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삶의 음악 - 안드레이 마킨

by 윤융


<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좁은 창을 때리는 거센 눈보라, 색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풍경. 이 황량한 기차역에서 화자인 '나'는 다른 승객들을 보며 그들을 '호모 소비에티쿠스'라는 신조어에 속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러던 중 복도 끝에서 운명처럼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기차역의 황량한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 누군가의 영혼이 담긴 고귀한 울림이었다. 소리를 따라간 끝에 한 노인을 만난다. 이제 '나'는 음악을 잃어버린 노인 알렉세이 베르그의 인생 이야기에 몸을 싣는다.


공포 정치가 극에 달했던 소비에트 사회에서 알렉세이는 촉망받는 젊은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자신의 독주회를 하루 앞둔 날, 부모의 체포를 목격하고 곧장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해 신분을 숨겨야 했던 그는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거리의 수많은 시체 속에서 그와 닮은 얼굴을 찾는다. 한쪽 귀에 총알이 박힌, 건물 뼈대에 짓눌려 하반신이 으스러진, 팔 한쪽을 잃은 시체들의 얼굴에 자신을 비춰보며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영혼임을 인지했으리라. 알렉세이는 수많은 시체 중 자신과 닮은 이의 이름을 빌려 ‘세르게이 말체프’라는 익명의 인간으로서 삶을 연명하며, 자신의 음악과 정체성을 빼앗긴 채 고통스럽게 존재한다.


34p. 체포당하고 심문당할 것이 걱정된 부모님은 그날 밤 바이올린을 불태운다. 넋이 나간 아버지가 현을 풀어 두는 걸 잊는 바람에 알렉세이는 반쯤 열린 방문 뒤에 숨어 불길 속에서 현들이 현란한 아르페지오를 발하며 끊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알렉세이에게 음악의 상실은 삶의 상실과 같았다. 그의 삶의 '음악'은 곧 어느 삶의 ‘가족’, ‘글’, ‘나라’, ‘신념’ 등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일 것이다.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존엄을 잃는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상실되고 희생된 수많은 삶들을 생각한다. 알렉세이의 삶을 앗아간 주체는 무엇인가? 그의 희생은 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는가?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강요한 그의 수십 년의 익명의 삶은, 불길 속에서 끊어진 바이올린 현의 아르페지오 소리보다도 침묵에 가까워야 했다.


119p. 그는 연주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밤을 가로질러 전진했다. 얼음과 나뭇잎과 바람의 무수한 단면들로 이루어진, 이 밤의 투명하고 불안정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안에 불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도 후회도 없었다. 그가 헤치고 나아가는 이 밤은 불행과 공포와 만회할 수 없이 산산조각 나 버린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 모두가 이미 음악이 되어 오로지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다.


화자인 '나'는 독자의 시선을 대변한다. '나'의 시선을 빌려 베르그의 삶을 관찰함으로써, 기차 안의 사람들을 경멸했던 '나'의 시선이 실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것이 아니었는지 성찰하게 한다. 짧은 소설 속 문장들은 삶의 무게와 깊이를 담고 있으며, 알렉세이의 이야기를 통해 이데올로기가 가져온 비극의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피아노 소리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독주회로 마무리된다. 낡고 단절된 영혼의 알렉세이는 어느새 “젊음을 되찾은 사람처럼”(127p) 생기를 찾는다. 그의 삶이 음악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늘한 기차역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그 묵직한 저음 속의 수많은 배음과 잔향을 읽어내며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