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위대한 관계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986년 봄, 6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는 자신의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슈만(R.Schumann)의 트로이메라이(Traumerei)를 연주하였다. 이 곡을 듣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청중들 중 몇 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모스크바 공연실황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으며 이후 호로비츠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호로비츠와 같이 러시아계 유태인출신이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추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그림은 추상적 화풍을 띄고 있지만 로스코 자신은 추상화가로 불리기를 거부하였다.
미국의 한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흥미로운 설문을 진행하였는데, “미술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 중 70퍼센트가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마크 로스코이다.
슈만의 음악과 로스코의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오묘하게 움직이는 매력이 있다.
단순한 눈요기와 귀 호강으로 끝나는 표면적 감각이 아닌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다. 그들의 음악과 회화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서로 비슷한 공통점, 그것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우리 인간행동의 90퍼센트는 무의식이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꽤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무의식적 욕구는 예술가가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 중 하나이다.
슈만과 로스코는 정형화된 소통방식에서 벗어나 감정의 표출을 통한 직접적인 방식으로 관객과 교류하는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슈만은 고전에서 낭만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태어나서 낭만주의 대표적인 음악가가 된 인물이다.
고전주의는 정형화된 형식과 질서, 균형, 조화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인간의 지성과 이성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낭만주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불확실성이 가득한 자연과 개인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감성적이고 내면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세기초 클래식음악은 시대적 요구와 슈만 개인이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이 맞물리며 낭만주의를 꽃피우게 된다.
화가 로스코의 시대적 상황은 슈만과는 다르지만 점점 복잡해지며 기교적으로 돼 가는 기존 현대미술의 소통방식에 그는 회의를 가졌다.
점, 선, 면을 통한 이성적인 접근방식이 아닌 삭면을 이용하여 관객과 직접적이며 무의식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관객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형적 색상과 무의식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호한 이미지, 그리고 커다란 크기와 감상 공간이 불러오는 영적인 느낌은 칼 융이 말하고 있는 인간 무의식의 집단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자신의 작품과 관객 사이에 형식적인 방해물을 없애고자 시도한 점은 슈만과 로스코의 공통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성보다 감성, 의식적 사고에서 무의식으로의 접근이 그들의 소통 방식이라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도구로 사용한 예술적 언어는 무엇일까?
슈만 음악의 언어는 그의 문학적 감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로스코의 언어는 극도로 명료화되고 단순화된 색채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먼저 슈만의 예술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알아야 할 듯하다.
슈만의 아버지는 서점을 운영하며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종종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영국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등 유명시인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을 하였다.
열 살이 조금 넘은 어린 나이의 슈만도 아버지 일을 도와 출판교정을 보거나 일부 항목의 집필을 하는 등 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슈만은 15살에 자서전과 10대 후반 “시와 음악의 밀접성에 대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그가 가진 문학적 소양은 이런 가정환경과 아버지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인을 꿈꾸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뮌헨에서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를 만나게 되는데 후에 그의 시집 중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 “시인의 사랑(Dichterliebe)”등은 슈만의 가곡으로 재탄생되었다.
특히 시와 음악의 결합이라 볼 수 있는 가곡은 슈만이 클라라와 결혼하던 해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내었는데, 혹자들은 이 시기를 슈만의 음악 생애 중 ‘가곡의 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이후 슈만의 음악에서 문학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로스코의 예술적 언어 또한 그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과 관련이 있다.
당시 미술계를 양분하던 피카소(Pablo Picasso)의 입체파와 마티스(Henri Matisse)의 야수파는 다양한 미술적 실험을 통하여 여러 사조들을 낳았는데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으로 대표되는 다다이즘(dadaism)이나 추상주의도 그들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반 이성, 반도덕, 반 예술을 표방한 예술사조인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는 로스코를 자신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초창기 그의 작품을 보면 초현실주의 영향도 느껴진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들을 표현하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모색하던 그에게 “색상 덩어리”라는 도구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그림 속 크고 모호한 경계의 색 덩어리들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서로 관계를 만들며 거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를 도와준 어시스턴트들은 그가 색상의 명료함과 단순함, 뉘앙스의 표현을 위해 0.1m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색 덩어리의 조합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언어이자 키(key)라 볼 수 있다.
