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다소 충동적으로 조퇴한 후 용산으로 달려갔다. 사실 회사에서 좀... 먼데,그날만큼은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하고 싶었기에. <시대의 얼굴>은 언젠가는 볼 생각이었으니, 기왕이면 날 좋고 바람 좋은 이 날이 딱이지 싶었다.
1. 국중박 경내는 호젓하게 잘 꾸며 놓아서 전시가 아니라도 시간 흘려보내기 좋아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시간대별 입장인원을 제한하고 있고, 나는 이미 예약한 시간대에서 10분 정도 늦은 시점에 박물관에 도착했다(그렇다고 안 들여보내 주진 않았다). 일단은 지나칠 수밖에.
국립중앙박물관 경내
2. 영국 박물관 소장품을 가져온 만큼 영국 인물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역사책, 작품 해설, 작가 소개란 등에서 많이 봤던 그림들을 본다는 게 일차적 관심 요인이었다. 브론테 자매 초상화를 실물로? 봐야지!
2-1. 따라서 전시의 시작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다. 근데 바로 옆에 딜런 토머스를 배치해 뒀을 줄은? 옆에는 딜런 토머스의 유명한 시(<인터스텔라>에 나오기도 하는 시다)도 적혀 있다. 이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나란히 걸려 있는 전시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면 다이애나비, 비틀스, 케이트 모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셰익스피어가 애무래도 이 방에서 수백 살의 세대차를 극복하느라 고생깨나 했을 듯.)
3. 나란히 걸려 있는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 헨리 8세의 초상화가 홀바인 작품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건 아니고요... 성공회 창건이나 아내 여섯에 얽힌 이야기 등 여러 모로 유명한 왕이지만 이 전시에서는 곁의 딸에 비해 존재감이 빈약하다. 진주가 가득 박힌 드레스 위로 혈색, 주름, 음영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극도로 창백한 얼굴을 드러낸 엘리자베스의 초상에 비하면 헨리는 그녀의 가족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부록처럼 보인다.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의 질감 표현은 화려한 옷과 장신구에 집중되었다는 인상.
3-1. 헨리도 자신을 위엄 있고 훌륭하게 그리는 데 관심이 있었겠지만, 엘리자베스만큼은 아니었다. 헨리 8세는국교였던 가톨릭을 버리고 아내의 목을 여섯 번 치더라도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그가 목을 친 부인 앤 볼린의 외동딸, 엘리자베스의 경우는 달랐다. 먼저 왕위에 올랐던 언니 메리의 사례를 면밀히 관찰했던 걸까? 여자로서 왕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 엘리자베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존여비적 사회에서 남편의 존재가 거의 필연적으로 자신의 왕권을 위협한다는 것도(실제로 유럽사에는 직접 통치를 시도했으나 남편의 왕권 공유 요구로 골머리를 앓은 여왕이 없지 않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당대 사회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순결한 처녀'의 모습을 채택해 자신을 무장했고, 초상화는 이를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3-2. 그래서인지 기획 측은 엘리자베스 1세에 꽤 중점을 뒀다. 전시장 내 터치스크린에서도 엘리자베스에 대한 추가 설명을 제공하고, 월터 랠리 등 엘리자베스의 충신을 (각자 다른 전시실에) 둘이나 배치했다. 두 사람 모두 엘리자베스의 상징색인 흰색과 검은색을 입고 진주로 장식한 모습이다. 모두 처녀성과 관련이 있어 채택된 상징인데,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려다 보니 남자들도 같은 상징을 쓰게 된 아이러니.
