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허브가 된 과정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혁신 기술과 글로벌 트렌드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국제 전시회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접적이고 생동감 있게 반영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2025년 상반기, 독일은 전시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다시금 공고히 할 국제 전시회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러나 이 전시회의 본질적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럽과 독일에서 전시 문화가 어떻게 기원하고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독일의 전시 산업은 오늘날 세계적 지형 속에서 어떠한 위상을 점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국제 박람회는 국가별 최신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국제 박람회 기구(BIE: 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가 정의한 ‛국제 박람회’의 의미를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깊은 목적과 철학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 박람회(공식 명칭: 국제등록박람회)는 전 세계 국가들이 집결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며, 하나의 보편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글로벌 축제이다.”
(출처: bie-paris.org)
주지하듯, 국제 전시회에서 각국은 독창적인 전시관을 통해 첨단 과학기술과 문화적 다양성을 창의적으로 선보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탐구하며 사회적 담론을 촉진하는 장(場)을 마련한다. 이렇게 조성된 공간에서는 과학, 기술,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주제를 바탕으로 국가 간 협력과 소통이 이루어진다. 방문객들은 기술적 진보를 직접 체감하는 것은 물론, 각국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며 상호 존중과 글로벌 연대의 가치를 배운다. 결과적으로 국제 박람회는 단순한 ‛전시’와 ‛관람’이라는 범주를 넘어, 교육적·문화적 성취를 이루고, 인류가 공유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세계적 협력과 미래 설계의 무대’라고도 할 수 있는 국제 박람회는 과연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초창기 박람회의 형태: 종교와 상업의 융합
사실 박람회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발전해 온 중요한 사회적·경제적 현상이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박람회는 종교적 의례나 축제와 긴밀히 연결된 형태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적인 행사가 열릴 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고, 상인들은 이 기회를 활용해 행사가 진행되는 인근 지역에서 물건을 거래하며 상업 활동을 전개했다. 초기 박람회의 형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종교적 활동과 지역 공동체의 교류가 결합된 독특한 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어의 ‟Messe”가 ‛미사’를 뜻하는 라틴어 ‟Missa”에서, 영어의 “fair”가 ‘축일(祝日)’을 의미하는 라틴어 ‟feria”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박람회라는 용어의 어원이 종교적 의례와 축제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종교적 기원에서 출발한 박람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적인 행사에서 독립하여 상업과 교역의 장으로 변모했다. 초기 ‘시장’의 기능을 계승하면서도 기술, 산업, 문화의 발전을 전시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확대되며 현대적인 박람회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런던 수정궁에서 열린 첫 국제 박람회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of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는 세계 최초의 국제 박람회로, 근대 박람회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당시 영국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중심에 서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었다. 증기기관, 직조기계, 철도 등 혁신적인 발명품들은 영국을 수공업 중심 경제에서 대규모 기계화 산업 경제로 탈바꿈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산업적 성취를 전 세계에 과시하고, 동시에 기술과 문화를 교류하며 국제적 협력을 도모하려는 열망이 이 박람회를 개최한 주요 배경이 되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만국박람회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건축물이었던 ‘수정궁(Crystal Palace)’에서 5개월 반 동안 진행되었으며, 약 603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며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대규모 행사는 산업혁명의 성과와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을 한데 모은 역사적 이벤트로 기록되었다. 런던 만국박람회의 이러한 대성공은 세계 각국에서 국제 전시회를 개최하려는 흐름을 촉진시켰으며, 이후 국제 박람회는 각국의 기술적 성과와 산업적 발전상을 공유하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상업 요충지, 독일 박람회의 시작
독일은 유럽 중앙부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박람회 산업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특히 라이프치히와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북부와 남부,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로서 중세 유럽에서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들 도시는 뛰어난 교통 편의성과 전략적 위치 덕분에 물자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거점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상품 보관과 거래를 위한 창고와 시장이 발달하며 상업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귀족들은 부족한 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박람회 개최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는데, 이는 박람회를 통해 관세와 세금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박람회는 상품의 이동과 판매를 활성화시켜 지역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과 통행료가 귀족과 제국의 재정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라이프치히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2세기부터 상업적 지역 박람회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독일 전시 산업의 시작과 재도약
독일의 첫 국제 박람회는 1854년 뮌헨 유리궁전(Glaspalast)에서 열린 ‛독일 주요 산업 박람회(Allgemeine Deutsche Industrieausstellung)’로, 이는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 이후 유럽 각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제 박람회 개최 흐름에 동참한 행사였다. 전시회에서는 기계 공학, 철도 기술, 화학 기술, 섬유 제조업 등 당대 첨단 기술과 함께 독일 전통 공예품과 현대적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또한 농업 기술과 관련된 기계 및 독일 경제 각 부문에서 개발된 다양한 발명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규모 면에서는 런던 만국박람회에 미치지 못했지만, 독일은 이를 통해 자국의 기술적 발전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를 얻었다.