슈만과 로스코의 예술작품은 우리에게 직접적이며 감성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들의 예술적 언어는 이성적이며 수 없이 많은 지적 도전 끝에 태어난 결과물인 것이다.
드라마의 어원은 “행동하다”라는 뜻으로 미메시스(mimesis) 즉 인간행위의 모방을 통한 서사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극(劇)으로 정의된다.
드라마의 서사적 스토리는 슈만과 로스코 예술세계에 빠질 수 없는 정수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슈만은 비단 그의 가곡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그의 표제음악들은 청자로 하여금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데 심포니 1번“봄”을 포함하여 초기 피아노 연곡”카니발(Carnaval)”,“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나비(Papillon)”, “다비드 동맹 춤곡(Davidsbündlertänze)”등 모두 문학적 이야기가 있는 작품들이다.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지 않지만 “어린이 정경(Kinderszenen)”또한 그의 문학적 재능이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어린이 정경” 중 “미지의 나라에서 (Von fremden Ländern und Menschen)”는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프만, 괴테, 하이네 등 독일 낭만주의 문학에 깊이 연결돼 있는 슈만의 음악은 서사적이며 강한 드라마적 요소 내포하고 있는데,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내면적 갈등과 불안, 광기 등이 고스란히 음악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화가 로스코 역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품 속 자신의 스토리를 잘 풀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강렬한 감정과 드라마적인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드라마틱했던 인생처럼 그는 자신의 작품을 종종 “드라마”라고 언급하였다.
그림 안의 형태들을 “연기자”라고 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에 시간성을 부여하여 관객들의 자발적 몰두를 유도하였다. 그 안에서 나타나는 비극, 황홀, 숙명, 파멸과 같은 원초적 감정을 활용하여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그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넓은 색면을 층층이 쌓아 올려 색과 색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단순해 보이는 이 미묘한 경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감정의 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크기가 가로가 2~3m 이상으로 매우 큰 편이다. 이런 압도감을 주는 캔버스 크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거대한 색상에 둘러 쌓여 영적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는 극적인 무대연출과도 비슷한 방식으로 관객을 관찰자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바꿔 드라마적인 요소를 연출해주고 있다.
두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 삶에서 정신적 분열, 혹은 우울증은 슈만의 음악과 로스코의 회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로 볼 수 있다.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던 슈만은 유작이 된 “유령변주곡(Geistervariationen)”을 작곡한 후 스스로 라인강에 투신하였다. 다행히 구조된 슈만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아내 클라라와 제자 브람스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지만 2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우울증과 항우울제 중독을 앓고 있었던 로스코 역시 빨간 피로 물든듯한 유작을 남기고 자신의 작업실에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하였다. 내면의 세계를 찾아 여행하던 그들의 삶에서 예술은 극복하고자 했고 위로하고자 했던 자신 이었을 것이다.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던 로스코는 인간실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자 하였다.
“실존과 위로” 두 예술가를 설명하는 단어이지 않을까? 로스코는 말한다”침묵은 그만큼 정확한 것이다”라고. 침묵하며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 한 인간의 고통과 고뇌,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작품을 통해 받았던 위로를 우리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슈만의 피아노 소집은 개인적으로 브렌델(Alfred Brendel), 마리 좋아 피레즈 (Maria João Pires),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를 들어보시길 권하겠다.
피아노 협주곡은 크리스티안 짐머만(Krystian Zimerman)의 정교하고 서정적인 연주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의 드라마틱하고 열정적인 연주 또한 훌륭하다.
“시인의 사랑(Dichterliebe)”등 가곡집은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와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의 목소리로 들어보시길 추천드리겠다.
슈만 교향곡은 번스타인(L.Bernstein)과 빈 필하모닉의 조합을 추천드린다.
원전악기로 구성된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Orchestre Revolutionnaire et Romantique)와 가디너(Sir John Eliot Gardine)의 지휘 또한 신선한 느낌을 주며, 아바도(C.Abbado)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섬세한 하모니를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3fhKaAX5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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