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를 마저 다 읽었다.
처음 읽었던 앞의 2챕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
뒤의 2챕터는 '우리'의 '사랑' 이야기.
남은 부분을 읽어보며 나에게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이 뭔데요?
22년 동안 나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첫사랑도 사실 사랑이 아니라 호기심에 조금 더 가까웠다. 나의 일상 속 사랑에는 상실의 아픔이라던가, 만남의 설렘 같은 사소한 감정이 일렁이지 않았다. 연애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첫눈에 반할 때 귀에 종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나에겐 낭설에 불과하다.
누군가가 말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느 순간 나도 그 사람이 좋아지더라."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저 말을 한 사람은 그저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늘어놓은 거겠지만. 사랑받으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뜬구름처럼 멀었다. 그렇게나 멀게 느껴지니, 마치 저 말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말로 들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데에 이유가 어디 있겠어. 받는 만큼 감정을 돌려줘야 한다면, 나는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 사랑은 의무가 아니니까.
훗날에 내가 사랑하게 될 때, 상대방을 사랑하는 이유를 두고 싶지 않다.
'그냥 어느 순간 네가 좋아졌어. 그냥 너라서 좋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저 외견이 어때서, 성격이 어때서가 아니라, 순전히 상대방 그 자체를 사랑하고 싶다.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최근에 나를 좋다고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사랑하고 싶어하는 형태로,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모르겠다. 나에게 사랑은 뭔지. 사실, 이미 사랑은 하고 있는데 내가 자각을 못 한 상태일 수도 있다. 나는 어리고, 여리고, 자존감이 낮다.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순간, 궁금해졌다. 왜 나를 좋아할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게 되는 나 자신.
이유가 없는 사랑이 사랑인 줄 알면서도, 사랑의 이유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나 자신.
왜 나를 사랑하냐 물어봤다.
그냥 너라서 좋아. 깨달았을 땐 늦었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슬퍼졌다. 네가 나를 100만큼 사랑한다고 해서, 나도 100만큼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네 앞날이 고될 게 뻔해서, 나는 말버릇처럼 왜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됐냐고 물어보는 날이 많아졌다. '너라서 좋아.'라는 말이 매번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나는 정이 많다. 정이 많은 대신 많은 사람에게 많은 정을 두고 간다. 내가 쏟아내는 정만큼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아도 난 또 그렇게 미련하게 정을 두고 갔다. 근래에 들어, 내 정이 슬슬 밑바닥을 보였다. 너무 많은 정을 쏟아낸 탓이었다. 나는 최근 들어서야 사람의 감정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내가 쏟아 낼 수 있는 정은 100만큼이었는데, 나는 어느 순간 150만큼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면 좀 줄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는 미련했고, 그 사람도 미련하다 했다. 그리고 미련함의 다른 뜻은 다정이라고 했다.
홀연히 사라지고 싶어.
최근 들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고 그 사람에게 자주 말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불안했나 보다. 항상 달을 찾아 밤과 새벽을 품는 내가 정말 홀연히 가버릴까 봐. 그는 언제나 남겨지는 게 두렵다면서,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정말 가버리는 날이 온다면,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존중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미련하네, 둘 다.
이제와서 고백하는 거지만, 나는 네가 같이 도망치자 말해주길 바랐다.
전에 내가 당신에게 바다 보고 싶다고 했더니 당신이 당장이라도 가자고 했잖아.
그때 그 말이 같이 도망가자는 말이었어.
- 182p <도망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