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허영

by Eian Lim

17. 허영




나와 그는 함께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보는 구역도, 그는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마치 익숙하다는 듯, 위치를 다 알고 있는 듯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갔다. 끝없이 이어질 듯한 계단을 내려가고 복도를 달려서 복도에 주저앉은 F를 발견했다.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은 S는 빨리 나가라며, 이곳은 위험하다며 소리쳤다. 당황한 F는 그의 말을 따르며 뛰쳐나갔고, 우린 함께 더더욱 깊은 지하로 내려갔다. 거세게 진동하는 시설은 우리 머리에 암석으로 이루어진 궂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멈춰서는 안 될 표정을 지은 S를 따라 나도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4층정도를 내려온 것 같은데. "우리 얼마나 더 가야하나!"

내 물음에도 그는 묵묵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젠장, 설명도 없이 달려 나가기만 해서 뭐 어쩔 건데!" 난 그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손을 뿌리쳤다는 사실에 놀란 것인지, 멈춘 것에 놀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제발. 이 복도만 지나면 돼. 여기만 지나면 그가.."

"S!!!!!!!!!!!!!"


저 멀리 떨어진 복도의 끝에선 익숙한 괴성이 들려온다.

"젠장, 이미 늦었나!" 무언가 S의 다리를 감싸더니,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뛰쳐나갔다. 일단, 나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넌 항상 그런 식이었어. 남들 눈에 빛처럼 빛나는 그런 찬란한 삶은 즐거웠나? S, 넌 언제나 세상의 중심이었지. 모두에게 선망받는 사람이 되어 모두의 머리 위에서 '시선'을 만끽하며 마음껏 헤엄쳐온 너의 그 영롱했던 삶이, 아름다운 삶이, 왜 나에겐 주어지지 않은 거지? 대답해라. 왜? 어째서!!"

"닥쳐!! 내가 이 신세가 된 것도 누구 때문인지 잊은 건가!! 자신의 과오를 마주할 용기는 없으면서, 남들처럼 되고 싶다는 탐욕에 눈이 먼 건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지만, V의 뒤엔 무언가 거대한 시설이 있었다.

"잠깐.. 그건.."

"그래 S. 너와 나, 그리고 너의 그 주정뱅이 조수가 함께 만든 역작이지. "이거면 '세계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누구 손에 있을까??"

"그렇게는 두지 않는다! D, 협조해라!" 그 말을 끝으로 달려 나간 그는 오만으로 가득 차버린 인간과 대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영에 찌든 삶은 즐거웠나? 세계가 멸망하고도 욕망을 버리지 못한 건가?!"

"욕망.. 그래. 하하.. 하하하하하하하!!! 난 언제나 널 뛰어넘고 싶었어. 널 짓밟고 올라가고 싶었다고!! 널.. 널 끌어내려서라도..!!!!"

이제 그의 눈은 허영과 오만으로만 빛나지 않았다.

"크윽, 감염이다! 무엇이 올지 몰라! 조심해라!!"

감염의 위험성은

내가 더 잘 안다.


"감염은 그냥 둘 수 없어.

평화를 해치거든."

난 야구 배트를 꺼내 들었다.

묵직하고도 가볍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끄아아아아악!!" 무기로 두개골이 파괴된 그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 왜????! 왜 나만?!?!?!" 그의 온몸에서 촉수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내 온 공간에 퍼져 나와 S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이것도 너와 같은 '신체 변화'지?! 나도 널 뛰어넘은 거지??

그래.. 이거면 됐어.. 이제 널 죽이기만 하면 돼..!! 같이..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 하하하하하!!!!!!"


그는 사방으로 날카로운 창을 찔러댔다. 그의 촉수는 결국 시설과 그 안의 무수히 많은 약물까지 흘러 들어갔다.


"하.. 젠장, D! 우린 도주 한다! 저 촉수가 점점 시설을 갉아 먹고 있어!"

"어딜.. 도망가!!!!"

촉수가 날아와 S의 팔을 찔렀다.

"크윽..

D.. 도와.. 줘..!"

그가 내게 뻗은 손.

분명 처음이 아니다.


...


분명, 연구시설에서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가벼운 실험을 하는 일상에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기만자가 있었다.

한없이 슬프고도 연민이 느껴질 법한 얼굴을 하고선

그는 손을 뻗으며 너무나 고통스럽다며, 도와달라며 호소했다.

피를 뽑는 행위가 고통스럽다고?

"진심이야? 과장하지 마.

'기만자'자식.."

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손은 포물선을 그리곤 이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무언가 굳게 결심한 듯한 얼굴만이 내 기억 속에서 맴돌았다.


"빨리! 제발, 빨리!!"

회상할 시간이 없다.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었고, 약물에서 시작된 화염은 점점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S는 서서히 깊숙한 내부로 끌려가고 있었다.

"S."

남에게 도움받을 필요 없잖아.

"넌 혼자 할 수 있잖아."

넌 능력이 없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스스로 해보는 게 어때?"

난 그를 밀어냈다. 거세게 당기던 촉수는 마침내 먹잇감을 가져갔다.

"그래,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자.. 여기서 죽자!! 그럼 우리 둘 다 동등해지는거야!!!"

V는 이제 분노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을 희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V..! 넌 옛날부터 모든 걸 망쳤지. 성장 하나 하지 못하고 내가 할 뒷처리 거리만 만들다 삶을 마칠 셈이냐?"

S는 영문 모를 힘으로 그의 팔의 모양을 바꿨다.

"그래.. 나도 너처럼.. 신체를!!"

V도 촉수를 한데 모아 거대한 팔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으로 오만하군 V. 넌 그저 날 모방하기만 할 뿐이다. 기껏 이전의 죄를 봐주고 무리에 합류시켜 줬더니, 이게 너가 은혜를 보답하는 방식인가?"

붉게 물든 그의 눈. 그걸 바라보는 또 다른 검붉은 눈.

"이게, 너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다. 뼈저리게 느끼도록."

S는 자신의 팔로 모방의 흔적을 뜯어냈다.

흉측하고 기괴한 소리가 이어지고, S는 붉게 물들었다.

"크아아아.. 아아아아!!!!! 왜.. 왜!!!

왜 난 아무리 노력해도 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데!!!!"

누군가의 최후를 뒤로하고, 떨어지는 잔해들을 피해 우린 빠르게 달려 나갔다.

시설의 진동이 거세진다. 분명 순수한 비명일 뿐임에도, 무언가에 감염되어 가는 존재의 발악은 단 한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날 봐!! 날 봐.. 제발.. 마지막은 날 바라봐달라고.."

이토록 그를 움직이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는 정녕 무엇을 욕망했단 말인가.

내 마음은...

...

아니아니,

이건 의지여야 한다.


우린 시설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허영으로 가득 찬 사내가 모든 걸 포기한 채 주저앉은 장소에서 멀어지기 위하여.

이젠 위험만이 남아있는 이 장소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그는 빠르게 다리를 앞으로 당겨가며 나에게 물었다.

"넌.. 학생 때 어땠어?"

모든 질문에 답해줄 이유는 없다.

"...

내가 답하면. 달라져?"


우린 빛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시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듯 보였다.


...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과 굉음이 우리의 뒤에서 울려 퍼졌고, 가까스로 우리는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바깥에선 F가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S를 걱정해 주기 위해 달려 나왔다.

"S!!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요?

V는.. 죽은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죽어도 싸. 아니, 죽어야만 했지." 얼버무리는 그를 대신해 내가 말했다.

그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감염자가 된 그였어. '위험'했단건 변함없다."

"... 잘..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곤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감은 그의 눈에선

의미 모를 눈물만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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