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
우연히 검색을 통해 온라인 사별자 모임에 가입하게 됐다. 카페 채팅방을 통해 소소한 일상도 나누고, 힘든 이야기도 서로 들어주고, 정기적으로 아이도 동반해 함께 여행도 다니는, 그런 모임.
각자 사는 곳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사연도... 다르다. 더군다나 나는 오프라인 모임도 아직 참석해보지 않은 신입이라 얼굴도 모른다.
근데 그냥, 좋다.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아줘서 고맙다.
친구나 직장 동료가 요새는 잘 지내냐고, 힘든 것은 없냐고 물어보면 그냥 잘 지낸다고 한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힘들다고 하면, 그 뒤에 힘든 이유를 일일이 부연설명 해야 하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이 신기한 모임에선 사별이라는 연결고리 외에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인데도, 그냥 내가 나로 받아들여진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 감정과 상태가 다 이해되어지고 받아들여진다.
내가 겪은 이 혼란과 끝없는 추락과 깊은 외로움을...
나 말고도 겪은 사람이 있다는 게,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남편이 5월에 떠났다고, 그래서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더니 얼마 안 됐다고 다들 깜짝 놀라며, 사별 선배(?)들이 너도나도 위로해 주었다.(ㅎㅎ)
아직 봄을 안 겪었네. 벚꽃 필 때 많이 힘들어요. 벚꽃 필 때 애기 데리고 우리랑 만나요.
아직 1주기 안 됐구나. 1주기가 젤 힘들어요. 가만히 집에서 보내지 말고 친정 식구들이랑 어디 여행 다녀와요.
사랑 노래 듣고 있기 아직 힘들지 않아요? 난 그 시기에 사랑 노래 잘 못 듣겠던데...
벚꽃 필 때 만나자니, 이 시린 겨울부터 벌써 누가 나한테 이런 얘길 해줄 수 있을까.
정말 신기한 공간이고, 신기한 인연이다.
사랑 노래 듣기 힘들다는 말도 신기했다. 최근에 아로하를 듣는데 그렇게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거 같더라니.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카톡 단체채팅방이 아닌 카페 채팅방이라서 당장 답장을 해야 하는 의무감은 조금 느슨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하고 좋다. 하루를 살다가 심심할 때 한 번씩 들어가 보면 몇 개씩 챗이 올라와있고, 내가 끼고 싶은 대화면 끼고, 눈팅만 하고 싶음 그래도 된다.
올라온 대화들을 쭉 읽고 있노라면 웃긴 이야기들도 있고, 울적한 이야기들도 있다. 재밌는 이야기들은 웃을 일 없는 일상에서 나를 웃게 해 주고, 사별이라는 힘든 사건을 덜 무겁게 느끼게 해 준다.
나 꿈에 남편 나왔잖아. 나 없을 때 뭐 했냐고 막 캐물으면서 내 폰 뒤지더라? 뜨끔했어. 남친 생긴 건 어떻게 알고.ㅋㅋ
울적한 이야기들은 내 안에 남아있던 눈물을 쏙 스포이드처럼 빼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요새 유튜브 보면서 딸들 머리 묶는 연습 해. 이거 왜 이렇게 어려워? 나 한 시간 걸렸잖아. 어제 아침엔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아내가 매일 아침마다 이걸 하고 출근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우리 아내 참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맞아. 우리 오빠도 참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샤워기 필터를 갈아 끼우고, 프린터기 토너를 갈고, 현관등 센서를 고치고 전구도 갈고, 테이블과 의자 나사도 끼우고 하면서 나도 느꼈던 거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이라서일까.
다들 나약해 보이지만, 강하다.
못 살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매일 울지만, 사실 두 몫을 해내느라 누구보다도 애쓰고 있는 멋진 부모들이다.
자신들도 자기 앞에 놓인 생의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면서...
새로 들어온 내 삶의 무게까지 함께 나눠 들어준다고 달라드는 이 사람들이
신기하고, 눈물 나게 고맙고, 존경스럽고,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