찍이라고 해봤자 2시지만)
언니들을 오랜만에 봐서 좋고 반가웠다.
학교에서 보기 힘든, 우리만 아는 오빠들의 모습을 봐서 좋았다.
비록 티비도 없어 카운트다운도 빈약하고 아이들은 '나이 먹었다=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사실에 숨죽여 욕을 했으며 가요대제전에 나온 스키즈도 못 봤지만, 나름에 그 특유의 맛이 있었다.
(가요대제전에 나온 스키즈는 후에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네. TMI.)
여자들은 성적과 미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분야에서는 문외한인 오빠들이 중간중간 던지는 질문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아 진짜 언니 나 이제 고딩이야 어떡하지?"
"괜찮아. 너 공부 잘하잖아."
"나 지금 모의고사 풀면 1등급이 겨우 나와. 나는 공통수학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
"고교학점제는 진짜 애들을 죽이려고 만든 거야. 진짜."
"그니까. 진짜 어떡하라는 건지... 내신이 너무 중요해서 중3이 고3이라잖아..."
"너희 고등학교에서 제일 분한 게 뭐게? 내가 2등급에 1등인 거. 진짜 분해서 미칠 것 같아. 내가 '쟤랑 같은 등급인 게 말이 돼???'이러는데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죠."
"난 외고잖아, 그러니까 진짜 기싸움이 엄청 셌거든, 거의 다 수시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헤, 언니들 둘 다 이제 고등학생이네. 난 아직 중딩인데."
"어이구."
"언니, 그래서 고등학교 어려워?"
"난 고1 때가 진짜 어려웠어.
그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믿기지 않는 바쁨을 감당할 힘이 없었어. 처음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고등학생 힘들겠지, 힘들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올라왔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힘들어. 그리고 열일곱은 그걸 감당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더라.
물론, 그걸 이겨내고 진짜 갓생 사는 애들도 있긴 한데, 나는 안 그랬어.
고2 때 돼서야 좀 나아졌던 것 같아.
아, 고2가 공부는 진짜 훨씬 어렵긴 한데, 그냥 버틸 힘이 생겼어. 똑같이 말이 안 되게 바빠도 그냥 이 악물고 걸어 나갈 힘이 생겼달까.
진짜 힘들 거야 너 고등학생 되면. 그런데 또 그렇게 치이면서 살아가다 보면 버틸 힘이 생기는 날이 오겠지."
"허... 울어야 해 말아야 해... 새해부터 너무 부정적인 거 아냐?"
"아니ㅋㅋ 진짜 긍정적인 게 뭐가 있지? 아 재밌긴 해 재밌긴 해~~"
"됐어..."
신선하고 새로운 새해였다.
아마 올해 나도 정말 말도 안 되게 바쁘겠지.
그런데 나도 치이면서 살면서 버틸 힘을 찾아가야겠다.
뜬금없지만, 난 아직도 내 글인 '브런치 구독해 달라고 애원해서 에원이야?'를 읽는다.
조금은 버겁고 울적했던 그런 순간에 충동적으로 썼던 나름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 글을 쓰던 순간의 나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남과 나에 대한 비교와 집착을 나 자신이 없애는 것.
어차피 딴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남들과 얼마나 차이는지 신경도 안 쓴다.
내가 집착하고 내가 비교하니까 힘들어졌다.
'나도 그 집착을 놓을 수 있다'는 용기를 그 글을 읽을 때 느낀다.
그 글을 쓸 때만큼은 그 용기를 가지고 썼으니까.
올해도 애원하면서 살 거고 올해도 즐겁게 재밌게 때로는 비교하면서 살겠지.
올해의 1월 1일처럼 밍밍한 듯 싱숭생숭하지만 은은하게 재밌던, 행복하게 흘려보낼 수 있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ㅎ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