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가 희소해진 세상

내 동생이 애엄마라니...

by 볼트앤너트

'반려견이라고 부르세요! 애완견이 아닙니다!' 라는 슬로건이 한창 언급되기 시작할 즈음, 아파트 곳곳에는 강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강아지는 절대 안돼!' '강아지 데려오면 버려버릴거야.'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할머니가 80대가 되어버리셨고, 동생은 대학교 시절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뒤늦게 가출이란 걸 하게되면서 우리 집에는 손바닥만한 강아지가 들어왔다.

아빠는 엄마가 강아지에게 "엄마한테 와~^^!" 하는 걸 보고, "언제부터 자기가 강아지였어? 자기 강아지 낳았어? 왜 자기가 엄마야?" 라고 비꼬셨다.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강아지에게 누구보다도 먼저 "아빠한테 와! 아빠한테 오라니까?!" 라고 외치신다.


3년이 흐르고, 엄마와 나는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게 될 거라고 짐작을 못했다.'며 산책하고 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유모차 안에는 아기가 아니라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이제 반려인 1500만명이 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엄마는 당시에 우스개 소리로, 나중에 몇 년 뒤에는 다 유모차에 강아지만 타고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웃으며 넘기셨지만, 이제는 정말 웃긴 소재가 아니라 진지한 미래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아이를 낳으면서 내 인생 방년 7살, 7살 주제에 갓난 아기었던 사촌 동생을 돌보았던 이후 처음으로 아기를 품에 안아보았다. 보러 가기 전에도 엄청난 감격이나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주위에 선배들 중에는 간혹 아이를 낳고 지내는 경우도 꽤 있어서 사실 내 아기가 아닌 남의 아기에 대해서는 좀 시큰둥한 편이었던 것 같다.


아기를 보러 간다고 말하고 찾아갔지만 사실 동생의 몸 상태가 더 걱정이 되어서 오히려 아기보다도 동생과 한참을 떠들었다. 만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아기를 보러갔다. 동생이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 아기는 눈을 감고 밥을 먹었다. 동생이 아기에게 수유하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아 언니! 나 연애 할 수 있을까? ㅠㅠㅠ 나 20대 후반까지 모쏠인데... 그냥 불가능할 듯.. '

'언니! 나 이력서 쓸 건데 좀 봐줘!'

'언니, 학교에서 친구가! ~ '

'언니 !. '

...

고등학생 모습으로 나를 부르던 동생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벌써 동생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생이 엄마가 될 거라고 짐작을 못했다.

동생은 결혼 전에도 항상 '나는 절대 결혼 안할 거야!' '나는 절대 애는 안낳을거야!' 라고 못에 박히게 이야기를 하는 친구였다. 엄마는 '항상 그런 말하는 애가 제일 먼저 애 낳더라.' 라고 비웃었고, 동생은 그 말에 항상 '진짜라니까!!!'를 외쳤다.


그런 동생의 아기라니...

나는 아기한테 아직도 '이모라고 불러~!' 라는 말이 잘 안나온다. '누나는~' 이라고 부르게 된다. 나이 차이로 보면 아들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데, 내 정신연령도 아직 그정도인가보다.


아기의 손과 발 등을 관찰하면서 운동 능력은 어떤지를 살폈다. 아기의 다리는 아직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발가락이 동그란 것이 개구리의 모습 같았다. 다리를 뻗게끔 주물러주니, 남자 아이라 그런지, 벌써 다리에 근육이 붙으며 힘이 생긴 것이 느껴졌다. 손바닥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주면 반사 신경 탓에 손을 꼭 쥐려고 하였다. 떠지지 않는 눈을 떠서는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려 하는 것 같았다.


아기는 정말로 먹고, 싸고, 자고를 반복하며 엄마 뱃 속에 있던 습관 그대로를 가지고 세상 밖에 나와 점차 적응해나가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아기는 다른 사람들 품에 있을 때는 정말 얌전하게 잘 자고 순하게 안겨 있었지만, 엄마 품에 안겨있을 때는 엄마한테 눈으로 엄청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하게도 내 눈에는 아기가 엄마한테 꼭 반말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엄마! 배고파!'

아기가 입을 뻐끔거리며 가슴 근처로 입을 가져다데려고 했다.


동생이 '조금만 참자~.' 라고 하며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아기가 으앙~! 하고 울음을 살짝 터뜨렸는데, 밥 먹자라고 말하며 안아올리니 귀신같이 울음을 멈췄다.


맞다. 얘는 이미 울음을 통해 말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아기를 멀찍이 바라보며, '갓 태어났을 때는 얘가 자꾸 막 모유 먹으려고 울고 빠끔거리고 찾고 하는데 살아 남으려고 하는 그 생명력이 느껴져서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앞집 아주머니도 문을 열어놓고 우리가 놀러가면 아기와 놀 수 있게 해주셨다. 그때는 집집마다 아기가 참 많아서, 아기를 돌보는 게 낯설지 않았는데 이제는 소아과에 찾아가거나 아기들이 모여있는 곳을 가는 게 아닌 이상 아기를 보는 게 흔치 않은 일이 되었다.


아기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산다는 건, 인간이 본래 갖고 태어난 생명력을 느끼는 일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 사는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간혹 나도 엄마의 배를 빌려서 잠시 세상을 거쳐가는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는 걸 망각하는 것 같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끼는 건 아이들의 에너지와 가능성, 그 생명력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력이 강하다는 거였다. 아기를 바라보며 숭고함까지는 아니어도 똥을 잘 싸고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서 아기가 갖고 태어난 고유의 성격이 건강하게 잘 발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가 몇 개월 지나 낯가리며 인사를 건넬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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