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은 이유 없이 더 우울하다.
한동안 그래서 비를 무지 싫어했더란다.
오늘은 비가 싫지만은 않다. 그냥 한 번씩 우울에 잠깐 발을 담갔다 빼고 싶은 날들이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요 근래 기분 좋은 일이 많았다.
글쓰기 공모전에서 대상도 받고,
브런치 작가도 합격하고,
(2024 버킷리스트였는데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다니...!!!)
보이는 라디오에도 생방송으로 출연해 보고,
소개팅도 들어오고,
좋은 pt쌤 만나 몸도 좋아지고 체지방도 빠지고.
인생에 불행이 있다면
행복이 있는 것도 당연한 건데,
큰 일을 겪고 나니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어쩐지 마음 한켠에 불안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주어진 행복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내가
가끔은 가엾다.
내게 이런 일상의 작은 선물 같은 순간들을 허락하신 분이 분명 계실 텐데, 문득 그분이 마음 아파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선물을 받았으면, 그냥 테이프 뜯어내고 리본 풀고 포장지를 벗겨내고 나온 선물을 보며 ‘우와!’ 하고 감탄으로 반응하면 그만인 건데. 그게 왜 이리 어려울까?
그분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내가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것. 그런데 나는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나,’ 혹은 ‘이 선물이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염려로 내 눈앞의 선물에 온전히 기쁨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비가 오는 동안만 우울해야지,
비가 개면 다시 눈앞에 주어진 선물들을 기뻐해야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짐해 본다!
아, 생각해 보니 오늘 좋은 일이 또 있다.
계속 일정이 안 맞아 2주째 못 받고 있던 상담을 드디어 오늘 받게 됐다...! 오늘로 5회기 정도 된 듯.
상담받으며 눈물을 한번 쭉 비워내고 나면 마음이 또 한결 가벼워진다.
누가 그랬더라, 감사는 보물 찾기라고. 마음먹고 찾지 않으면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한데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면 참 많다. 기쁨도 그렇다. 입 벌리고 있으면 알아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찾아다니며 채집해야 하는 녀석이다.
비가 오는 동안만, 아주 잠시만 우울해하고
곧 일상의 기쁨을 채집하러 얼른 일어나야겠다.
(근데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하네...?)