에마 해밀턴
4. 조지 롬니가 그린 에마 해밀턴의 초상에 대해. 롬니가 그린 해밀턴의 여러 초상은 그녀가 미인으로 유명해지는 데 한몫했다... 고 어디선가 읽었던 듯하다. 전시에서도 소개하듯 해밀턴은 하층계급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나중에는 국왕의 친구였던 대귀족 가문 외교관 부인이자, 국민적 해군 영웅인 넬슨 제독의 애인이 되는 역동적 인생을 산 사람...으로 요약되곤 한다. 그러나 나폴리 대사 부인 시절 해밀턴은 남편 알렉산더 해밀턴 경이 수집한 고대 유물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 퍼포먼스 공연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이탈리아어로 정치, 외교, 군사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나폴리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나 넬슨의 통역으로도 활약했다. 퍼포먼스나 통역은 모두 기록으로 자세히 남기 힘든 종류의 전문성이다. 롬니의 초상화는 후대에 남는 것 못지않게 남겨지지 않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었던 마틴 파 사진집
5. 전시장 내에는 관련 도서를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런 것도 감안해 관람 시간을 넉넉히 잡으면 좋을 듯.
6. 오드리 헵번의 초상화...가 아닌 사진. 이 기이한 분위기가 뭐지? 싶어 설명을 읽어보니 헵번이 아직 뜨기 전에, '신선한 얼굴'(=대중이 모르는 얼굴)을 쓴 광고 사진으로 기획된 작품이라고. 그런데 이후 헵번이 유명해지면서 이 작품은 졸지에 초상화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는 건데... 사연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검색해 보니 가디언 기사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대지의 여신 같은 위치에 놓인 헵번을 통해 '그들(영화계 스타)은 우리와 다른 꿈같은 세계를 사는 존재라는 거의 종교적인 인식'을 표현했다고. 헵번의 경력을 보니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사진을 찍은 다음 해부터라서, 전시 측의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긴 한다. 근데 그럼... 초상화가... 아니지 않아? 혼란스럽다.
프레드릭 버너비
7. 인물보다는 그림 자체에 더 관심이 간 작품도 있었다. 프레드릭 버너비의 초상의 경우, 유럽 제국주의의 첨병 격 인물이었던 듯한 피사체에게 별다른 호감을 느낄 수 없었으나... 초상화 전시인 만큼 특성상 인물+단색 배경의 단순한 구도가 다수인 상황에서 비교적 '읽을거리'가 많은 그림이라는 점이 좋았다. 예를 들어 버너비의 왼손에 쥔 담배가 벽에 걸린 지도에서 인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 버너비의 얼굴과 꼰 다리가 좌측 상단에서 시작해 우측 하단으로 이어지는 대각선을 그리고, 그 붉은 줄의 강렬함이 낮은 채도의 꽃무늬 벽지나 흰 천 등이 만든 배경의 수평구도와 대비를 이루는 점. 그림 속 버너비는 얼핏 느슨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효과적인 구성을 하기 위해 화가가 많이 고민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의 지도>
8. 제일 좋았던 그림은 맨 마지막에 있었다. 그레이슨 페리의 <시간의 지도>. 이 그림 앞에 의자가 없어서 조금 유감이었다! 이 그림은 같은 공간에 놓인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초상'이다. 외형은 집어치우고(얼굴은 흔적도 없다), 대신 자신의 경험과 기억의 세계를 어리 시절 애독했던 아동용 판타지 문학 맨 앞장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지도로 그렸다. 지도의 형태인 만큼 한눈에 훑어보기 힘들다. 공감이 가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들을 찾아 보물 찾기처럼 구석구석 훑었다. 예를 들어 '가정(assumptions)'이라 적힌 건물은 반쯤 무너져 있고 그 옆에 '어쩌라고?(so what?)'라 적힌 작은 건물이 서 있는 모습. 폐관 시간이 아니었다면 더 열심히 뜯어봤을 텐데 , 아쉽다.
9. 한 바퀴 돌아 나오니 거울과 의자가 놓인 작은 포토존이 있었다. 전시에 가면 전시에 집중하자는 주의라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그래, 이런 게 하나 있을 만하지, 라고 동감. 납득.
10. 오후 6시의 박물관은 평온했다. 샌들 끈이 끊어지고 배가 고파 오면서 급히 자리를 떠야 했지만... 이후의 나는 피자를 먹고 평소엔 정말 정말 잘 안 먹던 와인도 딱 한 잔 마시며 즐겁게 금요일 저녁을 보냈다. 그럼 된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