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김호연 장편소설)

by Eunice

마음에 온기가 서서히 퍼져가는 것 같은 책을 읽었다. 잠깐잠깐 책장을 덮을 때마다 보게 되는 벚꽃에디션 표지는 나로 하여금 책 속의 청파동 골목 어딘가에 머무르고 픈 느낌마저 들게 했다.


동네마다 다양한 브랜드로 널려있는 24시간 편의점.

나에게는 그냥 급할 때 필요한 소량의 물건을 구입하는 곳 이상의 인식이 없었던 장소이다.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동안 인식하고 있는 편의점의 존재는 물건을 구매하는 소매상점의 하나였을 뿐이었고 인터넷 구매나 대형마트에 더 친숙한 나는 그동안 그 흔한 편의점을 눈여겨 볼일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대학생 아들이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고 했을 때에도 젊은 청년들이 적당히 시간 때우며 돈 벌기 좋은 쉬운 알바자리 정도로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편의점이란 곳이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만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곳이고, 지극히 서민적인 장소여서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어떤 이에게는 하루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된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그리고 따뜻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책장을 펼치며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금세 젖어들었다. 집집마다 애환이 없는 집이 없고 사람들마다 남모를 고충과 사연이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 오버랩되며 3인칭으로 그려지는 책 속의 사람들은 지극히 보편적인 이웃이었고 또 우리가 삶에서 겪는 이야기들이었다.

편의점 사장인 염영숙 여사는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사람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존경할만한 어른이었다. 염여사를 보며 나이가 들며 연륜이란 것이 지나친 고집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믿음과 포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르바이트생 시현은 작은 긍정 경험들로 용기가 필요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었으며, 편의점의 오전을 담당하는 선숙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든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이었다. 퇴근길 참새 방앗간처럼 편의점에서 '참참참'을 즐기는 세일즈맨 경만은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는 가장의 모습이었고, 극작가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인경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기 위해 애쓰며 버티는 우리들의 꿈과 비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흥신소 곽 씨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반성하며 남은 삶의 기간에 바르게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우리네 장년층들의 마음이었다. 여물지 못한 염여사의 아들인 민식 초차도 늦은 저녁 염여사와 건배하며 회한을 나눌 때는 가족에 대한 온기는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독고'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며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에 몰입하게 하는 매력적인 등장인물이다. 과거의 기억을 잃고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 염여인의 도움으로 편의점의 야간알바를 하게 되면서 독고는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진심 어린 독고의 관심으로 사람들은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그러한 과정에서 독고도 기억을 되찾고 과거 자신의 잘못을 다시 마주하며 이제는 좌절이 아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된다.




'사람은 연결되어 있다'는 독고의 말은 책의 전반에 흐르는 주제였다.

염여사가 독고에게 베풀었던 친절이 독고가 편의점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고 독고가 선숙 씨와 곽 씨를 통해 아내와 딸과의 관계를 돌이켜 보듯 우리는 각자가 무관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으며 삶에 대한 해답을 찾고 용기를 얻으며 살아간다는 평범할 수 있는 사실이 조금은 새롭게 와닿았다.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는 밥 딜런의 외할머니의 말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로 여겨져 서로에게 향하는 온기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손님에게 하듯 (가족에게) 하세요"라는 독고가 곽 씨에게 무심코 뱉은 말과 '가족 또한 인생이 여정에서 만난 귀한 손님'이라는 독고의 생각에 또다시 가족을 대했던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도 되었다.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는 독고의 깨달음은 힘든 여정을 걸어가며 조금 더 영글어 지기를 바라는 나에게 또 하나의 지혜의 메시지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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