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송편

by Eunice

결혼 전 친정은 종가집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종가집의 종손이셨고 일년에 제사가 열 두번이나 되었다.

어머니는 시집오셔서 매 제사때마다 그 많은 제사 음식을 혼자 척척 해 내셨다. 시골 어른들께서는 우리 엄마만 있으면 명절 음식은 걱정이 없다고 하셨다니 처음 부터 무슨 음식이든 막힘없이 척척 하셨었던것 같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댁에서 명절을 보낼 때는 작은 할아버지 가족들, 삼촌들 까지 모두 모였는데,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않좋아 지시면서 제사를 우리집으로 모시고 오게 되었고 언제가 부터는 우리 가족끼리만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매년 추석이 되면 연휴 첫날은 새벽같이 일어나야 했다.엄마의 불호령에 아버지와 우리 세 자매는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 추석에는 여덟 접시에 담을 송편을 만들어 내야 하는 미션이 늘 주어졌으니까. 어머니는 전날 불려놓은 쌀을 가지고 일찍 방앗간에 다녀오셨다. 솔잎은 언제 주으셨는지 깨끗하게 씻어 잘 말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쌀가루가 집에 도착하면 반죽을 하는데 반죽 양이 정말 어마어마 했다.

어머니는 다른 음식 준비로 바쁘시고, 송편은 오롯이 아버지와 우리 세자매에게 맡겨졌다. 우리는 반죽을 둘러싸고 앉아 송편을 빚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손으로 몇번 주물럭 거리고 가운데를 옴폭하게 만들어 소를 넣는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하다. 송편을 빚는다는 말도 그 마지막 과정에서 송편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표현일 거라 나는 생각한다. 소가 들어간 조그만 그 반죽 덩어리를 왼손 손바닥에 놓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돌려가며 다듬는다. 둥글둥글 하지도 않지만 모나지도 않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선이 있지만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두 손가락으로 하얀 반죽에 신비의 곡선을 만들어 놓는다.


아침부터 서둘렀던 이 송편을 빚는 작업은 정오가 훨씬 지나고 비로소 끝난다. 어머니는 빚어놓은 송편이 어느정도 쌓이면 세 칸 찜통에 송편을 찌셨다. 준비해 놓은 초록 솔잎을 아래에 잘 깔고. 그 찜통으로 서너번은 쪄야 추석명절 차례상에 올릴 송편의 양을 다 채울 수가 있었다.

송편이 쪄서 나오는 걸 보면서 어느 정도 양이 되었다 싶으면 그다음 부터는 슬슬 자세가 나태해 진다. 종일 앉아서 허연 쌀가루를 손바닥에 묻히며 허리 한번 못펴보고 송편을 빚고 있었으니 짜증에 짜증이 더해진 동생은 남은 반죽을 모두 뭉쳐 마지막 송편을 공룡알 만큼 크게 만들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흘쩍 도망을 쳤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쪄 놓은 공룡알을 가리키며 "이거 누가 만들었니? 세번을 쪄도 속이 안익었더라" 하시길래 다 같이 웃었다.


추석이 되면 결혼 전 정말 지겹도록 송편을 만들었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세 딸들은 아마 다들 누구랑 견주어도 송편 만드는 솜씨는 중간 이상은 될 것이다. 어렸을 때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나중에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언니도 나도 아들만 둘이니까.

결혼을 하고 나니 시어머님은 추석에 늘 떡집에서 송편 한팩을 사셨다. 흰색,노랑,보라,녹색... 알록달록 송편 색깔도 참 예쁘고 맛도 좋다. 그래서 결혼 후 한동안은 추석 때 친정에 가면 "엄마도 그냥 떡집서 사지. 매 추석마다 우리를 그렇게 고생시켰어" 하며 툴툴대기도 했다.

결혼 후 나는 정말 단 한번도 송편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편해서 좋다. 그런데 이야기 거리가 많았던 결혼 전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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