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모르는 사람들』을 읽고
타인에게 향하는 마음의 형태는 지극히도 유동적이어서, 그 주체조차도 마음을 정확히 형언할 수 없다고 했다. 타인을 이해해보고자 한 나의 시도는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많은 모습 중 일면만을 보고,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 나름의 판단을 내릴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잘 안다고 말한 건 나의 오만이었고, 나의 해석은 어쩌면 모두 오역이었다.
그럼에도 이해의 가능성을 믿어보고자 하는 나는 그 과정에서 끝없는 갈등과 오해에 부딪힌다. 나의 불완전한 마음은 또 다른 감정을 낳고, 새로운 감정은 관계의 형태를 또다시 변모시킨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떤 점에서는 누구보다 잘 듣고 가장 잘 듣는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중을 말하는 사람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도 내 의중을 모르겠다’는 말 역시 모두 거짓말이었다. 나조차 외면하고 싶은 내 의중을, 너만큼은 헤아려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새어나온 거짓말이었다. 너의 눈빛이 내 너머의 무언가를 훤히 꿰뚫고 있었으면 하는 나의 조용하고도 절박한 바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속 어머니의 오해의 이면에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자신이 맞닥뜨린 사실을 믿지 못해서, 그것을 회피하고자 어쩌면 오해일지도 모르는 나만의 ‘사실’을 새로이 믿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 본질이 ‘믿음’이라는 점에서 그녀에게 사실을 믿는 것과 오해하는 것은 같은 선상에 놓여 있었고, 둘 중 어떤 것을 믿을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그녀에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위험한 믿음조차 온전히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감정이기에, 그런 나의 비뚤어진 욕망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의 궤적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로 회귀했고, 모든 시도는 궁극적으로 나를 향해 있었음을 깨닫는다.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나의 본심을 알아채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욕구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의 중요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그 너머의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