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취하다
위스키와 클래식 음악(줄여서 “클래식”)은 중독성과 마니아 층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둘은 우리의 감정을 고무시키기도 하고 그런 감정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술과 음악이 함께할 때 우리는 상대와 긴장을 풀고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
아마도 술과 음악이 우리 마음속 진실의 문을 두드려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독재자는 부하에게 술을 먹여 마음을 떠보기도 하고, 어떤 음악가들은 베를린 장벽이나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Ramallah) 등 진실과 화해가 필요한 장소를 찾아 음악회를 갖기도 한다.
위스키와 클래식은 술과 음악의 한 종류로써 격식과 예의가 필요한 자리를 더욱 빛내준다.
물론 중용의 미덕을 지킨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술과 음악은 미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슷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위스키와 클래식은 르네상스시대(14~ 16C)를 기점으로 그 모습을 확고히 드러내기 시작하여 바로크 시대(17~18C)부터는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이후 중흥기를 보내고 있다는 시대적 공통점이 있다.
학자들은 세계최초의 위스키가 탄생한 시점을 12C초로 보고 있지만 세계최초 증류소에 관한 서면기록은 르네상스시기 아일랜드이다.
클래식 음악도 인쇄기술과 악보 기보법 등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이 르네상스시기 위스키와 클래식음악은 각각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 이후 서로 이웃 지역인 스코틀랜드와 중부유럽(독일, 오스트리아)에서 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또 다른 둘의 비슷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위스키와 클래식, 뭔가 안 어울릴듯하면서도 은근히 비슷한 점을 찾아낼 수 있는 둘 사이의 공통점을 탐험해 보자.
위스키와 클래식은 모두 그 어원이 고대로부터 유래하고 있다.
이는 술과 음악이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 함께하고 있었음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위스키의 어원은 고대 켈트(Celt) 어족인 게일어의 우스게 바하(Uisge Beatha)에서 유래되었다.
우스게 바하(Uisge Beatha)는 라틴어 아쿠아 비떼 (Aqua Vitae)를 고대 게일어(Gaelic)로 번역한 것으로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다.
아쿠아 비떼는 초기에 에탄올 농축액(일반적으로 와인을 증류시켰음)을 뜻하였으며, 정류되지 않은 약한 에탄올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다가 이후 모든 알코올 증류주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
14세기 연금술사에 의해 발견된 에탄올 즉 넓은 의미의 (에틸) 알코올은 당시 불멸과 생명을 주는 물질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감염에 취약했던 시대에 불을 쉽게 붙일 수 있었고 해열과 강장 그리고 소화, 소독, 마취 등 다양한 역할로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부터 위스키를 생산하던 지역에서는 이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소개하고 있다.
아기가 이가 날 무렵에 통증이 있는데 이때 손가락으로 아기 잇몸에 위스키를 발라주면 울음을 그치고 어머니는 그 위스키를 마시며 함께 즐거워했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아쿠아 비떼에서 게일어로 번역된 우스게 바흐는 우스게 베이야(Usque baugh)로, 이후 우스키(Usky)로 불리었다. 그리고 18세기말부터는 현재의 위스키로 불리게 되었다.
위스키는 발음은 같지만 지역에 따라 철자를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보통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스카치위스키라고 하는데 이때 위스키를 “WHISKY”라고 쓴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는 “WHISKEY”로 철자를 살짝 바꾸어 쓴다. 이는 아일랜드인들이 원래 위스키의 시작은 자신들인데 마치 스코틀랜드가 위스키의 고향처럼 인식된 것에 대한 반발심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클래식이란 단어 또한 그 어원을 라틴어 클라시스(Classis)에서 찾을 수 있다.
클라시스는 로마 왕정시절 상류층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최상급에 속하다"라는 뜻으로도 불리다가 이후 군대의 징집 또는 함대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했다.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현대와 같이 쓰이게 된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부터라고 봐야 할 듯하다.
르네상스의 예술이 부흥하던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에서 클래식은 '공식적인 규범' 또는 '우수성'에 대한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현대적 의미의 고전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클래식은 폼페이의 유적들이 발굴되면서 미(美)의 기준이 그리스 로마시대의 예술 작품과 저술, 옛 의식(儀式)과 법식(法式) 등 포괄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다. 즉 옛 것에 관한 아름다움, 그것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클래식이 쓰이게 된 것이다.
클래식이라는 용어가 음악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 이다.
제일 처음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나라는 18세기 영국이다.
이는 역사와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당시 영국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명예혁명과 잉글랜드연방의 해체로 궁정음악가의 지위가 불안정하게 되었다.
이후 음악가들은 왕과 귀족에 복속되어 주어진 행사음악만 하기보다는 사회로 나와 공공연주회를 자주 갖게 되었고 시민과 부르주아 계층에게 음악은 격조 있고 기품 있는 고전 고대의 예술을 나타내는 클래식과 동일시된 것이다. 이후 서양 고전음악은 클래식(Classical Music)이라는 용어로 19세기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위스키와 클래식은 모두 고대로부터 그 어원의 유래를 찾을 수 있으며 18세기 이후부터 용어의 뜻과 명칭이 확고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영국(UK)이라는 나라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웨일스 등을 포함한 연방국가라고 본다면 위스키와 클래식의 어원은 서로 지역적 공통분모 또한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음악과 술이 함께할 때 우리는 이성적이기보다 더욱 감성적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을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이 둘은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다는 특성이 있지만 우리의 뇌를 환각과 환청 속에 빠뜨릴 위험성 또한 있다. 그래서 취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진 술과 음악에게는 냉철한 정신과 조화로운 마음이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스피릿(spirit)은 일반적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영혼, 정신, 마음 등을 뜻한다.
