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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다 Jan 14. 2022

후각 없는 삶 -  21일 차

코로나는 나았지만 후유증은 계속된다

저 꽃에선 향기가 날까? 나야 모르지...


나는 작년 크리스마스쯤에 후각을 잃었다. 정확히 기록해 놓지 않아서 '쯤'이라는 글자를 넣었다만 오차범위는 사실 겨우 하루다. 코로나19에 확진된 게 12월 22일 저녁이고, 24일에 어머니에게 보낸 카톡에 따르면 이때 후각이 약해졌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5일부터는 피로감이 꽤 강해 며칠간 잠만 잤다. 늦어도 26일 오전엔 후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던 게 확실하다.

나는 경증 환자였다. 약간의 콧물, 얼마간의 피로감,  미미한 인후통이 전부였다. 열이 나기는커녕 입에 넣는 체온계를 쓰는 요령이 없었던 탓에 자꾸 측정 결과가 34.×도로 나와서 한동안 애를 먹었다(실제보다 1~2도 정도 낮게 나왔던 듯하다). 따라서 재택치료도, 격리 해제도, 사무실 복귀도, 외출 재개도 모두 큰 문제는 없었다. 현재 내겐 아무런 증상도 없다. 그저 후각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뿐.

재택치료 당시 담당 간호사에 의하면 후각 상실은 치료제가 없다. 인터넷 검색에 의하면 후각이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가끔 장기화되거나 영구적 장애가 오는 사람도 있다. 21일이 의학적 관점에서 얼마나 긴 편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다. "아직도?" 그리고 열에 일곱 정도는 이 말을 한다. "음식 맛은 느껴져?" 그러면 나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답한다. "느껴지지."

정말이다. 1) 맛은 잘 느껴지고 2) 후각이 (거의) 없어도 살 만하다. 나는 소믈리에나 조향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원체 후각에 대한 의존도나 애정도가 낮았다. 일단 코의 성능 자체가 별로다. 코로나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201×년, 누군가의 생일 선물을 사러 조 말론 매장에 갔던 그 운명적인 날. 나는 시향한 향수 중 세 가지 정도에서 아무런 향도 맡지 못했다. 정말 아무 냄새가 안 났다. 향수인데. 향이. 안. 나. 이것도. 허얼. 내 코에 뭔가 문제 있나 봐...! 아, 그때 너무 놀라 버려서 현 상태를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그래서인지 나는 좋은 냄새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나쁜 냄새만 안 나면 그만이었다.


후각상실을 깨닫게 해준 파네토네와 버터향 나는 쿠키


물론 이제는 나쁜 냄새도 아주 약간 그립다. 몇 가지 음식의 맛은 더 그립다. 2021년 12월 24일에 먹었던 이탈리아식 크리스마스 빵인 파네토네는 지난 몇 년간 먹었던 그 풍미가 아니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향이 사라지면서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특유의 매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던 것이다. 지난주 주말에 먹었던 펌킨치즈케이크도 시나몬 향이 사라지면서 느낌이 조금... 변했다. 둘 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디저트인데. 아, 그리고 양치를 아무리 해도 예전만큼 상쾌하지 않다. 분명히 입 안이 깨끗하고 치아 표면이 매끈하건만 뭔가가 부족한 느낌. 치약에 향이 없으면 사람들이 이빨을 닦은 것 같다고 느끼지 않아서 제조사가 향을 꼭 첨가한다는 말이 진짜인가 싶다.


그러나 후각 상실에 대해 내가 진짜로 걱정되는 점은 단 하나, '위험 감지'다. 미국에서는 일가족이 한 명 빼고 모두 코로나에 걸려 후각이 상실되어 버렸는데 이후 밤에 불이 났을 때 그 한 명만 타는 냄새를 맡아 온 가족을 살린 사건이 있었다. 아니면 냄새로 상했는지를 감지해야 하는 음식인데 맡지 못해 식중독이 날 가능성 같은 것도 . 나는 주 3.5일 정도는 혼자 살기 때문에 꽤 심각한 문제다. 나머지 3.5일은... 후각이 살아 있는 식구가 둘이나 있고 말티즈만 아니었다면 탐지견 해도 됐겠다 싶게 냄새 맡기를 사랑하는 3살 강아지도 있으니까... 마멜이를 믿기로 한다. 아니 먹을 것 냄새라면 일단 달려드는 그거 말고... 하여간 믿는다...?


냄새는 당분간 네가 내 몫까지 맡아 둬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상태가 친할아버지의 청각 문제와 좀 비슷한 것 같다. 할아버지는 2~3년 전부터 귀가 본격적으로 어두워지셨는데 보청기를 하시면 어떻냐는 우리의 제안을 계속, 꾸준히, 완강하게 거절하고 계시다. 요즘에는 초인종 소리조차 못 들으시는데도 요지부동.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걸 후각으로 치환해 보면 김치통을 열어도 김치 냄새의 기억 같은 게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갈 뿐, 다음 순간이면 다시 무의 세계로 돌아가 버리는 내 코가 훨씬 더 심각하다. 그런데도 나는 별 불만이 없지 않은가. 아, 후각을 되찾으면 당연히 반갑고 기쁠 것이다. 괜히 꽃집에 들어간다든가 향 좋기로 유명한 핸드크림을 질러버릴 것 같다. 원두 봉지를 연 채로 깊은 숨을 들이마셔 보고도 싶고. 그렇지만 잃은 채로 살아가는 세계는 잃지 않았을 때의 공포가 그린 이미지와 다른 점도 많다. 이제는 생선을 조리한 후 환기 때문에 추워하지 않아도 늘 집 안이 쾌적하고(미세먼지 때문에 사실은 해야 함), 밀폐 공간에서 누군가가 가스를 배출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며, 양초를 연상시키는 아*느 무기자차 선크림의 냄새에서도 확실히 해방됐다. 혹 할아버지도 이런 맛에 보청기를 안 끼시려는 걸까?리의 부재도 제법 쾌적하게 느껴질 때가 많긴 하지. 마음은 이해했습니다만, 그래도 문은 제때 열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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