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우주 속에서, 낙관하기!

테드 창, 「바빌론의 탑」을 읽고

by 윤융

하늘에 닿고자 탑을 쌓는 인간, 그것을 신에 대한 교만이라 여긴 야훼의 징벌. 「바빌론의 탑」은 구약성서의 서사를 비틀어 인간의 욕망과 순환하는 우주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힐라룸이 탑을 오르며 목격하는 광경의 묘사에서, 우리는 우리가 믿어온 하늘과 땅의 개념이 점차 허물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힐라룸의 시선을 통해 통상적인 하늘과 땅, 상하구조를 해체해 나가는 것이다.

결말에 이르러 원통형의 세계가 드러나며, 테드 창이 이 단편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우주론이 완성된다. 이 세계관에서 상행과 하행, 출발과 도착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순환하는 우주, 그리고 순환하는 욕망. 탑을 오르는 이들이 닿고자 했던 하늘이라는 것은 실존하는가? 원통형의 우주에서 하늘과 땅은 맞닿아 있으니,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면, 또 조금만 방향을 틀면 하늘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상징적인 의미의 하늘은 우리의 의식으로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곳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지독히 허무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이 서사가 세상을 향한 낙관의 이야기로 읽힌다.

「바빌론의 탑」세계관에서 하강은 곧 상승이 된다. 힐라룸이 두려워했던 저수지의 물은 그를 파멸로 이끈 것이 아니라 위로 솟구쳐 올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힐라룸은 그가 떠나온 곳, '땅'으로 회귀했으나, 그 회귀의 과정은 단순한 낙하가 아니었다. 땅은 떨어져 도달한 곳이 아닌 하늘 너머에 있는 곳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이 서사는, 직선적인 진보에서 순환적 사고로의 전환을 유도한다. 하늘로 향하는 움직임이 반드시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땅으로의 하강이 파멸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반복과 회귀 속에서도 발전과 진보는 이루어진다. 힐라룸은 다시 출발점에 서 있으나, 같은 자리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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