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장면을 읽고
주말에는 쉬어가는 날로 따로 포스팅하지 않았다.
5일, 6일째 되어가는 날에는 책을 읽었으나 글은 올리지 않았으니
7일째로 이번 주의 포스팅을 시작한다.
이제야 말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밀리 오리지널 종이책 구독을 해놨었다. 김엄지 작가님의 <겨울장면> 또한 종이책 구독으로 우리집까지 오게 된 소설책인데, 이번에 한 달 독서를 시작하며 못 읽었던 이 책을 드디어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나눠서 읽을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전부 읽었다.
맨 뒤에 있는 에세이는 아직 읽지 않았다. 아마 내일, 마저 읽어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은 'R'이다. 'R'은 8개월 전에 5m 밑의 바닥으로 추락하는 추락사고 이후로 기억이 두루뭉술하고 애매하다. 결국 떠오르는 건 부분부분, 그마저도 명확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다. 책에서는 총 30여 개의 장면들이 나온다. 모두 겨울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시점은 뒤죽박죽이고, 'R' 또한 떠오르는 장면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R'의 희끗희끗한 장면 속에 나오는 사람들. 직장 동료였던 'L', 목 뒤에 점이 있던 'R의 아내', 중국집에서 손톱을 깎고 고명 삼아 먹어보라 했던 '무례한 직장 상사'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없다. 작가의 의도가 뭘까.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R'의 기억이 불확실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살짝 머리가 아팠다. 그럴 만도 했다. 30여 개의 장면은 하나같이 이어지지 않았고, 시간대 또한 뒤죽박죽이었다. 책이 말하는 바가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부분 음독을 해보기도 했고, 수어 번 같은 문단을 곱씹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는데, 결국 이 글의 화자인 'R' 또한 자신의 기억을 서술하면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린 결말이나, 스스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읽어보지 않길 권한다. 개인적으로 머리는 아팠지만, 작가 특유의 건조하고 담담한 서술체가 마음에 들어서 술술 읽혔던 것 같다.
우리는 불확실한 것에서 불안을 느낀다
이 책의 스토리를 서술하라면 못하겠지만, 중간중간 'R'의 불확실한 기억 파편들을 훔쳐보며 나는 나름의 공감을 했다. 최근 들어서 내 기억은 조금 불확실하다. 책을 읽으면서, 유튜브를 살펴보면서. 나도 이런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을 해보고 과거 기억을 더듬거려보지만, 그 기억이 진짜였는지 내 망상이었는지 구분이 잘되지 않는 나날이 생겼다.
기묘한 기시감에 휩싸이면 나는 왜인지 모르게 불안했다. 내 머리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나는 금방 포기하고 드러누웠다. 이게 사실인지 내 망상인지, 머릿속으로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당장 뭘 할 수 있을까. 'R'은 아마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테다. 그러니 산송장처럼 휘적휘적, 천장 속을 누빌 테지. 나는 'R'처럼 기억상실도 아니고, 건망증도 아니지만, 근 몇 년 전부터 이따금 꿈속과 현실이 구분이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아마 내 기억의 혼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인간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잊힐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잊어간다는 걱정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함에 불안을 느낀다.
R은 여자에게, 내 아내, 내 아이의 엄마, 내 엄마, 내 신발, 내 무릎이나 겨드랑이, 내 목뒤의 점이 되어달라 말하지 않는다.
R은 여자에게,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묻는다.
- 101 ~ 10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