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과 피로도 풀지 못한 채,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버지니아 비치로 향했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친구네 가족여행에 내가 합류를 한 셈. 뉴저지에서 차로 6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니 도착한 이곳은 평화롭고 한적했다. 그리고 아시안 인종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환하게 반기며 맞아주던 집주인은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우리들의 방을 배정해주었다.
집주인의 딸 방에서 3일간 머물게 된 나. 방주인은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는데 방은 우리집 거실만큼이나 컸다. 룸 안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다락방까지 있었으니 혼자만의 공간뿐 아니라 숨기 좋은 공간까지 갖고 있는 것이었다. 짐을 풀곤 아래층으로 내려와 찬찬히 집을 둘러보니, 제법 큰 규모의 야외 수영장과 바비큐 시설(심지어 이건 호주에 갔을 때 공원마다 설치되어 있던 그것과 같아 놀라웠음), 트램폴린, 그네, 바, 테라스 등이 눈에 들어왔다. 레저를 위한 것으로는 지프 차와 사막을 달리는 사륜 구동차, 제트스키, 자전거, 농구대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과연 심심할 틈이 있을까 싶어 놀라웠다.
다음날은 집주인의 보트를 타고 버지니아 비치를 둘러보았다. 보통의 투어였다면 약속된 투어의 시작과 끝 시간에 맞춰 모든 것을 준비했을텐데 개인 보트이다보니 말그대로 마음대로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었다. 여유롭게 비치를 즐기면서 그곳에서 여가를 즐기던 사람들을 보니 저 세상 사람들 같았다. 보트를 타고 돌다가 배가 고파질 즈음이 되니 집주인은 작은 항구 같은 곳에 배를 세웠다. 그리곤 바로 음식점의 일하는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배로 오더니 음식 주문을 받았다. 이 동네에선 다들 개인 소유의 보트를 타고 다니는 것이다 보니, 이렇게 보트투어를 가도 굳이 음식까지는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배를 타고 달리다가 배가 고프면 바다 한복판의 음식점에서 주문을 해서 먹으면 되는 시스템. 아… 이렇게도 완벽하게 놀 수 있다니! 다시한번 문화적 충격을 살짝 받곤, 주문했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시 ‘그들만의 세상’을 즐겼다.
생각이 많아 머리가 아팠던 데다가 여독이 그대로 있는 상태여서 몹시 피곤했는데, 보트놀이 후 깊은 잠에 빠져 시차 적응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넓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과 각양각색의 인생이 있겠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탐험은 나를 다시한번 들뜨게 해주었다.
정신없이 즐거웠지만 사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새벽 5시에 혼자 동네를 산책한 것. 드문드문 집이 한 채씩 있고 거대한 나무로 가득 찬 길을 걷는 것은 마치 국립공원 내의 리조트와 그 주변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나가다 부딪치는 사람, 차 하나 없었고, 오직 귓가에 들리는 건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 소리. 그리고 운 좋게도 그 타이밍에 떠오르던 해를 보았던 것. 난 사실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좋았고, 행복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아 이번 여행은 어째 시작부터 진 것 같은 강렬한 예감. 하지만 계속 이어 가련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나를 더욱 단단히 다독여 줄 테니까! 그리고 나는 이것을 잘 즐기는 것으로 충분히 그 가치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