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ice Feb 18. 2024

아이에 대한 기억

전하지 못한 말들

아이가 나와의 모든 대화를 완전히 차단한 지 8개월이 되어간다.

말은 물론이고 문자와 카카오톡, SNS 모든 계정에서 나를 차단했다. 그동안 짧은 말이라도 아니면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도 회신을 한다거나 문자로 말을 건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요구든 불만이든 혼자 말없이 있는 시간이 못 견디게 지루하거나 불편해서 나를 떠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문자를 보낼 만도 한데  내 아이지만 정말 독하다 싶다. 그만큼 자신의 삶에서 엄마의 존재를 철저히 배제하고 싶은 것일까.


유아시절부터 아이는 고집이 남달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울고 떼를 썼다는 기억은 없는데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했다는 기억만 강하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기 위해 내가 요구하는 그 무엇도 하지 않고 버티며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말았다. 언제나 기싸움에서 내가 졌었던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서 내가 협상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내 예상은 어긋났었다. 그만큼 나는 내 아이를 잘 몰랐고 알려고 깊이 고민하지 않았었고, 그때그때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대충 상황을 모면하기에 바빴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내온 시간은 아이와 신뢰를 쌓고 부모로서 권위를 가지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나는 사람관계에서 밀당에 약하다. 회사에서도 개인관계에서도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하는 건 동일했다. 무엇보다 말 안 하고 서먹한 관계가 지속되는 걸 못 참아했다. 어떻게는 그 어색함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에 종종 먼저 다가가거나 먼저 낮추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나이기에 나는 아이가 이렇게 오래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것에 조바심이 난다.


아이에게 말이하고 싶어서 얼마 전부터 아이와의 카톡 메시지 창에 글을 남기고 있다. 메시지 옆 읽지 않은 표시 1이 지워지지 않지만 IT시스템을 잘 모르는 나는 혹시 수신표기를 지우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하게 보게 된 나의 메시지로 아이 마음에 따뜻함이 전해졌으면 하는 기대에서이다. 매일의 안부 인사로 4~5줄이 금세 채워지지만 아이가 읽을 거란 전제를 하니 더 이상은 자제를 한다. 그리고 못다 한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남겨 둔다.



OO야.  

초등학교 운동회 때 반대표 계주선수로 뽑힌 너한테 엄마가 물었잖아. 바통을 이어받기 위해 기다릴 때 어떤 기분이냐고... 엄마는 그런 경험이 없어 그냥 궁금했었거든. 그때 네가 "엄청 떨리지~"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미소가 지어졌어. 조그만 아이였던 너도 친구들의 기대와 책임감으로 그 순간 마음 졸이며 간절했었겠구나. 그러면서도 그런 기대받고 책임 있는 일을 자진했던 네가 참 기특했었어.


엄마가 반찬을 만들면 넌 겉보기는 비슷한데 학교 급식이랑 맛이 차이가 난다며 엄마가 너희 학교 급식 선생님한테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도 했지. 그냥 아무 말없이 먹는 형과 달리 너는 엄마의 만든 음식에 점수를 매기고 평가하고 지적했었어. 다른 사람에게 그랬으면 밉상이었겠지만 엄마는 엄마가 알아듣도록 직설적이고 솔직하고 유쾌하게 말하는 네가 참 재밌었어.


6학년 때까지 친구들 다 가진 핸드폰이 없어도 너는 먼저 사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 현장학습 체험 갔을 때 스마트폰이 없어 혼자만 사진을 찍지 못하는 네가 조금 안쓰러웠다는 말을 담임선생님께 전해 들었을 때 엄마는 오히려 자랑스러웠어. 그런 걸로 친구들 앞에서 절대 기죽지 않았을 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 후 엄마가 3년 쓴 핸드폰을 물려주었을 때 네가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 진작 줄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매달 용돈을 주고 스스로 관리하는 걸 가르쳐 주려고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필요한 돈이 매주 봉헌금으로 한 달 4천 원이면 된다고 했던 너였는데. 스마트폰 캐시워크도 알뜰하게 활용하며 낭비하지 않는 너의 모습이 참 대견했는데. 혹시라도 엄마가 너무 돈돈 했던 건 아닌가 그래서 원하는데 말 못 하고 참았던 적이 있었던 건 아닌가, 그랬다면 미안하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며 좋은 고등학교 진학하기 위해 시작부터 참 열심히 했는데 첫 시험에서 생각만큼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기대만큼 네가 제일 많이 실망하고 좌절했을 텐데 그때 엄마가 충분히 위로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거 같다. 공부든 학교생활이든 그때 겨우 시작이었는데. 뭐든 상상해 보고 꿈을 꾸어 보며 적성을 찾아보는 시간으로 충실했어야 했을 시간이었는데 말이야. 엄마가 획일적인 방향만을 보여주고 그쪽으로 너를 몰아붙였던 것 같구나.


지금 많이 힘들지. 엄마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과 비교하는 시선을 갖게 되었을 테니, 엄마 때문에 획일적인 삶의 방법만을 보게 되었을 테니 엄마가 너를 더 불안하게 했겠구나. 어떻게 미안함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야. 너는 네 생각이 강한 아이였잖니. 그게 어쩌면 너의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너는 네 생각과 방식대로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야. 남들에게 보이는 네 모습이 중요했던 너의 가치관과 네가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해서든 하려는 너의 기질이라면 네가 어떤 계획과 목표를 세우 든 너는 바른 선택을 할 거고 그걸 추진해 나갈 수 있어. 너는 그럴 힘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 란다.

그래서 엄마는 당장의 시간에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어. 너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그리고 너는 내면이 강한 사람이라는 걸 엄마는 믿으니까.



나는 아이에 대한 추억을 되뇌며 아이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간다.

시련이 만큼 아이는 분명 강해 질 거고 나는 아이에 대한 믿음으로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릴 것이다.

아이에게 말하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들을 매 순간 이렇게 글로 남겨두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기다림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