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탐색

by Eian Lim

2. 탐색




거주지를 찾는다는 명확한 목적이 생긴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침이 찾아왔고, 오랜만에 꿈 없는 기상을 맛본 난 탐색 준비에 나섰다. 모두가 일어나 준비를 마치자, 우린 다시금 탈출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해방감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우린 빠르게 탐색해야 했다. 몇 개월 만에 나온 바깥세상은 너무나 고요하고 삭막했다.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자동차들은 움직였던 세월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먼지라는 담요를 덮고 있었고, 건물들의 외벽도 썩어버린 나뭇조각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공간들을 지나며, 흘러가버린 세월을 체감했다. 적막하게 탐색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지만, 돌아올 시간은 앞으로도 많은 만큼, 지속된 탐색은 우리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제공해주었다.


처음 발견한 건물은 무너지기 직전의 빌라였다. 걱정하며 들어간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녹슨 파이프에선 붉은 물이 강하게 튀어나오고 있었으며, 피와 썩어들어가는 시체 냄새가 진동했다. 아직까지 고여있는 핏물에 미끄러지지 않게끔 버티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K는 넘어져 타박상을 입기까지 했다. 도망치듯 나온 우리는 다른 집을 찾아보자는 의견을 냈다. 모두의 만장일치였다.


시간이 지나 발견한 두 번째 집은 이끼로 덮여있는 약간 낡은 풍의 건물이었다. 이끼로 덮여있다는 건 잘 띄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며 들어간 K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끼로 덮인 건물의 그림자에선 무수히 많은 균열들이 우릴 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내부가 더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라도 무너질 듯한 이 건물에서 생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두가 기운없이 서있을때,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덩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진도 아니고 이게 뭐야!!" M은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하루아침에 송장이 돼버릴 수 있는 집을 뒤로하고, 우린 결국 다른 곳을 찾아나가게 되었다.


며칠 정도 더 탐색을 이어 나갔다. 모두들 지쳐있었다. T의 모습은 더 이상 걷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K도 거친 숨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목적을 위해 시작했던 처음의 거센 발걸음은 지금은 그저 옅어져 버린 것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힘없는 발걸음 끝에, 드디어 건물을 발견했다.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지만 간만에 눈에 들어온 다수를 위한 건물이었다. 환호성을 지를 힘조차 없던 우린 건물에 들어갔고, 드디어 우린 적당한 공간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내부는 다소 어질러져 있었지만 관리되던 것처럼 보였고, 접시 한두 장이 깨져있던 것을 제외한다면 생활용품들도 충분해 보였다. M은 이곳이 비교적 최근까지 관리되던 곳이라 추측했다. 깨진 접시 같은 것들은 아마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대피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집은 3층이라는 큰 규모를 갖고 있었고, 그리하여 우린 방을 나누게 되었다.

K와 J가 1층을, M과 T는 2층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난 3층에 혼자 지내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간의 대화로 층을 배분했지만, 난 의도치 않게 그 자리에서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럼, 아저씨 혼자 3층을 쓰시게 되겠네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3층이라는 좁지 않은 공간에서 혼자 살게 되었지만, 외롭다고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편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어차피 격리시설에서부터 혼자처럼 지냈으니, 여기 와서도 그럴 뿐이다.


탈출 이후 며칠이 지났고, 드디어 거주지를 마련했다. 평안이 찾아오자, 우린 이제와서야 다양한 감각이 돌아왔다. "물도 나오려나? 샤워를 좀 하고 싶은데.." J가 말했다. 아마 그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동일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물이 끊기진 않았고, 시간이 지나 우리 모두 청결한 상태가 되었다. 다만, 격리시설 당시의 옷은 모두가 계속 입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마 이 집엔 다른 옷도 있을 것이라며 다시금 우린 탐색을 시작했다. 각자의 층에선 서로에게 맞는 옷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K도, J도, M과 T도 모두 편안한, 움직이기 용이한 생활복으로 환복했다. 안타깝게도, 나만이 옷을 찾지 못했다. 3층을 마지막으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 방으로 올랐다.

옷을 찾기 위해 올라간 난 적절한 사이즈의 생활복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찾았음에도 나만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소외감이 드는 듯 했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포기하려던 찰나 옷장 깊숙한 곳에서 정장이 보였다.

회사원이었던 난 다른이들의 만류에도 항상 같은 옷만을 고집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남들의 시선에 잘 보이고 싶었던 탓일까,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저 편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그저 편안하게 느껴지는 복장을 입었다. 약간 커 보이기도 하지만, 불편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나와 어울리는 모습이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다른이들을 만났다. 내려가자,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정적으로 이어졌다. M은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저 다시 입을 닫았고, J의 눈은 내 옷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적도 잠시, 다시 그들은 수다를 이어 나갔다.

우린 이렇게 이 집에 정착했다. 집도, 옷도, 심지어는 역할 또한 잘 정해졌다. 나만은 역할을 배정받지 못했다. 그냥 전반적으로 도우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태양도 저물어가며 모두들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며칠간 정처 없이 떠돈다는 것은 매우 체력 소모적인 일이니 말이다. 조금씩 싹트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아직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익숙하지 않을 관계에선, 영문 모를 불안이 싹트는 건 흔한 일이 아닌가? 적어도 언젠간 서로가 거슬리지 않을, 익숙해질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앞으론 새로운 삶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달빛이 내 눈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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