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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Oct 29. 2023

번아웃(Burnout)

가족이 그립다

아이를 위해 그동안 여러 번의 상담센터를 찾았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번아웃인 것 같다고 했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집에서는 더 이상 쏟을 에너지가 없을 거라 했다.

남편은 상담사 선생님의 말을 자기 논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잘 활용했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나의 잘못에 대한 비난으로 들렸다. 상담을 받는 내내 남편과 상담사 선생님은 나를 야단치기 위해  한 편인 것 같았다.


남편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실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한 건 한때 아이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중학생이 된 이후 아이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남편 잘 챙기고, 집안 정리 잘하고, 매 끼니 따뜻한 밥과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고, 늘 가족에게 따뜻하고 포근하고 헌신적인 그런 사람. 그게 아마도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바라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남편과 아이들은 여느 집은 모두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도 모든 집이 그렇지는 않더라도 화목한 집이라면 그 집의 아내와 엄마는 그러한 이미지일 것이라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굳이 주변의 사례를 찾지 않더라도 TV 드라마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화목한 가정에서는 여자들이 집안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 점에서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생각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나는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소홀했던 사람이었고, 가족이 아무도 원하지 않는 데 일을 하면서 살았던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올해로 회사 생활 24년 차이다.

두 아이 출산휴가 3개월을 빼고는 그 흔한 육아휴직 한번 써 본 일이 없었다. 심지어는 일정 기간마다 주어지는 근속 휴가도 두 번이나 그냥 반납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주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고 그런 가운데 맛보는 잠깐의 성취감이 나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욕심이 더 회사일에 몰입하게 했었고 열정을 바친 만큼 회사에서 보상받고 싶었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종일 보고서를 쓰고, 다음 일을 고민하고, 동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으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나한테는 루틴 한 일상이 되었고, 매일의 나의 할 일이었고, 나에게 요구되는 내 역할 중 그나마 잘하는 익숙한 일이 되었다.


24년의 그 시간은 고착화된 내 습관이 되었고, 내 가치관을 만들었으며,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 그만큼 나는 밖의 일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며 살아온 것이다. 지금 일을 그만두고 주부로 산다는 건 나에게는 단순히 본래 캐릭터를 버리고 부캐를 선택하는 정도의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쩌면 여행지의 낯선 장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며, 일정기간 동안 또 다른 수많은 시행착오와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는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 당장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삶이든 온전히 편안하게 녹여 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


무엇보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정 주부로만 산다는 것이 나에게 아주 큰 결정의 문제인 이유는, 가족이라는 타인의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과 그로 인해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모습과 그 안에서 상상했던 행복에 대한 이미지들을 수정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수 있어 과연 내가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 때문이었다.


회사일은 그동안 부단히 나에게 성장 욕구를 자극했고 성취감을 주는 부분이었다.
일을 매개로 회사 밖에서 사람들과 개인적인 모임을 만들기도 용이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며 소속감을 가지고 지내는 걸 즐겼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나의 상처는 위로받고 또 한걸음 전진을 위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여기서 받은 상처를 저기서 치유하며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으며 살아왔었다.


그렇다고 내 가정과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매일의 바쁜 생활 때문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이 학교 상담이나 참관수업을 가거나 학부모들과 모임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어서 그런 날은 엄마 역할에 대한 의무감이 아니라 소풍 가는 날처럼 살짝 들뜨기도 했다. 때마다 가족 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에게는 언제나 신나는 일이었다.


또 내가 일을 할 수 있어서 가족들에게나 아이들에게 좀 더 풍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상황도 기쁘고 때로는 감사했다. 늘 옆에서 자상하고 세심한 케어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항상 관심 가지고 신경 쓰면서 살았다.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고 나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가족들의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언제나 기대했던 건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였다. 가족이 빠진 나 혼자만의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은 결코 없었다. 일을 했던 것도 나와 나의 가족의 미래가 좀 더 풍요롭고 여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고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해 줄거라 믿었기에 가족들의 불만과 원성이 억울했다.

언젠가부터 가족들은 나에게 마음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대하는 게 마치 금이 간 유리컵을 만지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조심하고 눈치를 살펴야 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못 견디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살아온 시간들이 다 부정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정말 중요한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하며 내 중심에서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인가.

모든 일에서 열정과 의욕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지는 지금의 내 상황이 번아웃은 맞는 것 같다.


가족은 나에게 나의 모든 일에서 활력을 줄 수도 있고 나를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존재인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나에게는 가족들의 사랑과 가정에서의 행복한 기운이 절실하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상황을 나는 지금에서야 깨닫고 간절하게 희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있어도 가족이 늘 그립고 가족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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