이 ‛독일 주요 산업 박람회’를 계기로 독일 전시 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듯했으나, 20세기 초반 나치 정권의 집권과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많은 전시장이 파괴되고 산업 자체가 침체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종전 직후 독일 정부는 전시 산업을 경제 재건의 핵심 요소로 보고, 파괴된 전시장을 복구하고 국제 박람회를 다시 유치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1949년에 설립된 ‘독일 연방전시 산업진흥회(AUMA: Ausstellungs- und Messe-Ausschuss der Deutschen Wirschaft e.V)’는 독일 전시 산업의 재도약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기관은 전시회의 품질 표준을 확립하고, 산업계와 공공 부문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관리·분석하며,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해 독일 전시 산업의 부흥을 견인했다.
AUMA 웹사이트에서는 독일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한 일정, 참가 정보, 산업 통계 등 다양한 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https://www.auma.de/en
전시 산업의 중심, 독일: 규모와 성과로 본 위상
현재 독일은 매년 약 160-180개의 국제 및 국내 전시회를 개최하며 전시 산업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하노버, 프랑크푸르트, 쾰른, 뒤셀도르프 전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시장 중 상위 10위 안에 포함되며, 이들 홀 규모(아웃도어 제외)는 서울 코엑스 전시장의 A, B, C, D 홀을 모두 합친 면적(36,000m²)의 약 7배에서 최대 11배에 이를 정도로 압도적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 전시회의 주최사들의 연 매출 또한 세계적인 수준으로, 주요 주최사 15곳 중 7곳(3위: 프랑크푸르트, 5위: 뮌헨, 6위: 쾰른, 9위: 뒤셀도르프, 10위: 하노버, 13위: 베를린, 14위: 뉘른베르크)이 독일에 위치해 있다. 가령, 프랑크푸르트 전시장은 2019년 한 해에만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당시 약 400개의 박람회를 개최하고 10만 명 이상의 전시 참가자와 5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유치한 결과이다. 이러한 성과는 독일이 글로벌 박람회 산업에서 선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독일의 전시 산업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2020년에 독일 전시회 참가 업체 수가 전년 대비 약 76%가 감소하고 방문객 수는 78% 이상 줄어드는 등 전례 없는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독일은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기술과 하이브리드 전시 형태를 도입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팬데믹 이후 변화된 환경에 신속히 적응했다. 특히 독일 주요 전시회들은 2022년부터 정상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 주요 전시장은 팬데믹 이전 수준의 매출과 참관객 수를 거의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점은 독일 전시 산업의 탄탄한 기반과 끊임없는 혁신적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유럽 박람회의 기원부터 독일의 박람회 역사와 현재의 위상까지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박람회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기술과 산업의 교류를 촉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왔다. 특히 독일은 박람회 산업의 중심에서, 글로벌 협력과 혁신의 장을 선도하며 세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는 단순한 산업 행사를 넘어, 전 세계가 연결되고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장으로서 박람회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독일에서 열릴 국제 전시회들은 앞으로의 산업 트렌드와 비전을 확인할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