스피릿은 종교적으로 쓰일 때는 “영혼”의 의미가 강하고 철학적으로 쓰일 때는 “정신”으로 번역되곤 한다. 또한 위스키를 만들 때 쓰이는 증류 원액인 40도 이상의 에탄올 또한 스피릿 이라고도 한다. 사실 위스키뿐만 아니라 소주, 보드카, 럼 등 모든 증류주는 스피릿의 한 종류이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스피릿은 중요한 요소이다.
역사적으로 클래식음악은 종교와 철학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클래식이 종교의식과 함께 발전해 온 사실은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및 교회 칸타타와 오라토리오, 레퀴엠 등 헤아릴 수 없는 증거들로 가득하다.
또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세계관이 이동하는 시기, 음악은 사상과 철학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악성(樂聖) 베토벤의 음악은 작품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상과 철학을 통해 그의 무한한 정신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이렇듯 철학과 종교가 스며든 클래식 음악에서 스피릿은 정신과 영혼을 뜻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스피릿은 위스키와 클래식에 과연 어떤 의미로 작용되는 것일까?
먼저 위스키에서 스피릿은 아직 위스키로 탄생되기 전 순수하게 증류된 알코올이다. 이 알코올(스피릿)을 오크통에 숙성시키면 위스키가 되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위스키가 나오기까지는 여러 복잡한 과정들과 장인들의 수고가 들어간다. 먼저 보리를 싹 틔워 원재료인 맥아를 제조하고 건조와 제분, 담금과 당화를 한다. 이후 이를 발효시켜 워시(WASH)라 부르는 낮은 도수의 발효액을 만드는데, 이것을 여러 번 증류하여 얻은 원액이 바로 스피릿인 것이다.
물론 증류액 자르기(Sprit cut)등 중간중간 여러 장인들의 다양하고 섬세한 과정들이 숨어있다.
마지막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의 손에 의해 위스키가 탄생되기 전까지 지난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스피릿은 어찌 보면 위스키의 정수(精髓)와도 같다.
한편 음악이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언어적 도구라는 것은 비단 음악가뿐만이 아니라 여러 철학자들로부터 많이 언급되었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라고 했다. 또한 “작곡가는 이 세상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을 보여주고, 이성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가장 깊이 있는 지혜를 드러낸다”라고 말하였다.
철학자 니체 또한 음악이 없다면 잘못된 인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음악이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자아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더 높은 존재 상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라고 했다. 즉 음악은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음악의 본질이 그 정신(Spirit)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꽤 뚫어 본 것이다.
위스키와 클래식에게 스피릿이란 무엇일까?
스피릿은 위스키에게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나온 "원액", 클래식에는 음악의 "정신과 영혼"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것에 대한 본질이라는 측면에서 위스키와 클래식은 스피릿이라는 "정수(精髓)"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술과 음악에는 많은 명언들이 있다. 먼저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술은 마음을 털어놓게 한다. 이리하여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즉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 그리고 세계적 지휘자 바렌보임은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연결시켜준다”라고 말하였다. 결국 우리는 본질, 즉 위스키와 클래식의 스피릿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깊은 공감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아름다운 매개체라 할 수 있겠다.
클래식과 위스키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개인적인 취향으로 골라보았다.
먼저 우디알렌 감독의 영화 "맨해튼"의 OST를 추천드린다. 거슈윈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뉴욕필과 주빈메타의 지휘로 녹음한 멋진 앨범이다.
베를린필의 12명의 첼리스트가 녹음한 Moonnight Serenade 도 아름답다. ROUND MIDNIGHT앨범에 실려있는 곡으로 유명한 빅밴드의 리더 글렌 밀러가 작곡한 작품을 편곡하였다.
술과 고독을 즐긴 프란츠 슈베르트의 바이올린소나타 Op.574번도 추천드린다. 이사벨라 파우스트의 바이올린 연주가 섬세하다.
피아졸라의 "천사 협주곡(Concierto del Angel)" 중 하나인 "천사의 밀롱가(Milonga del Angel)"도 혼자서 조용히 취하기 좋은 음악이다.
재즈 아티스트 트롬본의 대가 커티스 풀러(Curtis Fuller)의 59년 명작 "Blues-ette"앨범에 실린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도 클래식은 아니지만 함께 추천드리겠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 니콜라이 카스푸틴(Nikolai Kapustin)의 8개의 에튀드 작품도 함께 즐기시길 바라겠다.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마크-앙드레 아믈랭(Marc-André Hamelin) 연주앨범이 인상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0hP9xmnUH0&list=OLAK5uy_mUGixV2MFr6p7su_mq8RK3el46ULgXXwU&index=14
https://www.youtube.com/watch?v=3Yx-QRNI21M&list=OLAK5uy_n7ho8lw1ekG1_D4Tf0HpxF9tJJffEgFBk&index=6
https://www.youtube.com/watch?v=EYxkzjEK1ko
https://www.youtube.com/watch?v=c7Fgh0b-2_g
https://www.youtube.com/watch?v=wU5pp45mI6Q
https://www.youtube.com/watch?v=vJDKuQHSq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