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온전히 관계 맺기

사이보그가 되다 - 김원영, 김초엽

by 윤융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나의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은 고등학생 때 겪었던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이 관심의 씨앗은 이후 장애인 인권과 빈곤 문제 등으로 서서히 확장되었고, 그때의 나는 막연히 이런 생각을 했다.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그 결연한 결심 이후로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대답은 ‘아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목소리를 낼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그저 “그거 차별이야.“ 같은 1차원적인 말밖에 할 줄 몰랐던 사람이다.


“차별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박상현 작가의 책 『친애하는 슐츠 씨』를 관통하는,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때로는 개인의 무지가 차별의 원인이 된다. 이 문장을 접하고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지를 경계해야 하고, 내면의 무감각함과 대면해야 한다. 『사이보그가 되다』와 같이 사유의 장을 열어주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지를 배척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엄청난 행운이나 다름없다.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작가는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사용해 온 보청기와 휠체어에 대한 글을 풀어낸다. 두 작가의 글로부터 나는 보청기와 휠체어를 모두 사용하셨던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었고, 곧 이 이야기들은 나에게도 결코 멀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이 책은 장애와 기술의 결합에 관련한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다. 현재 보조기구와 기술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 우리 중 대다수에게, 어떤 이유로든 이러한 기술과 관계 맺게 될 불가피한 순간이 올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장애를 병리학의 대상에서 존재론적 문제로 취급하는 견해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장애는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신체이며, 극복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신체적 특성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자주 하는 말들과 몇몇 인식에는 큰 결함이 있다. 가령, 시각장애인에게 “언젠가 과학이 발전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볼 수 있을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장애인의 신체적 특성을 부정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의 범주에 그들을 끼워맞추고자 하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태도의 문제점은 장애인 복지에 대한 책임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과학기술에 미루는 것에 있다. 이에 관해 김초엽 작가는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꼬집는다. 예를 들어 이미 완공된 건물에 뒤늦게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것과 설계 과정부터 교통약자를 위한 경사로를 배치하는 것은 접근성에 대한 우선순위 설정단계부터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구와 기술을 두고 ‘따뜻한’ 기술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 말에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이는 장애라는 신체적 특성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에 비롯한 것으로, 그들을 동정하며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차별적 잣대에 의한 행위에 불과하다.


물론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비약이며 실례가 되는 말일지 모른다. 특히나 사이보그가 되다 6장에서 제시된 ’ 장애의 패션화와 패티시즘’의 문제는 아직도 나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주며,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위해, 최대한 많은 고려 후에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는 그들이 사회에서 겪어 온 직접적인 경험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무지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놓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장애인과 사회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고려해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다르다.


김원영 작가의 글에서 ‘잇다’라는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장애인의 삶에 있어 기술은 단지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을 얻기 위해, 매끄러워 보이기 위한 이음새의 역할에 그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살아가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기술과 인간이 온전히 관계 맺기 위하여, 기술개발자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사람,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 태도 또한 이 이음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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